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낙도

하근찬 지음
쪽수
296쪽
판형
152*255
ISBN
979-11-6861-102-3 04810
가격
22,000원
발행일
2022년 11월 12일
분류
하근찬 전집 5

책소개

역사의 주변에서 지워지는 이야기를 조망하다


1955~65년 사이 발간된 단편소설 13편이 수록된 5권 『낙도』는 하근찬이 작가가 되고자 결심한 시점으로부터 전성기에 이르기까지 발표된 작품들이다. 이 시기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군부독재에 대한 우려가 민중에게 확산되는 혼란한 시기였다. 하근찬의 소설에는 상징질서에 대해 직접적인 저항은 하지 않더라도 변두리에 놓인 타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 근거를 확인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표제작 「낙도」는 섬마을의 계몽을 임무로 부여받은 인물의 고민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학예회 준비에 한창인 학교에 찾아와 구호 물품을 배급하며 아이들의 학예회 참석을 제한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는 ‘전도부인’과 이를 막기 위해 대립하는 ‘김 선생’의 모습을 통해 하근찬은 근대화로 급격히 유입된 자본 권력이 ‘하위주체’의 존재를 대리, 전유하는 방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 욕된 시절」, 「승부」, 「도적」은 일제강점기에는 지배 권력, 해방 후에는 자본 권력을 통해 계급 구조를 답습하는 기형적 사회구조를 보여주며, 「산중 우화」와 「이지러진 입」은 한국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예외 상태에 놓인 ‘하위주체’의 신체를 비인간화하여 나타내기도 한다. 

하근찬은 역사에서 지워지는 주변의 이야기를 기억하고, 진실을 기록하기 위해 증언과도 같은 소설을 썼으며, 『낙도』에서 그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전쟁의 풍파 속에서 민중들은 어떻게 살아갔을까


그러나 영감 할미는 거기에 무슨 말이 씌어 있는지 알 까닭이 없다. 그저 흰 것은 종이고, 검은 것은 글잔가 싶을 따름이었다. 하나 영감 할미는 그것을 얼마나 신기하고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지 몰랐다. 영감은 그 종이 한 장을 어제 산마루에서 주은 쇠붙이와 함께 품 안에 고이 간직했다.

“참 이상한 일도 많제? 어제는 보자…… 뭐라 캤지?”

“또 잊어먹었구나. 놋쇠 아니가 놋쇠. 멍텅구리야.”

“그래 맞았어, 놋쇠, 놋쇠를 주웠고, 오늘은 또 종이가 하늘에서 날라오고…….”

_「산중우화」 중에서


깊디깊은 산골에 사는 ‘영감’과 ‘할미’는 어느 날 산마루에서 탄환을 발견한다. 탄환이 무엇인지 모르는 두 사람은 그저 그것을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다. 또, 저 멀리서 들려오는 우르릉우르릉 하는 전쟁의 소리를 듣기도 하지만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은 알 수가 없다. ‘폭격 예정 안내문’도 발견하지만,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두 사람은 그 종이를 벽에 붙인다.

결국 폭격에 의해 ‘할미’는 참혹하게 죽고, ‘영감’은 그 어떠한 애도나 추모 없이 할미의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에 분노한다.

하근찬은 전쟁에 직접 참여한 인물들을 다룰 뿐만 아니라, 이처럼 전쟁의 바깥에서,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당시 인물들의 삶에 주목하기도 한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전쟁의 영향이 그들의 삶 속에 어느 순간 훅 하고 들어와 그 삶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 잔혹함 속에 있지 않았던 ‘할미’가 참혹한 시체가 되어 ‘영감’ 앞에 나타나 두 인물의 삶이 부서진 것처럼.


민중의 삶에 주목한 소설가 하근찬, 전쟁의 주변을 세세히 살피다


2021년에 ‘하근찬 전집’ 발간의 첫 시작을 알리는 『수난이대』 외 4종이 발간된 후, 2022년 11월에 하근찬의 소설, 중단편집 제5권 『낙도』, 제6권 『기울어지는 강』, 제7권 『삽미의 비』과 장편 제11권 『월례소전』이 2차분으로 발간된다.

2차분으로 발간되는 작품 속에서 하근찬은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주변인들의 모습 그리고 삶과 시대의 풍랑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의 이야기, 전쟁의 주변, 바깥에서 살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을 세세하게 증언하듯 그려내고 있다.

제5권 『낙도』에서는 1년 5개월 만에 어렵게 일자리를 얻었지만 병역 기피자 대상 예비역 훈련 소집으로 일자리를 잃게 된 ‘명구’, 특정 학생에게 특혜를 주고자 하는 학교의 처사에 저항하는 교사 ‘혜영’ 등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자본 권력이 만들어놓은 기형적 사회 구조 속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그리고 있으며, 제6권 『기울어지는 강』에서는 시골을 등지고 무조건 도시로 향했다가 녹록지 않은 서울 생활로 인해 다시 고향으로 내려오는 ‘병태’ 등의 인물들을 통해 전쟁을 다루지 않으면서 70년대의 소시민의 삶을 그린다. 

