문학

기차가 걸린 풍경

나여경 지음
쪽수
264쪽
판형
152*223
ISBN
978-89-6545-222-5 03810
가격
16000원
발행일
2013년 7월 29일
분류
한국 에세이
*2013 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

책소개

위로의 풍경을 전하는 기차역 여행
“지치지 않고 따라오고 있느냐, 나의 영혼아!”


소설 『불온한 식탁』으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온 나여경 작가가 이번에는 인적이 드물어 간이역이 되었거나 폐역이 된 기차역들을 찾아 떠난다. 지나간 추억을 어루만지며 웃음과 눈물, 만남과 이별을 간직하고 있는 기차역에서 작가는 특유의 섬세함과 내밀함으로 주변 풍경과 시간을 재해석한다.


저자가 떠난 간이역 여행은 모든 일상의 짐을 내려놓고 떠나는 여행이 아니다. 엄마에게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마음을 뒤척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한 친구의 이야기가 머릿속을 어지럽히기도 한다. 또는 내리는 빗속에 누군가를 생각하며 이런저런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저자가 떠난 기차 여행은 이러한 일상의 무게와 고민을 안고 떠나는 여행이지만, 오랜 시간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간이역들을 찾아가면서 저자는 어느새 일상의 고민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낀다. 때로는 역명판만 존재하는 역사에서 빠르게 질주하는 우리의 인생을 반성하기도 하고, 한적한 시골 간이역을 찾아가면서 옹색하게 굴었던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저자는 “다 이룸을 행이라고, 또 다 이루지 못함을 불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자각은 기차를 타고 돌아오는 시간에 얻은 사유의 선물이다”라고 말하며 간이역 여행 속에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삶의 이면을 돌아보게 한다.


다솔사역에서 멈추지 않고 지나치던 그 기차의 속도감을 생각한다. 정신을 흔들고 빨아들일 것 같던 그 아찔한 질주를 떠올린다. 앞으로만 달려가야 하는 기차의 운명을 생각해본다. 우리 인생의 기차도 그토록 빨리 달려 과연 어느 역에 도착하려 하는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다솔사역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거느리고 있음을 느낀다. 저 멀리 눈앞에 와인 빛 낙엽 깔린 오솔길이 보인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갈 수 없는 나의 영혼을 기다리는 이 시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처럼 행복하다.

지치지 않고 따라오고 있느냐, 나의 영혼아! (「지친 내 영혼을 위해-다솔사역」, 86쪽)

 

역의 생애와 주변 명소에 숨겨진 이야기까지
“또 하나의 삶이 구워지고 있구나”


저자는 단순히 역에 대한 감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역의 생애를 들려주며 주변 명소에 숨겨진 이야기도 함께 찾아 나선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역의 생애에는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와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다솔사역은 근처 다솔사의 이름을 따서 역명이 지어졌다고 한다. 다솔사는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만해 한용운이 독립운동을 도모했던 곳이다. 이제는 한용운이 함께 활동해온 김범부, 김범린 등과 함께 식수한 황금편백나무가 안심료 앞마당을 지키고 있다.


산 위에 있는 기차역, 서생역 주변에는 옹기마을이 있다. 옹기마을 내에는 옹기의 제작 과정과 쓰임새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옹기 아카데미관, 옹기 문학관, 옹기마을공원 지구 등이 있다. 저자는 옹기에서 지난한 과정과 흙, 물, 바람, 불의 조화 속에 만들어진 옹기 안에 깃든 삶을 되새겨본다.


  지난날 메야에 앉아 있던 친구와 나는 검댕 하나 그을려지지 않은 빛깔만 고운 옹기였다. 그녀와 나의 안과 밖을 그을리며 버겁게 하는 지금의 검댕은 탄탄하고 아름다운 삶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 믿는다. 검은 연기에 그을리고 휩싸이는 고단한 시간을 지나 언젠가 저 차지게 빚어진 옹기처럼 빛을 내는 언젠가 그날이 오면 친구야, 그때 또 새로운 우리의 노래를 듣자꾸나. 저기 멀리 가마 굴뚝에서 토해내는 연기가 석양에 섞여들고 있구나. 또 하나의 삶이 구워지고 있구나. (「언젠가 그날이 오면-서생역」, 96쪽)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대합실과 전설을 간직한 절과 탑, 마을의 역사와 함께 자란 나무, 그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저자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사진들과 직접 만난 사람들의 살아 있는 이야기는, 사소한 것에도 풍요를 발견하는 색다른 여행으로 사람들을 이끌 것이다.

 

욕이 시가 되는 시간
곳곳에 풀어낸 문학과 음악, 섬세한 문장


기차를 놓치고 쉴 만한 곳을 찾다 아저씨 둘이 큰 소리로 대화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된다. 욕설로 시끄럽게 오가는 불편한 자리에 저자는 오히려 욕을 시로 생각하기로 한다. 조기호의 「조껍데기술집」을 빌어 저자는 이 시간을 ‘탁배기가 없어도 욕이 시가 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저자는 소설가다운 감수성으로 여행하는 곳곳에 문학과 음악을 풀어낸다. 하동을 여행하면서는 「토지」의 용이와 월선이를 하동 혼례길에 불러내고, 경주역에서 오가는 젊은이들을 보며 산울림의 「청춘」을 부른다. 원동역에서는 이별과 그리움을 노래한 홍수진의 「경부선 원동역」을 읊는다.


찬 기운 속에 서로에게 기대어 새날을 기다리는 이들을 떠올린다. 살아갈 이유들이 녹진녹진하게 그들에게 다시 스며들기를 바라본다. 그 시간을 기다리는 바람이 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시장의 불빛이 반짝이는 조그만 종착역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면 참 좋겠다. (「용이를 만나러 가는 길」, 19쪽)

 

저자가 풀어낸 시와 소설, 노래와 이야기는 아름다운 문장으로 버무려져 여행을 더욱 섬세하게 만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시장의 불빛이 반짝이는 조그만 종착역에서 누군가 나를 기다리면 좋겠다는 말처럼, 작가 특유의 감성으로 덧입혀진 시간과 풍경은 반복되는 일상에 메말라 있던 우리에게 포근한 정착역이 되어줄 것이다.

 

 

글쓴이 소개

나여경

서울 출생으로 부산외국어대학교와 부경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금요일의 썸머타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0년 단편집 『불온한 식탁』을 발간하여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었으며 2011년 부산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차례

1부. 그대에게 띄우는 연서


용이를 만나러 가는 길_하동역
아직도 못다 한 사랑_진주역
사랑이 떠난 자리_일광역
물처럼 바람처럼_기장역
봄날은 간다_나원역
이루지 못한 사랑 위로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_죽동역


2부. 삶이 버거운 그대에게


기차는 영원한 디아스포라_삼랑진역
지친 내 영혼을 위하여_다솔사역
언젠가 그 날이 오면_서생역
20억 년의 사랑_송정역
산다는 일, 그 생의 오브제들_호계역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어라_경주역
먼 곳에서 빛나는 등불처럼_해운대역
지상에 유배되어 온 별_원동역
시간이 멈춘 길 위에서_청도역
4월의 시_부산역
4월의 시Ⅱ_밀양역
지극함에 대한 소고_북천역


3부. 역, 풍경과 시간


잘 지내시나요?_안강역
잃어버린 시간_동래역
달의 축제 혹은 영화 같은_월내역
저 붉은, 무거운 추파_부전역
‘노마크 찬스’_남문구역
우리를 음우하소서_진영역
공생의 미덕을 잊어버린_구포역
많이 흔들리고 비틀거릴수록_부산진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