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야기를 걷다』, 그 후 11년
다시 쓰는 소설 속 부산 이야기
부산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빌려 과거와 현재의 부산을 재조명한 에세이집 『이야기를 걷다』 개정판이 출간됐다. 2006년 9월, 처음 출간된 이후 11년 만에 만나는 개정판이다. 초판 출간 당시 ‘문학공간학’ 및 문학작품의 현장답사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서울 외 ‘지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다룬 에세이로서 특별한 형식을 빌려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소설을 향한 새로운 접근 방법을 시도했다.
이번에 출간하는 『이야기를 걷다』 개정판은 10여 년 동안 변한 부산의 모습들을 담고 있다. 작가 조갑상은 이번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각 장소를 일일이 다시 찾아다니며 또 한 번 취재를 감행했다. 그리고 초판보다 다양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새로운 소설들을 추가했다.
어제의 부산, 오늘의 부산
『이야기를 걷다』 개정판에는 초판에서 만났던 장소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구포에서 시작된 저자의 발걸음은 중앙동과 완월동을 지나 을숙도와 남해에서 멈춘다. 초판과 개정판 사이의 11년, 그 사이 흘러가 버린 줄 알았던 풍경과 우리 이웃의 이야기들은 그곳에 켜켜이 쌓여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갑상 작가는 소설 속 인물들이 머물고 거닐었던 곳을 다시 찾아가서 사진을 찍고 풍경을 기록했다.
우리가 사는 곳을 제대로 읽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책의 <곰삭은 부산, 동래와 온천장> 편에서 말해본 대로, 누구에게는 구석진 시골에 지나지 않는 곳도 그 땅에서 나고 사는 누구에게는 세계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개정판을 내며」 중에서
소설의 공간은 곧 현실의 공간을 재현한 것이므로, 작품을 통해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문학공간을 답사하는 일이 작품 이해는 물론 지역을 탐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거듭 강조한다. 소설 속에서 ‘부산’이 어떻게 그려졌는지, 그 공간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저자가 하나하나 되짚으며 글을 다시 쓴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역의 역사와 사회상의 변화를 빼놓고는 지역의 발전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을숙도에서 남해까지, 요산 김정한 소설의 현장을 따라
책의 마지막 장은 부산이 낳은 민족문학의 큰 기둥, 요산 김정한 선생의 소설을 따라 걷는 문학답사기 형태를 띠고 있다. 부산 문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김정한의 소설 속에는 이 지역 사람들이 겪었던 근현대사가 녹아 있다. 「모래톱 이야기」는 산업사회 당시 개발의 한가운데 놓였던 을숙도를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로, 터전을 빼앗기고 내몰린 우리 이웃의 한이 담겨 있다. 「사하촌」과 「옥심이」에는 부유한 절의 횡포에 시달리는 가난한 민중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김정한의 생가 근처에 있던 범어사가 이 작품들의 배경이 되었다. 김정한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부분 사회와 권력 앞에 무너지는 평범하고 힘없는 이들이다. 을숙도와 낙동강, 양산 메깃들과 삼랑진, 남해 등을 배경으로 민중의 이야기를 그린 김정한 작가는 이곳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조갑상 작가는 작품의 배경을 걸으며 김정한의 이야기를 되새긴다.
책속으로/밑줄긋기
p.71 동경유학생 이인화가 중앙동 일대를 걸었던 때가 1918년 겨울이니 지금부터 꼭 99년 전이다. 부산이 개항도시로 시작되었음을 상기한다면 북항의 변모는 곧 부산의 변모이기도 하다.
p.128 「갯마을」의 줄거리는 단순한 편이지만 일제 말의 시대적 어둠과 갯마을 사람들의 가난하고 고달픈 삶을 생활의 힘으로 이겨내는 긍정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남편을 바다에서 잃은 젊은 해녀 해순이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다 상수라는 남자를 따라 산골로 시집을 가지만 그마저 징용을 간 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바다가 보고 싶어(작품에서는 매구 혼이 들었다는 말을 듣는다고 되어 있다) 되돌아온다. 보재기의 딸로 태어나 물질을 하며 살았던 그녀에게 갯내음은 그리움 이상의 본성인 것이다.
p.173 영화 <변호인>으로 유명세를 탄 흰여울마을을 두고 다시 도로를 따라 이송도 삼거리로 내려온다. 경사가 심한 언덕길에 교차로가 있어 버스정류소도 기울어져 서 있다. 노선버스들이 다니는 길은 산복도로이고 그 길 위의 좀 더 좁은 도로를 중복도로라고 하니 영도는 어쩔 수 없이 봉래산의 허리를 이리 파헤치고 저리 둘러 길을 내고 집을 지을 수밖에 없는 땅이다.
