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만주국 시기 중국소설-중국작가 12명이 그려낸 만주국의 풍경과 사람

산딩 외 11인 지음 | 건국대학교 아시아문화정치연구소 옮김
쪽수
616쪽
판형
140*212
ISBN
979-11-6861-151-1 93820
가격
48,000원
발행일
2023년 6월 30일
분류
아시아총서 45

책소개

동아시아 문학사의 빈 공간, 만주국 문학을 읽다 


만주국은 동아시아 근대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학술적, 사상적 자원을 내포하고 있다. 만주국은 다양한 역사적 원인, 정치적 입장, 경제적 동기를 지닌 민족들이 혼거했던 곳이며, 좌익과 우익, 유토피아주의자와 현실주의자, 휴머니스트와 마키아벨리스트가 복잡하게 뒤섞인 갈등의 요람(래티모어)이었다. 따라서 만주국 역사는 어느 한 국가, 한 민족이 독점할 수 없는 동아시아 각국, 각 민족이 공유해야 할 역사이다. 

오늘날 동아시아 3국은 여전히 ‘식민 청산’이라는 ‘과제’를 온전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며, ‘제국-식민지’의 이분법은 여전히 만주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식민 공간을 이해하는 핵심 틀로 작용한다. 만주국 문학 연구 역시 각국이 서로 다른 역사적 입장으로 접근하면서 많은 공백을 드러내고 있다. 예를 들어 국내의 만주국 문학 연구는 당시 만주국에 체류했던 한인(韓人)과 연관된 문제나 이들의 독립 활동에 치우쳐 있는 반면, 만주국을 제국사(帝國史)의 일부로 인식하는 일본의 경우에는 만주국 문학을 일본인들의 개인적 체험이 담긴 기록이나 노스탤지어 정서를 자극하는 텍스트로 접근하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중국은 한족 문인들의 저항에 주목하는 민족주의 입장을 취하면서, 만주국을 일본에 의해 유린된 치욕의 시공간으로 인식하는 ‘항일’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역사적 사실이 증명하듯 만주국은 일본의 대륙 침략 과정에서 세워진 괴뢰 정권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당시 만주국은 일본인, 조선인, 한족, 몽골인, 만주인, 러시아인, 유대인 등 다양한 이방인이 교류하고 충돌하는 공간이었고, 이를 기반으로 다층적이고 역동적인 문화가 파생된 공간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만주국 시기 중국소설』은 기존의 ‘제국-식민지’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만주국에 실재했던 사람들의 역동적 삶과 복잡다단한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본서는 건국대학교 아시아문화정치연구소 연구진들이 다년간의 광범위한 작품 독해 과정을 통해 만주국 문학의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는 22편의 작품을 선별하여 번역한 결과물이다. 국내에서 처음 출간되는 만주국 시기 중국소설 작품선인 만큼 작가와 작품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가별 해제를 덧붙였다. 


만주국 민중의 삶과 만주국 ‘로컬리티’


『만주국 시기 중국소설』에 수록된 작품들은 당시 만주국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단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러 세대를 거치며 척박한 환경을 개척해왔던 만주 지역의 민중들은 일제의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 착취로 인해 고통을 겪었고 더러는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한다. 오랫동안 만주 지역을 지배한 지주제와 새로이 유입된 식민자본은 만주국 농촌 사회의 급속한 파탄을 초래했다. 

산딩(山丁), 구딩(古丁), 왕추잉(王秋螢)의 작품에는 경제적 계층 질서가 고착화된 만주 농촌 지역을 배경으로 평생 가난과 기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농민의 처참한 현실과 불평등한 사회 구조가 묘사된다. 물론 이러한 고통이 비단 농민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샤오쑹(小松)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동부 접경지대에 살던 이들은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나들며 밀수를 감행하기도 한다.

만주국 작가들은 이처럼 민중들의 험난한 생존 현실을 밀도 있게 묘사한다. 위기가 일상이 된 만주국 현장에는 둥베이(東北) 민중의 비애, 고독, 그리고 그들에 대한 깊은 동정과 연민이 배어있다. 만주의 흑토(黑土) 깊숙이 축적된 그와 같은 고난의 기억들은 광활한 초원과 원시림을 배경으로 만주국 문학의 ‘로컬리티’로 승화된다.


