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부산을 연극하다-정경환 희곡집

정경환 지음
쪽수
328쪽
판형
148*210
ISBN
979-11-990656-3-5 03810
가격
25,000원
발행일
2024년 12월 31일
분류
예술문화총서 12

책소개

부산의 역사를 무대로 불러내는 정경환의 희곡 세계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중진 극작가이자 극단 자유바다의 연출가인 정경환이 세 번째 희곡집을 출간했다. 2009년 출간된 첫 번째 희곡집 『나! 테러리스트』, 2022년 출간된 『춤추는 소나무』에 이어 출간된 희곡집 『부산을 연극하다』에는 정경환 작가의 다양한 작품 중 부산을 배경으로 하는 네 편의 작품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다. 

부산 극단 자유바다의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는 정경환 작가는 창작극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30여 년간 70여 편의 작품을 창작하여 지역 창작극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번 희곡집에는 「영도다리 점바치」, 「황금음악다방」, 「철마장군을 불러라!」, 「명정의숙」 네 편이 수록되었으며, 특히 ‘전설의 박 도사를 불러라’라는 부제로 공연된 「영도다리 점바치」는 2015년 제1회 한형석연극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정경환 작가는 오랜 시간 부산에 머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부산의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 속에서 사라져 가는 낭만과 감성을 연극을 통해 남기고자 하였다. 그는 『부산을 연극하다』를 통해 부산의 역사를 무대로 불러냄과 동시에 그만의 창작 희곡 연출기법을 보여준다.


한국전쟁 피난민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영도다리 밑 점바치 골목


1950년 갑작스레 시작된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내려온 피난민들은 영도다리에서 전쟁이 끝난 후 살아서 이곳에서 만나자고 약속하며 헤어진다. 그 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영도다리로 모여든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다리 밑 점집을 찾았고, 이 점집들이 모여 점바치 골목이 만들어졌다. 「영도다리 점바치」는 한국전쟁 시기 부산의 영도다리 밑에 형성된 점바치 골목에 자리 잡은 장 도사와 그의 제자 박 도사의 이야기이다. 두 점쟁이를 비롯한 등장인물 각각의 사연들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집결지였던 부산 관객(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인물 간의 대화에서 드러나는 실감나는 사투리는 극의 재미를 더해준다.


그때 장 도사님이 영도다리 아래 천막 치고 점집을 하는데, 울고불며 가족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점을 보는데 다들 울며 왔다가 웃으며 가더라고.

얼매나 그게 멋있고 자랑스러운지… 내도 점바치 될라고… 내가 저 영도다리 위에 뜬 보름달을 보며 빌었다고. 나도 우리 장 도사님처럼 되게 해주세요.

_「영도다리 점바치」 중에서

광복 직후 해외로 떠난 예술인들은 한국으로 돌아오며 항구와 가까운 부산 광복동에 정착하였고, 이곳에서 예술인들의 활동이 펼쳐졌다. 그중에서도 다방은 이들이 자주 모이던 장소가 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 서로를 위로해주는 공간이 되었다. 「황금음악다방」은 부산이라는 공간이 문화의 불모지가 아니라 1950년대부터 1980년대 사이 서양고전음악, 클래식, 팝송, 포크음악 등 다양한 예술문화의 꽃을 피운 곳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가수가 되고 싶은 금 여사를 둘러싼 비밀은 1979년 음악다방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 시절 유행했던 한국 음악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독립운동의 무대, 기장군


부산의 동부 지역에 위치한 기장군은 해안과 접해 있어 과거에는 군사상의 요충지였으며 용천산, 달음산, 백운산, 천마산, 철마산 등 산지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이처럼 기장군의 지역과 산의 이름들을 살펴보면 옛 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철마장군을 불러라!」는 기장의 여러 지역 이름과 전설을 소재로 창작된 작품이다. ‘기장(機張)’의 뜻에서 유래된 “하늘에서 옥녀가 내려와 베를 짜서 펼쳐 놓은 곳”이라는 전설과 아기장수 이야기 등을 바탕으로 새롭게 쓴 이야기는 선사시대 기장군에서 철기 문화가 번영했던 시대를 되새기고자 하였다. 또한 이 작품은 연극에 음악, 무용 등을 접목한 음악극으로서 정경환 작가의 기존 연극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 중 가장 암울했던 시기,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제에 저항했다. 부산 기장군의 독립운동가들은 국권 회복에 민중 교육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사립 교육 기관 ‘명정의숙’을 세웠다. 「명정의숙」은 일가친척 하나 없는 외할머니의 장례식을 준비하던 손자 용해에게 낯선 이들이 찾아와 명정의숙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그의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는 민중이 반드시 나서야 하며, 우리 민족이 지닌 끈기의 근원인 여성의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도왔던 명정의숙의 역사는 조선의 독립운동 역사에서 잊혀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명정의숙은 여성의 사회참여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우리 기장 사람들의 실천물이자 자랑이 될 깁니다. (중략) 그래서 무엇보다 여성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명정의숙 여학교를 세운 것입니다.

