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기울어지는 강

하근찬 지음
쪽수
496쪽
판형
152*255
ISBN
979-11-6861-103-0 04810
가격
27,000원
발행일
2022년 11월 12일
분류
하근찬 전집 6

책소개

유신정권 속 통제의 대상이었던 ‘농민, 장발족, 여학생’을 그려내다


5편의 중편소설이 수록된 『기울어지는 강』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1970~80년대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식민지 시대의 기억들이 유신정권하에서 어떻게 돌아오게 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하근찬은 전쟁을 말하지 않으면서도 당시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유신정권하에서 배제되어왔던 농민, 장발족, 여학생/소녀와 같은 존재들을 소설 속에 불러낸다. 여기서 다루는 작품 중 1972년 발표된 「기울어지는 강」만이 식민지 시기 중 ‘총후(전쟁 중의 후방)’의 기억을 다루고 있고, 「십오야」, 「보랏빛 연가」, 「여제자」, 「안개와 연꽃」은 전쟁을 거의 묘사하지 않는다.

표제작 「기울어지는 강」은 중일전쟁과 아시아태평양전쟁이 발발했던 1940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1940년대 당시 일본 제국의 미디어 및 옷과 머리카락 등 신체의 통제와 이 작품이 발표된 1970년대의 장발족이나 미니스커트 단속을 함께 고발하고 있다.

전집 6권 『기울어지는 강』에서는 유신체제와 그 이후 민중들의 삶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잉여적인 존재’들의 삶을 폭력적으로 배제해왔는지를 그린다. 전쟁이 끝난 이후, ‘후방’이 된 한국에서 여전히 농민, 장발족, 여학생과 같은 존재들은 ‘통제’와 ‘단속’의 대상이었고, 이는 하근찬에게 있어 중요한 문학적 대상이 되었다.


유신체제의 국민, 폭력적으로 배제된 ‘잉여적인 존재’들의 삶


5편의 중편소설은 유신체제와 그 이후 민중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기울어지는 강」은 1940년의 ‘치인(致仁) 학교’를 배경으로 ‘두발 단속’이라는 사건을 다룬다. 주인공인 교사 ‘한재명’이 부임한 학교 교장은 한재명의 머리에서 포마드 냄새가 심하다며 첫날부터 한재명을 탐탁지 않아 한다. 한재명은 특히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포마드를 발라 하이칼라 머리를 한 것이 문제가 되었고, 더 이상 교장과 학교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한재명은 결국 머리를 박박 밀고 술에 취해 다시 머리를 길러서 독립운동 하러 상해로 가겠다고 한탄한다.

1940년대 당시 일본 제국의 미디어 및 옷과 머리카락 등 신체의 통제와 이 작품이 발표된 1970년대의 장발족, 미니스커트 단속을 함께 고발하고 있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보랏빛 연가」의 주인공 ‘윤형규’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향한 맥주홀에서 첫사랑 ‘지혜림’의 소식을 듣는다. 첫사랑에 대해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있는 형규와 달리 혜림은 성폭력을 당하고 죽음을 지켜본 끔찍한 상황으로 당시를 기억한다. 과거를 정반대로 기억하는 두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이 소설의 효과는 극대화된다.


「십오야」는 농촌을 배경으로 농촌의 청년들을 다루고 있지만 ‘수난’이 아닌 ‘새마을 운동’으로 건설된 새로운 농촌의 활기찬 모습을 그리는 데 집중한다. 고향으로 가는 버스는 달리면 달릴수록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농촌 청년이 처음 도시를 보며 느낄 법한 놀라움과 어리둥절함, 당혹감이 오히려 도시에서 고향으로 가는 길에서 나타나는 아이러니함을 드러낸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여제자」에서 주인공인 소설가 ‘강수하’는 30년 만에 옛 제자들의 연락을 받는다. 자신을 짝사랑했던 제자 ‘홍연’과 자신이 짝사랑했던 ‘양순정’. 이 소설에서는 각 인물의 사랑이라는 감정에 집중하고 있으며, 전쟁의 묘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은 ‘홍연’, 즉 소녀의 감상성과 신체를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전쟁과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안개와 연꽃」에서는 남편의 바람으로 자신의 안정적이던 일상이 모두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린 주부와 그녀에게 안개를 빠져나올 방법을 조언해주는 여승(연꽃)이 등장한다. 


민중의 삶에 주목한 소설가 하근찬, 전쟁의 주변을 세세히 살피다


2021년에 ‘하근찬 전집’ 발간의 첫 시작을 알리는 『수난이대』 외 4종이 발간된 후, 2022년 11월에 하근찬의 소설, 중단편집 제5권 『낙도』, 제6권 『기울어지는 강』, 제7권 『삽미의 비』과 장편 제11권 『월례소전』이 2차분으로 발간된다.

2차분으로 발간되는 작품 속에서 하근찬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인들의 모습 그리고 삶과 시대의 풍랑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의 이야기, 전쟁의 주변, 바깥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증언하듯 그려내고 있다.

