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길에게 묻다

동길산 지음
쪽수
240쪽
판형
152*225
ISBN
978-89-92235-57-0 03810
가격
10,000원
발행일
2009년 2월 9일
분류
한국에세이

책소개

천자는 마차를 타고 천재는 걷는다


언제부턴가 인간이라는 동물은 걷기를 잊어버리고 있다. 진화론적으로 볼 때도 인간이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가장 혁명적인 사건은 직립보행이었다. 천자는 마차를 타고, 천재는 걷는다고 한다. 니체는 “창조력이 가장 풍부하게 흐를 때는 언제나 나의 근육이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는 순간이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로 이 책은 시인이 근육을 가장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얻은 사색의 결과물이다.


시인 동길산이 등단 20년 만에 낸 첫 산문집


저자 동길산은 20년 전인 1989년 등단한 전업 시인이다. 경남 고성의 시골에서 살면서 시 쓰기에 전념하고 있는 저자는 그동안 『을축년 詩抄』 『바닥은 늘 비어 있다』 『줄기보다 긴 뿌리가 꽃을 피우다』 『무화과 한 그루』 등 여러 권의 시집을 펴낸 바 있다. 하지만 산문집을 펴낸 것은 등단 20년 만에 처음이다. 이 책은 저자가 부산 곳곳을 비롯하여 경남 20개 시·군을 한 군데 빠짐없이 발품해서 쓴 부산·경남 기행 산문집이다. 그러나 책의 제목 『길에게 묻다』에서 짐작해볼 수 있듯이 이 책이 단순한 기행소감문이나 여행안내서는 아니다. 저자는 길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통로로 생각하고, 바로 그 길에서 나와 다른 남과 소통하는 광장을 발견한다.


들길 한가운데 나를 세우다


모든 사유는 걸음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끝없이 펼쳐진 길을 걸으며 바라보는 풍경에 끝없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자동차를 타고 한 바퀴 휙 둘러보는 걸로는 결코 대신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와 풍요로움이 있다. 걷기는 바쁘고 힘든 일상에서 상처받은 나를 치유하고, 지치고 찌든 몸과 마음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일이다. 들길 한가운데 나를 세우면 몸이 낭창대고 마음이 낭창댄다. 싱그러운 마늘밭과 버드나무를 보면서 나를 바라본다.


800km 산티아고 순례길에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그리고 그 순례길을 걸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나를 찾는 여정이었다고. 하지만 굳이 그 먼 나라가 아니면 어떤가. 시인은 살고 있는 고성집 인근의 부산 경남에 있는 길들을 새롭게 걸어본다. 오광대의 발상지인 합천 밤마리 들길을 걸으며 부당한 권위를 거부하던 저항의 길을 느낀다. 창원 주남저수지 둑길을 걸으며 둑길 이쪽과 저쪽이 하나로 이어져 상생하고 화해함을 기대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이 넘나드는 사천 선진리성 성길에서는 안이면 어떻고 밖이면 어떠냐고 말하는 성의 소리를 들으며, 삶의 낙천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부산 경남의 인문 지리지


합천 밤마리 들길, 거창 빼재 고갯길, 부산 이기대 해안길 등 18군데의 길이 실린 1부에서는 주로 아름다운 산책길을 소개한다. 혼자서 걸으며 사색에 잠겨도 좋고, 연인끼리 걸으며 다정한 말을 나누기도 좋으며, 혹은 사이가 틀어진 가족이 함께 걸으며 화해하고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길이다.