또 제7권 『삽미의 비』에서는 시인 ‘남궁’ 씨가 경험한 소소한 일화를 통해 1970년대 산업화 사회의 그늘을 가시화하는 청년의 사연을 드러내기도 하며, 제11권 장편 『월례소전』에서는 ‘월례’라는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며 일제강점기 등 혼란했던 사회 속에서 고통받았던 여성들의 삶을 통찰한다.


잊혀지고 배제된 존재들을 기록하는 하근찬의 시선


하근찬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망각된 존재들의 복원된 목소리와 본인의 경험을 중첩시켜 더 큰 파동을 만들며, 그 파동은 독자들에게 전달되어 계속해서 공명할 것이다.

하근찬은 당대 민중들의 삶 속에서 국가가 어떻게 ‘잉여적인 존재’들의 삶을 배제해왔는지 그려내고 있으며, 역사에서 지워지는 주변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식민지 말기를 다루면서 식민지배로 인해 고통받았던 삶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하근찬 문학전집 간행위원회가 “한 작가의 문학적 평가는 전집이 간행되었을 때 비로소 그 발판이 마련된다”고 언급한 것처럼, 향토성 짙은 하근찬의 작품을 그의 고향인 영천의 사투리를 살려 발간한 <하근찬 문학전집>은 한국 근현대문학의 의의를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제5권 『낙도』는 최슬기 문학연구자가, 제6권 『기울어지는 강』은 신현아 문학연구자가, 제7권 『삽미의 비』는 전소영 문학평론가가, 제11권 『월례소전』은 서승희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각 작품의 해설 작업에 참여하여 하근찬 문학의 현재적 의미를 밝히고 있다.



첫 문장                                                                                         

“그 부모네가 어떻겠능교,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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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p.29

별안간 또 설음이 복받쳤다. 고목나무가 보였던 것이다. 벼락을 맞아 까아맣게 탄 나무가 부러진 팔뚝을 쳐들고 있는 듯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돌메댁이는 밤알만 한 멍울 때문에 목이 아파 어떻게 좀 울어볼 재주가 없었다. 이때, 먼 산 위로 해가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오늘따라 햇빛이 왜 이렇게 눈부신지 모르겠다. 골이 휭 돈다. 어지럼증이 나는 것이다. 들메댁이는 그 자리에 가만히 쭈그리고 앉아버렸다.

_「낙뢰」 중에서


p.65

위생병은 명구가 왜 자꾸 시간을 묻는지 그 까닭을 모르기 때문에 큰소리로

“글쎄요. 한 여덟시 삼십일 분쯤 됐겠죠.”

하고는 히죽히죽 웃었다. 그러자 명구는

“빨리, 빨리.”

하고 이번에는 같은 발음을 두 번 되풀이했다. 역시 초조한 빛이얼굴에 있었다. 잠시 후 다시 그는

“몇 시”

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이미 위생병의 귀에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앰뷸런스는 얼마 남지 아니한 육군병원을 향해 마구 달리고 있었다.

_「절규」 중에서


p.153

“세상에 참 고마운 이도 있제.”

서울바닥에 온 후로 처음 보는 인심 후한 집이었다. 덕님은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다가, 무엇인지 자꾸 못 놓여 또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저런 집에 한 번 살아봤으만…….”

_「기아선상에서」 중에서


p.267

“야아 저 구두, 내 발에 꼭 맞겠대이!”

구두와 선교사를 번갈아 바라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선교사는 씽긋 웃으며, 그 구두를 집어다가 창국이에게 안겨주는 것이었다. 그것을 받아 안고 창국이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입이 실룩실룩 귀밑까지 째져나가는 것이었다.

_「낙도」 중에서



작가 소개                                                                                       

하근찬(河瑾燦, 1931~2007)

193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동아대학교 토목과를 중퇴했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난이대」가 당선되었다. 6.25를 전후로 전북 장수와 경북 영천에서 4년간의 교사생활, 1959년부터 서울에서 10여 년간의 잡지사 기자생활 후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단편집으로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과 중편집 『여제자』, 장편소설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제복의 상처』 『사랑은 풍선처럼』 『산에 들에』 『작은 용』 『징깽맨이』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등이 있다. 한국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요산문학상, 유주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음성군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차례                                                                                           

발간사


낙뢰

이지러진 입

절규

온혈적(溫血的)

산중 우화

벽지로 가는 길

기아선상에서

두 아낙네

승부

도적

바람과 노교사

그 욕된 시절

낙도(落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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