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숙
쪽수 | 30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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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140*212 |
ISBN | 979-11-6861-163-4 03810 |
가격 | 18,000원 |
발행일 | 2023년 7월 31일 |
분류 | 추리/미스터리소설 |
책소개
앱 클릭 몇 번이면 펼쳐지는 손안의 음식 천국
그 천국의 맛을 위해 지옥을 견뎌내는 이들이 있다
‘배달 강국’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지옥도
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빵, 사방에 굴러다니는 파이와 치즈 덩어리, 우유가 강처럼 흘러 먹을 것이 지천인 세상. 브뢰헬의 미술 작품 〈게으름뱅이의 천국〉의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작품 밖 현실에도 존재한다. 바로, 배달 앱에서 펼쳐지는 음식의 향연이다. 그러나 음식의 향연이 펼쳐지는 이 천국 뒤 누군가는 지옥 같은 현실을 살아내고 있다. 대한민국 자영업자의 우울한 자화상을 고발한 김옥숙 작가의 새 장편소설 『배달의 천국』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지난 몇 년간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전염병의 창궐 속 경제적, 정신적으로 타격을 입은 채 살아가는 자영업자의 목소리를 포착했다. 우리 사회 모순과 병폐를 에두르지 않고 생생하게 고발하는 문학 정신에는 작가의 실제 자영업 경험과 함께 전태일 문학상 수상 작가로서의 관록이 묻어난다.
코로나로 매출이 떨어지자 아내는 월세와 인건비 걱정에 잠을 설쳤다. (중략) 아내는 억울해서 자꾸만 화가 치민다고 했다. 식당을 이렇게 오래 했으면 남는 게 있어야 하는데, 빚만 늘어 억울하다고 했다. _p. 16~17
코로나의 대유행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된 2020년대 초반, 거리두기 방역지침이 발표될 때마다 그 누구보다 마음이 타들어 갔을 자영업자들. 영업 제한조치로 식당 매출은 곤두박질치는데, 꼬박꼬박 나가는 월세와 직원 월급을 감당하기 벅찬 것이 자영업자의 현실. 홀 장사만으로는 막막하니 배달 장사로 눈을 돌리게 되는 이들. 과연 배달업은 무너지는 자영업 생태계를 다시 살릴 구원의 밧줄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비대면과 익명성, 그 달콤한 가면 뒤에 숨은 악마
홀 장사 매출이 떨어지자 배달 장사에 뛰어든 식당사장 만석. 배달 시스템이 가진 비대면이라는 특성상 진상손님이 전에 비해 훨씬 늘어 골치 아프다. 툭하면 “환불해 주세요”, “리뷰에 올릴 거예요”라며 ‘리뷰 갑질’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환불도 해 주고, 사과도 해 줘야 별점 테러를 막을 수 있으니 참는 수밖에.
배달 주문으로 이어지기까지 그 식당의 리뷰는 굉장히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구매자는 배달 앱 리뷰를 확인한 후 평점이 높고 리뷰가 좋은 식당을 선별해 주문을 하니, 만석도 여느 자영업자와 마찬가지로 리뷰 관리에 온종일 전전긍긍이다. 리뷰어는 바로 이 점을 악용한다. 평점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 리뷰 관리에 공을 들이는 식당사장을 노리고 익명의 리뷰어들은 별점 테러를 저지르며 식당사장에게 ‘왕’으로 군림하려는 악랄한 심보를 보이는 것이다. 배달 앱에서 구매자는 닉네임을 사용해 리뷰를 단다. 이들이 식당에 근거 없는 악플을 달며 활개치고 다녀도 이를 제재할 수 있는 방도가 없다. 닉네임, 익명이라는 가면 뒤 악플러가 휘두르는 폭력에 식당주인은 그저 당하고 있을 뿐이다.
코로나 시대 이전에도 악플러는 존재했고, 이 악플러는 누군가를 울리고 또 죽였다. 하지만 유례없는 전염병의 유행으로 우리 사회는 누군가와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접촉만 허용하는 문화에 길들여져 갔다. 이렇듯 ‘비대면 친화적’인 일상의 도래는 그 비대면의 특성을 이용한 더 많은 악마를 키우기에 이르렀다.
약자와 약자가 벌이는 일상의 각개 전투
외출도, 샤워도 삼간 채 하루 종일 집 안에서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고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것이 낙인 은둔자 민성. 민성은 배달 앱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그 음식을 먹는 과정이 너무나 즐겁다. 그리고 무언가 불만이 생겼을 때 그 식당에 리뷰로 갑질하는 것은 더 즐겁다. 허위로, 과장해 인신공격까지 해 대는 이 리뷰는 악플이다. 민성이 아무리 심한 악플을 달아도 대부분의 식당사장은 되레 민성에게 죄송하다고 한다. 태어나 처음 느껴 보는 권력을 가진 자의 기분. 누군가의 위에 있다는 기분. 이 짜릿함에 민성은 ‘악플 게임’을 멈추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이 민성으로 하여금 ‘프로 악플러’가 되도록 만든 것일까.