2부에서는 길을 걸으며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 17군데를 소개하고 있다. 카랑카랑한 지리산 아래 산청 산천재에서 남명 조식을 만나고, 숲길을 한참이나 올라간 김해 천문대에서는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을 만난다. 또 통영 남망산에서는 박경리, 윤이상을 비롯한 통영의 예술가들을 추억한다. 사천 굴항과 군위숲에서는 조선 바다를 지키기 위해 왜적에 맞서 싸우다 죽어간 이순신과 이름 없는 조선 수군을 애도한다. 길 하나하나에 서려 있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돌아다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문체에 대한 저자의 꿍꿍이


『칼의 노래』 저자 김훈 선생은 라디오 대담프로에 나와 자신의 문체에 대해 언급하면서 문체는 음색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사람마다 목소리가 다르듯이 사람마다 문체도 다르단 얘기였다. 맞는 말이다. 시인 동길산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문체는 지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번 산문집은 문체에 대한 저자의 꿍꿍이다.


동길산의 문체는 굳이 말하자면 벽돌쌓기 문체이다.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아가듯 한 문장 한 문장 글의 담장을 쌓아간다. 벽돌 한 장이라도 빠지면 위태해지는 담장처럼 한 문장이라도 빠지면 위태해지는 글이 저자가 추구하는 문체이다. 저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문체를 세 가지로 말한다. 짧게, 현재형, 그리고 ‘남보다 먼저 안 웃기’.


짧은 문장은 속도감을 준다. 그러나 글이 짧다고 짧은 문장이 아니며 글이 길다고 긴 문장이 아니다. 짧아도 긴 문장일 수도 있으며 길어도 짧은 문장일 수 있다. 일사일언처럼 결국 적재적소의 문제이다. 문장이 길어야 할 때 짧은 문장은 잘못된 문장이며 반대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형은 생기가 있다. 생동감을 준다. 현장에 있는 느낌을 준다. 일 분 일 초 만 지나도 과거가 되는 현실에서 현재는 얼마나 짧은가. 얼마나 귀한가. 욕심일는지 몰라도 나는 현재를 진득하게 붙잡고 싶고 내가 붙잡은 현재를 글 읽는 이와 함께 나누고 싶다. 현재형 문장은 그러한 나의 욕심이다. 욕망이다.


남보다 먼저 안 웃기. 우스운 얘기를 들려준다며 동네 조무래기들을 모아놓곤 얘기 도중에 먼저 웃던 형들의 기억! 글에도 표정이 있다면 표정관리가 잘 된 글이 좋은 글이리라. 나의 감정을 드러내기 전에 읽는 이가 감정을 드러내게 하는 글이 좋은 글이리라. 슬슬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글을 쓴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썼다가 지우고 썼다가 지우면서 나는 웃음을 참는다.(동길산)


이상이 문체에 관한 저자의 생각이고, 그런 글을 쓰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문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책은 비록 산문집이기는 하지만 한 편의 시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좋겠다.



저자 : 동길산

1960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지평』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을축년 詩抄』 『바닥은 늘 비어 있다』 『줄기보다 긴 뿌리가 꽃을 피우다』 『무화과 한 그루』를 펴냈다. dgs1116@hanmail.net


사진 : 박정화

부산에서 태어났다. 2006년 인도기행사진전을 연 바 있다. chand14@hanmail.net



차례

제1부


합천 밤마리 들길 11

창원 주남저수지 둑길 18

사천 선진리성 성길 25

삼천포 노산공원 돌나무길 32

마산 산호공원 ‘시의 거리’ 39

부산 영주동 시장통 46

함안 말산 고분길 53

진주 경남수목원 침엽수길 60

‘밀양’역 광장 68

태종대 등대길 75

하동포구 물길 82

해운대 청사포 오솔길 88

부산 이기대 해안길 95

남해 다랑이 마을 논길 102

거창 빼재 109

최계락 외갓길 115

부암동 굴다리 123

부산 영락공원 묘지길 130


제2부


산청 산천재 141

김해 천문대 147

낙동강 하구의 노을 153

함안 채미정 159

통영 남망산과 한려수도 165

범일동 증산 171

밀양 감내 177

의령 설뫼 183

영도다리 189

지리산 백무동 195

창녕 비봉리 유적 201

사천 굴항과 군위숲 207

양산 삼수리 212

진해 웅천 도요지 218

거제도 외포 224

마산 중앙부두 229

고성 대가저수지 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