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보이지 않는 숲

조갑상 지음
쪽수
400쪽
판형
140*210
ISBN
979-11-6861-099-6 03810
가격
18,000원
발행일
2022년 11월 1일
분류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2022 부산정보산업진흥원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지원 선정작

책소개

우리는 이념대립 국가폭력을 넘어설 수 있는가?

한국 사회의 ‘보이지 않는 숲’을 걸어간 사람들


참혹한 역사의 수레바퀴 속 개인이 진 멍에와 굴레 

치열한 작가정신이 길어 올린 해원과 상생의 비나리



한국 현대사의 비극, 그 내면화된 상처에 대한 응시


『밤의 눈』으로 제28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조갑상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 이번 소설에서는 여산의 삼산면을 배경으로 작가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보도연맹 사건’과 함께 ‘국가보안법 사건’을 다루며 우리 현대사의 아픈 단면을 살펴본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전후로 이념대립이 가져온 피바람이 이웃과 이웃, 개인과 개인을 갈갈이 찢어놓는 상황. 작가는 여산이란 마을, 큰산이란 가상의 공간을 설정했다. 『보이지 않는 숲』은 여기서 벌어지는 보도연맹, 국가보안법, ‘한국사회의 이해’ 교재 사건, 세 가지 주요 사건을 중심으로 차마 입도 벙긋할 수 없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김인철’이라는 인물을 통해 펼쳐놓는다. 


한국전쟁이 휩쓸고 가버린 후에 



“여기 종로경찰선데 좀 만납시다. 9월호에 재미나는 글이 실렸더라고요. 저녁 식사 뒤에라도 좋으니 정보과로 오시오. 7시까지. 듣고 있소?”_p.13

모든 국민에게 정부의 눈이 따라다니던 1967년, 잡지 <월세계>의 기자 김인철은 독자 투고란을 담당하고 있다. 어느 날 한 기고글로 인해 경찰서로 호출된 김인철은 그곳에서 그 글을 집필한 서옥주를 만나게 된다. 경찰은 해당 글이 이적표현물이라며 두 사람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고, 둘은 모욕을 털기 위해 술 한잔을 기울이게 된다. 보도연맹과 한국전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아버지를 잃었다는 공통점을 공유하게 된 두 사람은 그날의 인연을 계기로 같은 집에 살게 된다. 시간이 흘러 고향인 여산으로 돌아와 교사로 일하게 된 김인철은 학교 공적비 훼손 사건에 얽힌 여산의 어두운 과거를 알게 되는데….



냉혹한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자, 이승만 정부는 남한 사회 내부에서의 이적행위 혹은 후방에서의 소요사태가 있을까 크게 우려하였다. 이에 따라 ‘이적행위’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 보도연맹원에 대한 ‘예방학살’을 결정하게 된다. 우선 군과 경찰은 보도연맹원들을 일정한 장소에 모이도록 소집령을 내렸다. 맹원들의 소집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에는 경찰이 직접 연행에 나섰다. 소집 및 연행된 맹원들은 창고, 경찰서, 형무소에 일정 기간 구금되었으며, 결국은 인근 야산지역으로 끌려가 집단으로 학살되었다. _박찬승(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냉혹한 역사의 한가운데에 내몰려 있는 여산과 마을 사람들. 김인철은 그 진실을 향해 힘겹게 한 걸음을 뗀다. 『보이지 않는 숲』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을 파악하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인물에 밀착하여 시대상을 드러낸다. 광복 이후 일본인들의 처우, 친일파들의 행동, 광복의 기쁨 뒤에 찾아온 잔혹한 전쟁, 체제 변화에 따른 잔인한 폭력과 학살. 시대를 거쳐 온 자들의 지극히 현실적인 감정과 장면을 서술하며 구체적으로 시대의 잔상을 그려내고 이를 통해 사건의 입체감을 더한다. 



보도연맹 학살, 그 이후를 살아가다



1945년 해방 이후 삼팔선으로 나누어진 뒤 한국전쟁으로 고착된 분단 상황은 여러 형태로 오늘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쟁은 오래전에 끝났지만 그때의 상처는 저마다 가슴에 남아 되살아나고, 정치 사회적 문제에서는 여전히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시간이 흘러도 국가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진실을 아는 사람들을 공격하고 입을 막는다. 삼키지 못한 말을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물고만 있는 서옥주는 혹여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까지 다칠까 마음을 졸인다.