p.250 구름다리를 건너 보림극장을 왼쪽으로 보며 육교를 건넌다. 옛 교통부, 범곡사거리다. 그러니까 출발지에 다시 왔다. 망양로, 산복도로를 밤에 가보고 싶은 것이다. 부산항의 야경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동구 고지대 아니겠는가. 이곳 사람들은 바다에서 뜨는 해를 보고 일어나 일하고 항구의 불빛을 보며 휴식을 취하고 잠이 든다.
p.283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이곳 나루를 건너 삼랑진읍에서 대처로 나갔을 터이니 한적한 풍경을 하고 앉은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숱한 사연이 서린 곳인 것이다. 더구나 일제강점기 때에는 “강 건너 동산·백상·명례·오산 등지의 순한 백성들과 그들의 아들 딸들이 징용이다, 혹은 실상은 왜군의 위안부인 여자 정신대(挺身隊)다 해서” 이곳을 건너갔으니 어찌 눈물의 나루터가 아니겠는가.
저자 소개
조갑상(曺甲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김정한소설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혼자웃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하면서 부산여자전문대학과 경성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부산과 관련된 책으로는 『소설로 읽는 부산』 『한국소설에 나타난 부산의 의미』가 있으며, 소설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병산읍지편찬약사』,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을 냈다. 요산문학상과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책머리에
개정판을 내며
강은 멀고 느리게 시간이 흐르는 곳, 구포
- 조명희의 「낙동강」과 김정한의 「독메」, 김현의 『봄날의 화원』
사라진 구포다리와 낙동강의 홍수
그 시절에 이 강을 건넜던 사람들
윤상은 선생의 집터와 구포시장
동경유학생의 발길을 따라, 중앙동과 동광동
- 염상섭의 「만세전」, 이인직, 최찬식과 이병주의 소설들
부산세관 앞의 제일부두
‘관부연락선’을 탔던 사람들
광복로 입구에서 활동사진관을 만나다
일본화된 부산거리와 이인화의 두통
임시수도, 그 복닥거리는 삶을 따라, ‘완월동제면소’에서 범일동 조선방직까지
- 이호철의 『소시민』과 김동리의 「밀다원시대」
‘완월동’ 국수공장에 모인 사람들
피난시절의 기호 공간, 국제시장
‘땅끝’으로서의 부산과 어느 일본인 신사의 인사
‘웃부산’으로 가는 길
온천과 겨울바다, 물 위의 세계, 해운대와 일광
- 이태준의 「석양」과 최서해, 김성종, 유익서의 소설들, 오영수의 「갯마을」
동해남부선과 해운대
수로의 낙원호텔과 천국호텔
1930년대의 해수욕 풍경과 은빛 밤바다 위의 달
우리 아이들의 해운대
‘갯마을’의 어제와 오늘
곰삭은 부산, 동래와 온천장
- 손창섭의 「비 오는 날」과 이주홍, 김정한, 윤후명, 정영선의 소설
동래읍성에 살았던 이들
비의 장막 너머로 사라진 청춘을 찾아
붐비던 시절, 온천장과 금강원의 모습들
해풍에 씻긴 근대 한국과 부산의 축소판, 영도
-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과 김은국, 조해일, 고금란, 천운영, 정우련의 소설들
대평동으로 가는 똑딱선
남항동 전차종점에서
영도다리에서 다이빙하던 ‘내 친구 해적’
송도와 남부민동, 그리고 완월동 언덕배기
- 서정인의 「물결이 높던 날」과 최인훈의 『하늘의 다리』, 안수길, 이호철의 소설들
바다 앞에 서는 몇 가지 방법
천마산 언덕에 살았던 사람들
시간 너머에 공간이 있다 - 부산의 원형, 동구
좌천동, 부산의 역사가 모인 곳, 그리고 삼일극장과 삼성극장
고관(古館), 또는 수정동 외솔배기
초량시장 일대, 그리고 ‘박기출외과’ 찾기
남선창고,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의 시나마찌, 텍사스촌, 상해거리
‘매축지’에서 현대백화점까지
요산 김정한 소설의 현장을 찾아서
- 을숙도에서 남해 선구리까지
남산동 생가와 범어사
「모래톱 이야기」와 을숙도, 그리고 낙동강
양산 메깃들과 물금, 화제 - 「사밧재」, 「산서동 뒷이야기」, 「수라도」
삼랑진으로 가는 길 - 「뒷기미 나루」
남해 - 「월광한」과 「낙일홍」의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