민성에게 학교는 정글이었고 지옥이었다. 아이들은 살찐 민성을 보기만 하면 돼지라고 놀렸다. 여럿이 둘러싸고 민성을 이유 없이 때렸다. (중략) 민성은 그 자리에 선 채로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중략) 엄마는 민성의 축축한 바지를 보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대뜸 등짝을 후려쳤다. 엄마는 이게 과연 내 새끼가 맞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민성은 엄마가 등짝을 세게 후려쳤을 때, 엄마에게도 외면당한 쓰레기가 된 기분이었다. 그날, 민성의 어린 영혼은 유리컵처럼 깨지고 말았다. _p. 116~118
민성은 유년 시절, 학교폭력의 피해자였고 집에서는 엄마의 차별과 힐난에 시달렸다. 수치스러운 경험을 당하고 그것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채 어른이 된 민성. 원망, 분노, 열등감이라는 감정의 복합체는 어느새 괴물이 되어 무고한 이에게 그 감정을 표출하는 악마가 되고 말았다.
노동운동가에서 자영업자로 변신한 선호 형은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 나라는 자영업자를 위한 나라가 아니야. 자영업자를 위한 나라는 없어. 어쩌면 자영업자를 위한 나라가 없기 때문에 이 가게 이름을 그리운 나라로 지은 건지도 몰랐다. _p. 78
20대 시절, 만석과 함께 자동자 부품공장에서 근무하며 친해진 선호는 당시 공장이 폐업하게 되자 폐업반대 투쟁을 이끈 공장 노조위원장이었다. 이후 호프집을 열어 장사를 시작했고, 이 가게는 대학로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지만 그 역시 코로나의 직격탄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가게와 직원의 규모를 줄이며 고군분투했으나 점점 더 어려워지는 주머니 사정에 선호는 직접 배달 라이더가 되어 배달을 다닌다. 입버릇처럼 “자영업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고 말하는 선호에게서 우리 사회 수많은 자영업자가 외치는 절규가 들리는 듯하다.
부익부 빈익빈을 부추기는 자본주의 무한경쟁 시스템은 결코 약자를 뒤돌아보지 않는다. 약자는 각자도생으로 마주한 정글을 탈출하여 살아남기 위해 생존 전투를 벌일 뿐. 서로가 서로를 베고 도려내고 후벼 파는 이 전투는 낙오하지 않기 위한 저마다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플랫폼 자본주의 작동 방식의 명과 암
휴대폰에 배달 앱을 다운받지 않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배달 앱은 우리의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배달 앱과 배달 대행 플랫폼의 발달은 바쁜 현대인에게 빛이 된 동시에 우리 사회의 어둠으로 자리 잡았다. 당일배송, 새벽배송, 총알배송…. 24시간 쉼 없이 돌아가는 배달 서비스. 배달되는 물건의 종류는 커피 한 잔에서부터 무거운 가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배달 안 되는 게 없는 신세계에서 살고 있는 지금. 하지만 플랫폼 서비스가 제공하는 편리성 이면에는 그 편리를 위해 땀 흘리며 죽어 가는 노동자가 있다.
배달 앱과 같은 플랫폼은 고객의 정보를 데이터로 저장하고, 여기에 노동자를 끌어들인다. 그러고는 고객과 노동자를 연결해 줌으로써 이익을 얻는다. 플랫폼에는 무수한 데이터가 이미 축적되어 있기 때문에 보다 많은 고객과 연결되기 위해 자영업자는 이 플랫폼을 거치는 방법을 택한다. 자영업자는 플랫폼에 직접 고용된 것은 아니지만, 마치 구속된 것처럼 그 안에서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쏟는다. 플랫폼의 작동 방식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착취의 굴레를 쓰는 것이다.
이제 플랫폼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거대 공룡이 되었다. 『배달의 천국』에는 영세 자영업자를 착취의 구조로 밀어 넣는 이 플랫폼 자본주의의 어둠과 잠깐 기댈 벽조차 빼앗겨 버린 사회 약자의 초상이 함께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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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는 훗날 어떻게 기억될까. 식당의 재난사가 한 측면인 건 분명하다. 찾아오는 손님 위주였던 요식업은 ‘비대면’이라는 전대미문의 조치에 치명상을 입었다. 배달주문이라는 한줄기 탈출구가 열리지 않았다면 요식업자는 멸망이라는 큰길로 밀려가야만 했을 것이다. 빛이 강하면 어둠도 짙다. 김옥숙 작가는 배달주문이라는 신세계의 명암을 선명하게 대비해서 묘사한다. 허위댓글로 쾌감을 얻는 블랙컨슈머는 성실하게 노력하는 자영업자를 진드기처럼 괴롭힌다. 작가가 일상에서 뽑아 올린 사건들과 세세한 현실은 어둠을 더욱더 어둡게, 빛을 더욱더 밝게 비추며 생생하게 코로나 시대의 단면을 그린다. 인간이 이렇게 타락할 수 있나 싶은 긴 동굴을 지나오면 그래도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는 낙관도 얻게 된다. 코로나와 배달주문의 시대를 되짚어보는 작가와의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_정광모(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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