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월례소전

하근찬 지음
쪽수
580쪽
판형
152*255
ISBN
979-11-6861-105-4 04810
가격
29,000원
발행일
2022년 11월 12일
분류
하근찬 전집 11

책소개

사할린으로 끌려간 수많은 월례들은 어디로 갔을까?


전집 11권, 장편소설 『월례소전』은 ‘식민지 말기에 강제로 끌려간 여성들은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소설적 응답이라 볼 수 있다. ‘정신대’로 통칭된 이 여성들은 ‘일본군위안부’와 동일시되었으나 사실상 ‘알 수 없는’ 존재였으며, 정확한 피해상황이나 삶의 족적에 대해 알려진 바가 지극히 적다. 

하근찬은 ‘월례’라는 인물을 통해 아시아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이 빚어낸 다양한 사건들을 소설 속에 교차하여 한 마을이 겪는 수난사를 직조했다. 또한 소설 후반부에는 월례가 집을 떠나고 사할린으로 끌려가는 서사로 넘어가며 사할린 한인 귀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기도 한다.

이처럼 『월례소전』은 식민지 말기를 재조명하고자 했던 작가의 원래 의도는 물론, 남한 사회가 식민 유산 및 피해자를 대상으로 구축해온 해석 체계에 비추어 역사성과 문학적 가치가 재검토되어야 하는 문학적 의의를 담고 있다.


열여섯, 늦깎이 국민학생 월례의 인생 유전


열여섯 살 늦깎이 국민학생인 주인공 월례는 담임선생님을 짝사랑하는 한편, 경성에서 방학을 지내러 온 중학생 광웅이와도 미묘한 감정을 교환하며 설레는 나날을 보낸다. 그런데 동척농장의 서기이자 광웅의 아버지인 홍 주사가 월례를 첩으로 들이려 하면서 큰 시련이 닥치게 된다. 응하지 않으면 소작권을 떼일 위기에 처한 것이다. 혼례 전날 밤 월례는 담임선생님의 도움으로 피신하지만 예식이 졸업 이후로 미루어졌을 뿐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를 거듭하던 월례의 혼사 소동은 ‘정신대’ 영장이 날아들면서 하루아침에 종료된다. 집을 떠난 월례는 홋카이도를 거쳐 사할린으로 이동했다는 편지를 보내오나 어느 순간 그마저 끊기고 마을엔 해방의 소식이 찾아온다. 이후 삼십여 년의 세월이 흘러 월례의 담임선생님은 월례가 다니던 학교에 교장으로 부임한다. 역시 그곳에 초임으로 온 월례의 조카는 신문에 수록된 사할린 한인 생존자 명단에서 월례의 이름을 발견한다.

『월례소전』은 근현대사를 통시적으로 다루는 여타 소설들과는 다른 결을 가진다. 전시체제하 농촌 동원과 수탈상은 이념형 역사소설처럼 민중의 분노와 저항을 촉발하는 계기가 아니라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월례의 인생 유전을 자아내는 동인으로서 작용하고 있다. 제목 그대로 이 소설은 ‘월례’의 이야기인 것이다


민중의 삶에 주목한 소설가 하근찬, 전쟁의 주변을 세세히 살피다


2021년에 ‘하근찬 전집’ 발간의 첫 시작을 알리는 『수난이대』 외 4종이 발간된 후, 2022년 11월에 하근찬의 소설, 중단편집 제5권 『낙도』, 제6권 『기울어지는 강』, 제7권 『삽미의 비』과 장편 제11권 『월례소전』이 2차분으로 발간된다.

2차분으로 발간되는 작품 속에서 하근찬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인들의 모습 그리고 삶과 시대의 풍랑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의 이야기, 전쟁의 주변, 바깥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증언하듯 그려내고 있다.

제5권 『낙도』에서는 1년 5개월 만에 어렵게 일자리를 얻었지만 병역 기피자 대상 예비역 훈련 소집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명구’, 특정 학생에게 특혜를 주고자 하는 학교의 처사에 저항하는 교사 ‘혜영’ 등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자본 권력이 만들어놓은 기형적 사회 구조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으며, 제6권 『기울어지는 강』에서는 시골을 등지고 무조건 도시로 향했다가 녹록지 않은 서울 생활로 인해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는 ‘병태’ 등의 인물들을 통해 전쟁을 다루지 않으면서 70년대의 소시민의 삶을 그린다. 

또 제7권 『삽미의 비』에서는 시인 ‘남궁’ 씨가 경험한 소소한 일화를 통해 1970년대 산업화 사회의 그늘을 가시화하는 청년의 사연을 드러내기도 하며, 제11권 장편 『월례소전』에서는 ‘월례’라는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며 일제강점기 등 혼란했던 사회 속에서 고통받았던 여성들의 삶을 통찰한다.