_「명정의숙」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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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밑줄긋기                                                

P.63-64

장 도사: 세상은 원래 제 돌아가는 그대로 버려둬야 한다. 물이 제 갈 길로 흘러가듯 세상은 굴러가야 그게 순리다. 순리를 거스르게 하면 세상을 혼탁하게 하고, 큰 혼란 속에 빠트리는 수도 있는 것, 이게 비극이다.

박 도사: (쳐다보지도 않고 집중하며) 저도 공부 할 만큼 했습니다. 이젠 뭔가를 보고 싶습니다.

장 도사: 뭐가 보이더냐? 보인다면 그건 허상이고 안 보이면 그건 니가 사람이기 때문이야. 용쓰지 마라! 실수의 애미는 자만이다.

박 도사: (일을 내려놓고 작은 짜증을 실어) 스승님은 대통령을 만들었다면서요? 나도 스승님처럼 용을 만들고 싶습니다.

장 도사: (실망하며) 지금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는 걸 보고도 그걸 부러워하냐.

박 도사: (간섭하지 말라는 뜻으로)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_「영도다리 점바치」


P.137-138

금 마담: 과거를 승화하라고요? 저는요. 아무것도 아름다운 것이 없는데. (울먹이며) 과거를 지우고 싶어요. 아름답지 않은 모든 것은 바로 나의 적이에요.

송 선생: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 그것은 매우 고상한 것이야. 어린 시절 살던 골목, 지루하고 어둡고 언제나 맑지 못했던 그곳, (회상을 더듬으며) 지독한 기름 냄새나던 세탁소, 그다지 맛이 없던 생선 밥집… 뒷산 보리밭길, 어둠이 내리는 밤이 되면 가로등 아래 비치던 불빛, 절망에 몸부림치며 울면서 걸었던 저 뒷골목. 난 추억이 그리울 때… 가슴이 멍하니 답답할 때… 그곳 그 도시의 골목길을 걸으며 잔술집을 찾아서 마셨지. 왜? 어두워 절망으로 몸부림치지만 그 속에서 내가 노래를 찾아내고 만드니까.

_「황금음악다방」


P.218-219

사람들: (무군자를 향해 빌며) 무군자님이 있어 하늘은 우리를 돌보시고 무군자님이 있어 땅은 우리에게 축복이 되었나이다. 무군자님이시여!

무군자: 여긴 평화로운 곳. 우린 하늘을 공경하고 땅에 빌었다. 점점 곡식도 늘어나 배고픔을 잊었고.

사람들: 님의 덕이시오!

무군자: 바다는 풍요로워 아쉬움은 사라졌다.

사람들: 이 모두가 무군자의 덕입니다!

무군자: 그 무엇이 있어 우리들이 싸운단 말이더냐?

옥정: 사람들은 욕망으로 하늘을 속이기 시작하고, 욕심은 땅을 갈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무군자: 옥정이는 그 입을 다물라! 이 무군자가 있어 하늘에 고하고 땅에 빌어 평화로웠다. 무슨 막말이냐?

_「철마장군을 불러라!」


P.306

노인: (퉁명스럽게) 온 기장 여자들을 다 모았네. 그래 여학교 만들어가 뭐 한다 하드노?

학생1: 여성들을 계몽하는 해방 운동이라 했습니다…

노인: 뭐시라 여성 해방? 나라도 없는데 가스나들 해방해가지고 뭐 한다고?

학생1: 우리 박 선생님은 봉건적 사슬을 끊고 여성 스스로 미래 주역으로 발돋움할 수 있어야 나라를 되찾는다고 했습니다.

학생2: 무엇보다도 기장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각인시키고 남녀평등사상을 실현할 최초의 사학이자 여학교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_「명정의숙」


저자 소개                                                          

정경환

1963년생. 극작가, 연출가.

극단 자유바다 예술감독.

안데르센 극장 예술감독.

1993년, 창작극만 하겠다는 일념으로 극단을 창단한 후 희곡, 뮤지컬, 시극, 무용극, 오페라 등 70여 편의 작품을 창작하고 연출했다. 2011년 〈돌고 돌아 가는 길〉로 올해의 한국희곡상, 2016년 〈옷이 웃다〉로 올해의 베스트작품상을 수상했다. 희곡집으로는 『나 테러리스트』, 『춤추는 소나무』가 있다.


차례                                                              

책 머리에


영도다리 점바치

황금음악다방

철마장군을 불러라!

명정의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