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태, 이기숙 지음
쪽수 | 20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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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130*200 |
ISBN | 979-11-6861-214-3 03810 |
가격 | 20,000원 |
발행일 | 2023년 12월 8일 |
분류 | 한국에세이 |
책소개
남편을 보내고 100일, 아내는 다시 펜을 들었다.
남겨진 아내가 기록하는 남편의 인생, 그리고 함께 보낸 시간들.
죽음을 연구하던 여성학자에게 찾아온 남편의 죽음
가족, 노인, 여성, 그리고 죽음을 연구하고 교육하던 저자가 남편과 사별 후 써내려간 글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 이기숙은 40여 년간 대학에서 여성학과 가족노인복지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노년기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잘 준비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을 진행해왔다. 한국다잉매터스를 만들어 죽음 교육과 애도 상담을 이끌어 온 그에게 남편의 죽음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남편이 떠난 지 100일, 삶의 이곳저곳에서 사라져가는 그를 잃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기록을 시작하였다. 여기저기서 떠오르는 남편에 대한 기억을 붙잡으며 써내려가는 과정은 그를 온전히 보내는 작업이었고, 배우자를 갑자기 떠나보낸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시간이었다. 표지의 그림은 손녀가 할아버지의 생전에 그린 그림으로 손녀 앞에서만 보이는 장난기 어린 웃음을 엿볼 수 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빈 마음으로 그를 보낸다
남편은 좋은 배우자이자 존경받는 아버지였고, 손주들에게 사랑 고백을 받던 다정한 할아버지였다. 2022년 11월, 황달기가 보여 찾은 동네 내과에서 혈액검사 후 급히 큰 병원 응급실로 간 남편은 담관암 진단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을 했다. 별다를 것 없던 일상에서 갑자기 중환자실이라는 풍경 앞에 내던져졌다. 담당의가 매일 남편의 몸에 대해 설명을 하지만 아내는 그 말들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남편 몸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검사 장치들로 연결된 그의 낯선 몸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손을 잡아 주는 것뿐이었다.
기대와 희망과는 다르게 남편의 몸이 이 세상을 떠나려고 하는 것이 느껴졌다. 동네 병원을 찾은 지 2주가 채 되지도 않은 12월 8일, 남편은 이 세상을 떠났다. 차려진 빈소는 아름다웠고 그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빈소를 찾았다. 남겨진 아내는 그를 위해 머리에 하얀 리본 핀을 꽂았다.
금빛날개를 타고 홀연히 떠난 남편이 남긴 흔적에서 그의 삶을 더듬어본다
남편이 홀연히 떠난 뒤 슬픔은 먹물 같은 그림자처럼 남았다. 장례가 끝나고 모였던 가족들이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고 남편의 사진과 아내만 남은 집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에 대한 기억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시장에 남편이 좋아했던 두릅과 엉개가 나온 걸 보며 그를 떠올린다. 그가 좋아했던 양장피가, 스시가 아내를 울린다.
아내는 홀로 집에 남아 여전히 남아 있는 남편의 물건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며 그를 느껴본다. 결혼식 날 맸던 넥타이와 예물 시계. 장인어른에게 물려받은 베레모, 딸이 사 주었던 지갑, 며느리가 사 준 골프모자와 셔츠, 그의 손때 묻은 핸드백-그 안의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그가 남긴 물건에는 그의 삶이 묻어 있다. 물건들은 그의 존재를, 동시에 부재를 확인시켰다. 아내의 마음에 남편은 언제까지고 남아 있지만 이 세상에서는 하나둘 지워진다. 은행 업무도 중지가 되고, 집의 명의도 바꿔야 하고, 관리비며 신문대금의 계좌도 바꾸어야 한다. 곳곳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
아내가 기억하고 기록하는 남편의 72년 3개월의 인생,
그리고 함께한 화양연화의 시간들
아내는 부부로 살았던 50여 년(1975~2002)의 시간뿐 아니라, 남편의 72년 3개월의 인생도 기록으로 남겼다. 두 사람은 1950년생 동갑내기로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나 연인이 되었고 1975년 부부가 되었다. 방 한 칸으로 신혼살림을 시작하여 아들딸을 키워냈다. 선생 노릇을 하며 살아온 아내와는 달리 늘 제품개발과 판매에 매달리며 회사를 운영했던 남편은 회사 일을 집에서 털어놓는 성격이 아니었다. 말하지 않으니 모른 체하며 살았는데, 혼자 속 끓였을 그를 생각하며 아내는 이제 와 마음이 아프다. 평소 좋은 물건들을 마다하던 남편이 부부의 70세 생일을 맞아 떠난 하와이 가족여행에서 남긴 아들딸, 손주들과 함께 찍은 11명의 가족사진은 그가 날린 마지막 홈런이었다.