‘낮은 하늘 아래, 좁은 길을 걷다’, 만주국 여성의 신산(辛酸)한 삶


『만주국 시기 중국소설』은 만주국 여성작가의 작품을 여러 편 소개한다. 만주국 여성작가의 창작은 만주국 사회 내부에서 줄곧 억압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의 현실을 폭로하는 동시에 만주국 사회가 지니는 구조적 모순을 여성의 시각에서 그려낸다. 무엇보다 이들은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안목으로 주변화된 타자들, 즉 여성, 아이들, 하층민의 일상 속에 스며든 ‘폭력’을 예민하게 포착한다. 

만주국 문단에서 활발한 창작을 전개했던 우잉(吳瑛)과 단디(但娣)의 작품은 여성과 사회 빈곤층의 비참한 생활상을 묘사한다. 그녀들은 만주국 사회의 기형적 심리를 비판하는 동시에 민족적, 계급적, 젠더적 경계에 조심스럽지만 민감하게 접근한다. 또한 만주국은 물론 화베이(華北) 지역까지도 유명세를 떨친 메이냥(梅娘)은 여성 화자의 독특한 자의식을 통해 식민 공간을 횡단하여 코스모폴리탄적 시선으로 식민지 근대성의 경계를 탐색한다. 


만주국의 다층적 풍경과 역동성, 그리고 삶의 면면


『만주국 시기 중국소설』은 만주국의 문화적 역동성을 드러내는 다채로운 삶들을 조망한다. 다양한 국적과 계층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만주국은 전통과 근대,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문화적 ‘혼종성’을 형성하였다. 무엇보다 일본에서 조선을 거쳐 만주로, 다시 만주에서 러시아로 연결되었던 ‘만철(滿鐵)’은 단순히 철도 노선의 확장을 넘어 인터내셔널한 문화적 ‘월경(越境)’을 가능케 했다.

만주국에서 문화적 ‘혼종성’을 흥미롭게 드러냈던 공간은 이른바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리던 국제도시 하얼빈이다. 대도시의 향락과 타락, 제국의 번성과 쇠퇴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하얼빈은 만주국 작가들에게 식민지 근대 문명의 체험과 상상을 가능케 한 공간이었다. 중국의 ‘앙드레 지드’로 일컬어졌던 줴칭(爵青)이나 만주국의 대표적 진보 작가 관모난(關沫南)은 하얼빈이 지닌 근대 문명의 한계와 가능성을 예리한 시각으로 포착한다. 

작품에 묘사된 조선인, 유대인, 러시아인 등 다양한 민족 출신의 유랑민 형상과 실향 정서는 만주국의 ‘혼종성’을 드러내는 흥미로운 소재이다. 만주국 작가들은 조국을 떠나 방황하는 유랑민의 설움에 공감하며 전쟁의 실상을 폭로하는 동시에 실향민과 유랑민의 궤적을 추적하면서 만주국에 형성된 식민지 네트워크를 기록하고 있다. 


만주국 작가들과 식민지 문단의 궤적


만주국에서 활동한 작가들은 혼란했던 식민지 현실을 정면으로 묘사하거나 그에 대한 저항의 소리를 내기 어려웠지만,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만주국 문단의 맥을 이어간다. 1930년대 만주국 작가들은 『명명(明明)』, 『예문지(藝文志)』 같은 잡지를 진지(陣地)로 삼아 창작 활동을 전개한다. 이 시기에는 만주국 문학의 ‘방향성’에 대한 첨예한 논쟁이 발생하기도 했는데, 산딩과 왕추잉은 만주국 사회의 현실을 폭로하는 ‘향토문예(鄕土文藝)’를, 구딩과 줴칭은 척박한 만주국 문단에 다양하고 풍성한 문예 실험과 창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사인주의(寫印主義)’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두 진영의 주장과 별도로 그들의 창작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 책에는 ‘예문지도요강(藝文指導要綱)’을 통해 본격적으로 작가들의 활동을 통제한 1941년 이후 발표된 작품이 포함되어 있다. 그와 같은 강압적 문예 정책이 실행되자 다수의 작가들은 일제의 감시와 억압을 피해 만주국을 떠나게 된다. 이 책에 번역된 작품들은 만주국 작가들이 어려운 창작 환경과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들의 경계적 정체성을 글쓰기라는 형식으로 고민하고 사유했음을 확인하게 해준다. 