제5권 『낙도』에서는 1년 5개월 만에 어렵게 일자리를 얻었지만 병역 기피자 대상 예비역 훈련 소집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명구’, 특정 학생에게 특혜를 주고자 하는 학교의 처사에 저항하는 교사 ‘혜영’ 등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자본 권력이 만들어놓은 기형적 사회 구조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으며, 제6권 『기울어지는 강』에서는 시골을 등지고 무조건 도시로 향했다가 녹록지 않은 서울 생활로 인해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는 ‘병태’ 등의 인물들을 통해 전쟁을 다루지 않으면서 70년대의 소시민의 삶을 그린다. 

또 제7권 『삽미의 비』에서는 시인 ‘남궁’ 씨가 경험한 소소한 일화를 통해 1970년대 산업화 사회의 그늘을 가시화하는 청년의 사연을 드러내기도 하며, 제11권 장편 『월례소전』에서는 ‘월례’라는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며 일제강점기 등 혼란했던 사회 속에서 고통받았던 여성들의 삶을 통찰한다.


잊혀지고 배제된 존재들을 기록하는 하근찬의 시선


하근찬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망각된 존재들의 복원된 목소리와 본인의 경험을 중첩시켜 더 큰 파동을 만들며, 그 파동은 독자들에게 전달되어 계속해서 공명할 것이다.

하근찬은 당대 민중들의 삶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잉여적인 존재’들의 삶을 배제해왔는지 그려내고 있으며, 역사에서 지워지는 주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식민지 말기를 다루면서 식민지배로 인해 고통받았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하근찬 문학전집 간행위원회가 “한 작가의 문학적 평가는 전집이 간행되었을 때 비로소 그 발판이 마련된다”고 언급한 것처럼, 향토성 짙은 하근찬의 작품을 그의 고향인 영천의 사투리를 살려 발간한 <하근찬 문학전집>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의의를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제5권 『낙도』는 최슬기 문학연구자가, 제6권 『기울어지는 강』은 신현아 문학연구자가, 제7권 『삽미의 비』는 전소영 문학평론가가, 제11권 『월례소전』은 서승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각 작품의 해설 작업에 참여하여 하근찬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



첫 문장                                                                                         

1940년 2월 어느 날 밤, 한재명 선생은 대구역을 떠나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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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p.72

교장은 학교 전반의 환경구성 때문에 힐책을 당했다. 환경구성 중에서도 주로 교사 바깥벽에 ‘국채명징’·‘내선일체’·‘인고단련’ 세 표지를 왜 안 붙였느냐, 그 점에 대해서 따지고 드는 것이었다. 전번의 공문을 못 봤느냐, 도대체 공문을 뭘로 아느냐, 그리고 심지어 사상이 의심스럽다는 말까지 내뱉는 것이었다.

_「기울어지는 강」 중에서


p.157-158

그렇게 어처구니없게 남편을 잃어버리고 난 혜림은 한동안 넋이 나간 사람 같았다. 그날 밤 일을 생각하면 전신에 오스스 소름이 돋곤 했다.

좍— 좍— 퍼붓던 빗소리. 쏴— 쏴— 거세게 불어 닥치던 바람소리. 덜커덩거리던 창문 소리. 그리고 꺼졌다 켜졌다 하던 전깃불.

마치 이 세상이 끝나는 듯한 밤이더니, 결국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일이었다.

_「보라빛 연가」 중에서


p.213

그런데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도무지 낯설지가 않는가. 도로가 확장이 되고 집들이 새로 들어서서 그런지 아니면 아예 길이 딴 곳으로 뚫렸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상만아, 너 이 길 알겠나?”

해장술에 눈언저리가 약간 불그레해진 병태가 불쑥 묻는다.

“글씨, 어쩐지 첨 보는 길 같제?”

“이거 뻐스 잘몬 탄 거 앙이가? 여보! 운전수 양반!”

병태는 서슴없이 큰소리로 운전수를 부른다.

_「십오야」 중에서


p.314

일기를 읽고 난 나는 그만,

“허허허…….”

웃음을 터뜨렸다.

몹시 내성적인 계집애로구나 싶었다. 일부러 일요일에 하숙집까지 찾아왔다가 소매 없는 런닝을 입고 있다고 해서 부끄러워 못 들어오고 그냥 되돌아갔다니…… 보통 수줍어하는 성미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 성숙한 처녀임에 틀림없는 것이었다.

_「여제자」 중에서


p.433

나 그만 살고 왔어. 보따리 싸가지고 왔다니까—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걸 보니 예삿일로 다툰 게 아님이 분명했다. 물론 여자란 친정에 오면, 더욱이 어머니 앞에서는 감정이 줄 녹아 흘러서 마치 어린애처럼 말을 함부로 쏟아놓게 되기 마련이긴 하지만.

_「안개와 연꽃」 중에서



작가 소개                                                                                       

하근찬(河瑾燦, 1931~2007)

193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동아대학교 토목과를 중퇴했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난이대」가 당선되었다. 6.25를 전후로 전북 장수와 경북 영천에서 4년간의 교사생활, 1959년부터 서울에서 10여 년간의 잡지사 기자생활 후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단편집으로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과 중편집 『여제자』, 장편소설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제복의 상처』 『사랑은 풍선처럼』 『산에 들에』 『작은 용』 『징깽맨이』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등이 있다. 한국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요산문학상, 유주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음성군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차례                                                                                           

발간사


기울어지는 강

보랏빛 연가

십오야(十五夜)

여제자

안개와 연꽃


해설 | ‘유신’을 살아내는 민중들의 삶_신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