남편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며 처음에는 그의 이름만 나와도 눈물샘이 터졌지만 이제는 제법 그를 마음 아래로 밀어 넣을 줄도 알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아내의 그림자처럼 함께 있지만 이제는 그의 몫까지 더 재미나게 살고자 하는 마음도 생겼다. 노년의 거북스러움과 추함을 일절 보이지 않고 떠난 남편에게 아내는 말한다. “당신, 잘 살다 가셨네요.”
첫 문장
그가 떠난 지 100일째 되는 날부터 글을 적기 시작하였다.
책 속으로
p.18 그는 이미 만신창이 상태였다. 수많은 검사장치들로 연결된 그의 몸은 낯설었다. ‘여보’ 하고 몇 번을 부르니, 아래 턱이 조금 움직였다. 바로 내 눈에서 눈물이 좌르르 흘렀다.
아들은 그이의 발을 내내 만졌다. 의식은 있는 듯하였다. 5, 6분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그 당시만 해도 그가 죽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여보, 사랑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게’라고 말하곤 나왔다.
_「나를 보지도 못하다니」
p.27 두어 달 전에 엄마 보고 싶다고 무던히 눈물 흘리던 그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때 나는 ‘엄마가 보고 싶어?’라고 소리 높이며 웃었다. 정말 그는 그때 엄마가 보고 싶었던 것이 맞았다.
그게 ‘죽음의 예감’ 같은 것일 터... 그나 나나 그 예감을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_「그를 주검으로 만나다」
p.78-79 혼자 집에서 이 방 저 방 다니며 그의 물건들을 유심히 쳐다본다. 안방 장롱 속엔 그의 물건들이 가득하다. 내의부터 운동복, 양복에 이런저런 약까지. 옆 작은 방에는 그의 겨울 겉옷들이 걸려 있다. 건너 방 자개장 안에는 장교복이 얌전히 걸려 있다. 화장대 위에는 그의 화장품과 면도기가... 늘 그 앞에서 머리를 말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이의 손가방에서 명함, 지갑, usb 등이 나온다. 잘 접힌 천 주머니 속에서는 그의 반지, 건강 팔찌, 모표가 나온다. 그이가 남긴 것들을 보니 그래도 조금은 그를 보는 듯하다.
_「그이가 남긴 것들을 내 눈에 심으며」
p.138 자녀가족들이 다 가 버리고 나니, 집이 휑하다. 나 혼자의 첫날, 눈을 뜨니 설렁하다. ‘말러(Mahler) 5번’을 크게 틀어 놓고 몸을 움직인다. 음악소리라도 있어야 혼자임을 잊기 때문이다. 10여 년 나가던 요가교실에 다시 나가기 시작하였다. 퇴직하고 시작한 가곡교실에도 나갔다. 몇 분들이 눈인사를 하지만, 그들은 남편을 모른다. 그의 이야기를 안 하니, 나도 울지 않아도 된다.
_「그냥 그가 먼 산책을 나갔다는 정도이다」
저자 소개
임정태·이기숙
남편 임정태는 1950년 부산에서 4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를 졸업한 후 여러 사업체를 거쳐 1996년부터는 경상남도 양산시의 ‘㈜한영인더스트리’에서 근무하였다.
아내 이기숙은 195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신라대학교 가족노인복지학과 교수를 정년퇴직하고, 현재는 ‘한국다잉매터스’ 대표를 맡고 있다. 죽음 관련 강의와 연구 그리고 엔딩 노트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보급 사업을 수행하고, 부산여성사회교육원,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등 시민·여성운동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다. 『성인발달과 노화』, 『죽음: 인생의 마지막 춤』, 『모녀 5세대』, 『당당한 안녕: 죽음을 배우다』 등 30여 권의 공·저서가 있다.