 책 속으로                                                      

p.77-78 땅 석 상에서는 아홉 석(石)이 조금 넘는 대두를, 두 상에서는 열두 석의 수수를 수확했다. 소작료로 대두 일곱 석 반, 수수 일곱 석 반, 모두 열다섯 석을 내고 나니 남는 것이 없었다. 남은 거라고는 대두 한 석 반, 수수 네 석 반이었다. 이를 다시 리 형과 반씩 나누어 가지니, 각 사람이 얻는 몫은 대두 일곱 말 반 남짓, 수수 두 석 두 말 반 정도에 불과했다. 거푸는 대두 일곱 말 반을 다시 둘째 고모부에게 바쳤지만 겨우 십이 원의 빚만 갚을 수 있었다. 봄갈이를 할 때 빌려 썼던 돈의 반은 갚은 셈이었다. 그 외에도 토지 한 묘당 삼 원 오 각을 헌납하고, 촌비로 이 원 오 각, 봄과 가을마다 내는 자위단 비용 십 원 오 각도 내야 했다. 결국 계약서에 쓰인 ‘잡비’ 항목은 모두 십육 원 오 각이었다. 두 사람이 나누어 내니 한 사람당 팔 원 이 각 오 푼이었다. 사실상, 이 비용도 둘째 고모부로부터 빌린 것이었다.

“두 석 두 말 반이나 되는 수수를 모두 팔아 치웠는데도 둘째 고모부네 빚을 다 갚지도 못하다니.” 거푸는 미친 사람처럼 포효했다. 그러고는 다시 조용히 중얼거렸다.

“또 일 년이라니!”

_구딩 「변금」


p.213-214 봄날의 저녁 바람이 그들에게 불어왔고 태양도 따사로웠다. 두 눈을 찡그리던 이안은 냉혹하고 무자비하게 변해 있었다. 그의 눈썹과 눈가에는 분노의 감정이 서려 있었는데, 바로 생존에 대한 분노였다. 그는 앞을 멀리 바라보았다. 유유한 구름, 고요한 하늘, 높은 건축물, 예배당의 십자가 탑을 바라봤다. 공기가 온화하면서도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고개를 숙여 얼음이 완전히 녹은 거리와 푸른 기운이 감도는 가로수의 가지를 보았다. 도로 양쪽에는 실같이 가는 야생식물이 야트막한 흙 속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 가느다란 가지는 봄날의 늦바람 속에서 의연히 자신을 지탱하고 있었다.

_관모난 「지하의 봄」


p.340 그렇다면 춘화싸오의 남편이자 아이의 아빠라는 사람을 좀 더 살펴보자. 그는 말할 필요도 없이 춘화싸오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대학생의 모습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그런 인물이다. 그는 영어도 할 줄 알고, 체격도 아주 건장했다. 그는 언제나 위아래로 양복을 쫙 빼입고 반질반질 윤이 나는 구두를 신고 다녔다. 대학생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두루마기나 마고자와 같은 옷이었는데 이런 옷들을 입고 다니는 것은 소위 시대적 조류에 걸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바꿔 말하면 이런 옷은 유행에 뒤처진 것이었다. 자고로 대학생은 유행을 좇는 사람으로 옷은 그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조건이었다. 옷이 날개라고 하지 않았는가. 양복을 쫙 빼입은 외국인들의 모습이 얼마나 의기양양하던가!

_우잉 「신유령」


p.436 동틀 무렵 진지광은 삼림 속을 거닐었다. 태양이 산 너머에서 아직 떠오르지 않아 동쪽의 먼 산봉우리 위에서부터 아름다운 아침놀이 깔려 있었고, 청명하고 푸른 아침 햇살이 수풀을 뒤덮고 있었다. 새로 생긴 잎눈이 갈색과 초록색이 섞인 부드러운 풋가지 위에서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었다. 나무 기둥은 비 온 뒤 곰팡이가 필 것 같은 축축한 냄새를 풍기며 소나무의 싱그러운 향기와 뒤섞여 있었고, 나뭇가지와 잎은 서로 뒤엉켜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숲속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고 주변에서 숲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가 지저귀면서 날갯짓을 하고 있었고, 높은 전나무 위에는 딱따구리가 부리로 나무 기둥을 탁탁 쪼고 있었다. 밀림같이 어둡고 깊은 숲속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에 목재회사의 거대한 계획과 야심이 떠올랐다. 이렇게 웅장한 삼림이 머지않아 산산이 베어진다고 생각하니 자신도 모르게 서글픈 감정이 일었고, 소위 ‘문명’에 대한 원망에 가까운 감정도 어렴풋이 생겼다.