잊혀지고 배제된 존재들을 기록하는 하근찬의 시선


하근찬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망각된 존재들의 복원된 목소리와 본인의 경험을 중첩시켜 더 큰 파동을 만들며, 그 파동은 독자들에게 전달되어 계속해서 공명할 것이다.

하근찬은 당대 민중들의 삶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잉여적인 존재’들의 삶을 배제해왔는지 그려내고 있으며, 역사에서 지워지는 주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식민지 말기를 다루면서 식민지배로 인해 고통받았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하근찬 문학전집 간행위원회가 “한 작가의 문학적 평가는 전집이 간행되었을 때 비로소 그 발판이 마련된다”고 언급한 것처럼, 향토성 짙은 하근찬의 작품을 그의 고향인 영천의 사투리를 살려 발간한 <하근찬 문학전집>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의의를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제5권 『낙도』는 최슬기 문학연구자가, 제6권 『기울어지는 강』은 신현아 문학연구자가, 제7권 『삽미의 비』는 전소영 문학평론가가, 제11권 『월례소전』은 서승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각 작품의 해설 작업에 참여하여 하근찬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



첫 문장                                                                                         

그해엔 어찌된 셈인지 서리가 내리기 전부터 벌써 하늘에 까마귀 떼가 떴다.



연관 키워드                                                                                    

#하근찬 #한국소설 #근현대사 #한국전쟁 #역사소설 #민중 #전집 #일제강점기 #장편소설 #영천 #하근찬문학전집간행위원회 #백신애기념사업회 



책 속으로                                                                                       

p.50

월례는 책갈피 속에 네잎클로버를 이미 세 개 간직하고 있는 것이었다.

“좋겠다. 네 개나 되는데 이건 나 도고.”

“싫어. 행운의 구로발 누가 남 준다 카더노. 핫핫하…….”

“욕심쟁이 앙이가. 지 혼자만 행운의 구로발 모아 가지고 나중에 좋은 데 시집가겠다 그 말이제?”

“시집은, 별안간…….”


p.200

“월례 씨, 저번의 일은 용서해 주어요.”

“…….”

“월례 씨가 너무나 좋아서, 혹시 아부지한테 뺏기지나 않을까 해서 내가 월례 씨를 먼저 차지해 버릴려고 그랬던 기라예.”

“…….”

“용서하시겠죠? 예?”

“개안심더.”


p.344

“키사마 난사이까?(너 몇 살이야?)”

“…….”

“앙?”

“마흔아홉 살입니더.”

“욘쥬 큐? 엇헛헛허…….”

마흔 아홉이나 잡순 어른이 밤중에 학교로 낙서를 하러 오다니……. 낙서도 다른 낙서가 아니라, 결혼을 했다느니, 신랑각시라느니, 그런 아이들 같은 낙서를 말이다. 니시지마는 재미있지 않느냐는 듯이 임 선생을 힐끗 바라본다.


p.486

각 면에서 모여든 데이신타이 나가는 처녀들이 군청마당에서 인원 점검을 받고, 인솔관에게 인계되어 정거장으로 향한 것은 긴 여름 해가 거의 서쪽으로 기울어져서였다.

꼬박 하루를 뙤약볕 아래서 시달린 처녀들과 가족들은 땀과 더위에 절어 온통 새까맣고 후줄근했다.

장정들이 징병이나 징용으로 나갈 때와는 달리 첫 데이신타이는 읍내 사람들의 대단한 구경거리이기도 했다.


p.546

사할린 동포의 두 번째 기사가 신문에 난 것은 그로부터 서너 달 뒤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월례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다.

안 선생과 임 교장의 실망은 컸다. 그러나 뭐 괴롭거나 심란할 것 까지는 없었다. 역시 먼 옛날의 일이고, 또 임 교장은 직접 자기와 관련이 있는 일이 아니니 그럴 수밖에. 두 번째 기사가 나왔을 때는 안 선생 아버지 용길 씨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 선생이 할아버지 할머니 몰래 아버지에게만 그 신문을 갖다보였던 것이다.



작가 소개                                                                                       

하근찬(河瑾燦, 1931~2007)

193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동아대학교 토목과를 중퇴했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난이대」가 당선되었다. 6.25를 전후로 전북 장수와 경북 영천에서 4년간의 교사생활, 1959년부터 서울에서 10여 년간의 잡지사 기자생활 후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단편집으로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과 중편집 『여제자』, 장편소설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제복의 상처』 『사랑은 풍선처럼』 『산에 들에』 『작은 용』 『징깽맨이』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등이 있다. 한국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요산문학상, 유주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음성군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차례                                                                                           

발간사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해설 | 강제로 끌려간 여성에 대한 기억과 이야기-서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