이 부부는 1950년생 동갑으로 1975년 결혼하였다. 행복하게 살다가 2022년 12월 임정태가 먼저 사망하였다.
차례
들어가면서
1부_ 그가 나를 떠나려 한다
나를 보지도 못하다니 | 당신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 그를 위한 기도 | 그가 했을 듯한 기도 | 그를 주검으로 만나다 | 마지막 숨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 생(生)은 다만 그림자 | 어느 시인이 건네주는 위로의 글 | 우리가 뭘 잘못했을까? | 그것이 마지막 입맞춤이었다니 | ‘나 잘래’-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 그의 주검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오다 | 이토록 가혹하게 벌을 주시냐? | 그의 마지막 사진을 만들면서 | 그의 빈소(殯所)-감사하고 감사합니다 | 사돈께서 대성통곡을 하신다 | 그의 머리카락을 잘라 달라고 했다 | 발인(發靷)-남은 육신마저도 보내야 한단다 | 화장장(火葬場)-손주들이 고함을 지르며 운다 | 당신이 내 가까이 온다면 다시 사랑할게요 | 그만하면 잘 사신 거예요 | 오동나무 상자에 담기어 | 그의 묘지에 첫 꽃을 바치며 | 우리가 그를 보내는 마지막 의례 | 그의 바르도(bardo)에 축복이 넘치길 | 우리의 50년 유정(有情) | 그건 이 장례의 마지막 (비공식)의례였다 | 남은 식구들끼리의 만찬 | 할아버지 만나러 가요 | 그이가 내게 보내는 노래 | 그이가 남긴 것들을 내 눈에 심으며 | 그의 이름은 지워지고 있다
2부_ 그의 72년 3개월 인생
그의 어린 시절과 운동 | 그의 사진이 말해 주는 그의 젊음 | 그는 오랫동안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 달콤하였던 데이트 | 그의 본가-‘양정 집’ 추억들 | 그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을까? | 그의 연애-‘나타샤와 나는 흰당나귀 타고 갔었다’ | 자기에게 제일 소중한 것은 ‘당신’이라고 했다 | 기분 좋으면 그는 노래를 부른다 | 그는 돈을 좋아한 사람이 아니었다 | 그는 늘 나를 이긴다 | 그의 마지막 홈런 | 세 번째의 삶을 고마워했다 | 그는 늘 ‘아내에게 잘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 그의 다정함이 나를 물들다 | 그러면서 결곡한 사람 | 그의 해외여행 첫 선물 | 그가 만들어 준 더치 커피 | 그의 생일 | 그는 ‘막걸리 빚기’를 배울 것이라 했다 | 그의 인생에서 마주한 인연들 | 그의 회사 물건들을 정리하면서 | 때로는 ‘굽히면 온전할 수 있다’는 말 | 몸의 아픔에는 둔감한 사람이었다 | 그의 화양연화 | 그는 나를 절반만 사랑한 사람이 아니었다
3부_ 이제, 그는 옆에 없단다
그냥 그가 먼 산책을 갔다는 정도이다 | 혼자로구나, 완전 혼자야 | 여전히 그는 내 옆에 살아 있다 | 이번 주말엔 그의 베갯잇을 갈아야겠다 | 곳곳에 숨어 있던 그의 이름이 지워진다 | 요즘 사장님이 안 보이시던데... | 사진 속에서 그를 다시 찾다 |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 남편을 먼저 보낸 그녀를 깊이 안아 주었다 | 혼자서 춥지 않니-친구의 선물 | 나는 너로 살고 있네 | 그 무엇으로도 대신 채워 줄 수 없는 | 꿈에라도 만나 봤으면 | 엉개를 보니, 그가 또 생각났다 | 그의 눈, 코, 입 | 내가 너무 당신을 혹사했는가 | 그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믿고 싶다 | 그의 그 찬란함을 기억하며 | 다시 새벽운동을 시작했다 | 그러나 그이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다르다 | 그가 간 지 100일째-묘지에 갔다 | 다시 슬픔이 차오르다 | 봄이 되어 꽃이 피고 초록이 자라네 | 그가 간 지 200일째-호미를 샀다 | 나는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임정태(林政太) 연보
나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