_위안시 「삼림의 적막」



 저자 소개                                                      

산딩(山丁) 1914-1997

만주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1937년 발생한 ‘향토문학’ 논쟁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일찍이 창춘(長春)에서 우잉(吳瑛), 메이냥(梅娘) 등과 함께 ‘문총파(文叢派)’를 조직했고, 1939년에는 ‘문총간행회(文叢刊行會)’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집 『산바람(山風)』, 『향수(鄉愁)』, 『풍년(豐年)』과 장편소설 「녹색의 골짜기(綠色的谷)」 등이 있다.


구딩(古丁) 1914-1960

『예문지(藝文志)』를 중심으로 하는 ‘예문지파(藝文志派)’의 대표적 인물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전개했으며, 향토문학 논쟁 시기 ‘많이 쓰고(寫), 찍어내야(印)’ 한다는 ‘사인주의(寫印主義)’를 주장했다. 1940년대 세 차례 ‘대동아문학자대회(大東亞文學者大會)’에 참석한 이력으로 중국 내에서 친일작가로 비판받는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집 『분비(奮飛)』, 『죽림(竹林)』과 장편소설 「신생(新生)」 등이 있다. 


메이냥(梅娘) 1920-2013

만주국을 비롯한 화베이(華北) 지역의 대표적인 여성작가로 평가받는다. 1937년 일본에서 유학했고 이후 베이징, 상하이, 타이완 등지를 돌아다니며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집 『소저집(小姐集)』, 『제2대(第二代)』와 ‘수족3부작(水族三部作)’으로 불리는 「물고기(魚)」, 「조개(蚌)」, 「게(蟹)」가 있다. 


관모난(關沫南) 1919-2003

만주국의 대표적인 진보작가로 평가받으며 만주족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진보적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마르크스주의 문예학습소조를 결성하여 사회운동에 매진했고, 1941년 이른바 ‘하얼빈 좌익문학사건(左翼文學事件)’에 연루되어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집 『차타(蹉跎)』와 장편소설 「낙무시절(落霧時節)」, 「모래밭의 가을(沙地之秋)」 등이 있다.


단디(但娣) 1916-1992

만주국의 여성작가이자 편집자로 학창 시절부터 급진적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937년 국비 유학생으로 일본에서 유학하였으며, 1942년 만주국으로 돌아온 이후 사상적 이유로 인해 일본 헌병대에 붙잡혀 투옥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 「나무하는 아낙(砍材婦)」, 「수혈자(售血者)」와 『화문오사카마이니치(華文大阪每日)』에서 중편소설상을 수상한 「안디와 마화(安荻與馬華)」가 있다. 


샤오쑹(小松) 1912-미상

만주국의 작가이자 편집자로 학창 시절부터 다양한 문예 단체에서 활동하며 문예지 창간에 기여했다. 1937년 『명명(明明)』의 창간을 비롯해 『만주영화(滿洲映畫)』, 『예문지(藝文志)』, 『기린(麒麟)』과 같은 잡지의 창간 및 편집에도 참여했다. 1949년 이후 만주국에서의 활동으로 인해 친일작가로 평가받았다가 1982년 명예를 회복한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집 『사람과 사람들(人和人門)』, 중편소설 「민들레(蒲公英)」, 「야생포도(野葡萄)」 등이 있다. 


스쥔(石军) 1912-1950

만주국의 문학가인 동시에 교사,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문예단체인 ‘향도사(響濤社)’와 ‘작풍(作風)’의 초기 구성원이었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집 『변성집(邊城集)』, 중편소설 「궤도를 벗어난 열차(脫軌列車)」와 제1회 대동아문학상(2등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옥토(沃土)」 등이 있다.


왕추잉(王秋螢) 1913-1996

만주국의 문학가이자 문학사가로 학창 시절부터 관내의 진보적 사상을 흡수하며 애국 항일 문학 단체인 ‘표령사(飄零社)’를 조직하기도 했다. 산딩(山丁)과 함께 ‘향토문학’을 만주국 문학의 방향성으로 주장했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집 『거고집(去故集)』, 『소공차(小工車)』, 장편소설 『하류의 밑바닥(河流的低層)』, 1944년 출판한 『만주신문학사료(滿洲新文學史料)』 등이 있다. 


우잉(吳瑛) 1915-1961

만주족 출신의 여성작가이자 편집자이다. 1930년대부터 『대동보(大同報)』, 『사민(斯民)』, 『신만주(新滿洲)』, 『만주문예(滿洲文藝)』에서 기자와 편집자로 활동했고, 1939년 출판한 소설집 『양극(兩極)』이 ‘문선상(文選賞)’을 수상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양극』에 실린 「신유령(新幽靈)」, 「신여성의 길(新坤道)」 등이 있다.


위안시(袁犀) 1919-1979

군벌 가정 출신이며 소년 시절부터 강한 반일 감정을 품었던 인물이다. 1930년대 산딩(山丁) 등과 함께 ‘문선간행회(文選刊行會)’ 활동에 참여하며 작품창작 및 지하 항일운동에 매진했다. 1941년 ‘하얼빈 좌익문학사건’ 이후 베이징으로 도피, 1942년에는 시즈먼(西直門) 폭발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한다. 1947년 이름을 리커이(李克異)로 개명했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집 『수렁(泥沼)』과 『삼림의 적막(森林的寂寞)』, 장편소설 「패각(貝殼)」, 「면사(面紗)」 등이 있다.


이츠(疑遲) 1913-2004

구딩(古丁), 줴칭(爵青) 등과 함께 ‘예문지파’에서 활동했던 대표적인 작가이다. 어린 시절부터 러시아 문학에 큰 관심이 있었기에 1930년대부터는 창작 활동을 비롯해 다수의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기도 했다. 1937년 ‘향토문학’ 논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작품 「산정화(山丁花)」(한국어 번역본 「야광나무 꽃」)의 작가이기도 하다. 1940년대에는 일본의 요구에 따라 ‘시국 소설’을 창작하게 되고 이로 인해 친일작가라는 비판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단편소설 「산정화」와 단편소설집 『화월집(花月集)』, 『풍설집(風雪集)』 등이 있다.


줴칭(爵青) 1917-1962

‘예문지파’의 대표작가 중 한 명으로 당시 만주국 문단에서는 ‘귀재(鬼才)’, ‘중국의 앙드레 지드’로 불리었다. 뛰어난 일본어 실력으로 인해 일본 관동군 사령부의 일어 번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작품 전반의 어두운 분위기는 불우한 유년 시절과 우울한 내면을 반영한다고 평가되고, 창작 전반에 걸쳐 모더니즘 경향의 다양한 탐색을 시도하였다. 대표작으로는 1940년 문화회(文話會) 작품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밀(麥)」, 1942년 성경시보(盛京時報)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집 『어우양가의 사람들(歐陽家的人們)』, 1943년 제1회 대동아문학상(2등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황금의 좁은 문(黃金的窄門)」 등이 있다. 


 역자 소개                                                      

노정은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건국대학교 아시아문화정치연구소 소장


김혜주

건국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건국대학교 아시아문화정치연구소 연구원


박민호

상지대학교 중국문화산업학과 겸 자유전공학부 조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겸임교수

건국대학교 아시아문화정치연구소 연구원


정겨울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건국대학교 아시아문화정치연구소 연구원


정중석

건국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사

건국대학교 아시아문화정치연구소 연구원


손유진

건국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석사과정

건국대학교 아시아문화정치연구소 연구원



 차례                                                           


서문


산딩

산바람

투얼츠하 작은 마을에서


구딩

변금

유리잎


메이냥

난쟁이

물고기


관모난

두 뱃사공

지하의 봄


단디

나무하는 아낙


샤오쑹

은방울꽃


스쥔

무주지대

왕추잉

혈채


우잉

신유령

신여성의 길

란민


위안시

이웃 세 사람

삼림의 적막


이츠

고향의 원수

변경의 노래


줴칭

하얼빈

귀향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