냉혹한 역사는 개개인의 인생에 어떻게 자리하는가. 국가는 남겨진 사람들을 어떻게 탄압하는가. 그와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들은 또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보도연맹이라는 국가폭력이 남긴 상흔은 끈질기게 인물들을 따라다니며 새로운 사건을 만들고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역사는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우리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과거의 일로 치부되곤 한다. 그러나 설령 먼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라 할지라도, 나고 자란 지역과 국가의 역사는 그 장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과거는 현재에 영향을 끼치고, 개개인의 삶을 구축하는 사건으로 자리한다. 조갑상 소설가는 이러한 역사적 토대와 진실 사이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의 내면을 건져 올려 시대를 대변한다.


천착, 해원과 상생의 치열한 비나리


빨갱이는 죽여도 되고, 빨갱이 자식은 주홍글씨를 새겨 조리돌림 당하던 사회. 알려고 하면 할수록, 항의하면 할수록 더 혈안이 돼 빨갱이 사냥에 나선 군상들. 누군가는 애써 지우려 하고 묻으려 한다. 그런 만큼 누군가는 지독할 정도로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승냥이 떼를 피해 달아나려, 달아나려 해도 집요하게 찾아드는 저주받은 울음소리. 악머구리 끓듯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을 갉아먹는 환청들. 떼려야 뗄 수 없는 주홍 낙인 속에 개인은 역사의 굴레를 벗어날 길을 찾지 못한다. 조갑상 소설가는 역사와 사건을 개개인의 삶과 긴밀히 연결 짓는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세계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천착이다. 천착穿鑿 : 깊이 살펴 연구함. 후벼서 구멍을 뚫음. 잔인한 국가폭력이 아물지 않은 생채기로 각인되었듯, 가련한 이들의 상처 핥기는 여전히 계속된다. 역사가 개인에게 지운 멍에와 굴레는 쉬 사라지지 않는다. 그만큼 작가의 해원과 상생의 비나리는 치열하다.


조갑상 소설가의 신작 장편소설 『보이지 않는 숲』과 함께 작가의 초기 작품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길에서 형님을 잃다』가 재출간되었습니다.

저자 소개                                                          

조갑상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혼자웃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 『밤의 눈』을 냈으며, 소설집에는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 『테하차피의 달』 『병산읍지 편찬약사』가 있다. 일반 저서로는 『이야기를 걷다』 『소설로 읽는 부산』 등이 있다. 요산문학상과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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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P.38 아버지는 여름에도 양복을 입을 정도로 입는 것, 먹는 것 모두가 까탈스러워 어머니를 힘들게 했지만 대인관계는 매우 시원시원해서 남의 일이나 동네일에 잘 나섰다. 어머니 말로는 그렇게 도와준 이들 중에 좌익에 몸담은 사람들이 있어 보도연맹이란 데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p.169 아버지를 업은 아들이 무춤하게 멈추었다가 이내 걸음을 뗐다.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가는 게 등에 업힌 부친의 가쁜 숨소리를 듣는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같이 섰던 지게 진 아들도 뒤따랐지만 뒤에 선 자위대원이 지게를 붙잡아 세웠다. 아버지를 업은 아들도 끌리다시피 제자리로 돌아오고 잠시 뒤 지게를 벗은 아들이 아버지를 뒤에서 껴안아 흙바닥에 앉혔다. 아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쓰러질 듯 비스듬히 앉은 부친에게 절을 올렸다. 엎드려 흐느끼는 형제는 자위대원에 이끌려 현장에서 떨어졌다. 길 모롱이까지 십여 걸음 되돌아오는데 너네 없이 걸음이 무거워 한참 걸렸다. 얼마 뒤 총소리가 빵빵 났다.


p.290~291 김인철은 어쩔 수 없이 서옥주와 서울 종로경찰서를 걸어나오던 그 치욕의 가을밤을 떠올렸다. 칙칙폭폭 동요 빌려 철길가 사람들 인정이 훈훈하다고 연기 피운 건, 경찰이 제 애비 죽였다는 소리 하기 위해 분칠하고 화장한 거야! 형사는 그때 이적행위란 말까지 했다. 서옥주의 글 한 줄이 이적 표현이라면 지금 그가 읽어낸 교재는 통째로 이적표현물 혐의를 덮어쓰고 있었다. 30여 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니, 그는 무섭고 허탈했다. 그래서인지 독후감은 큰산으로 끝났다. 큰산 철쭉제 시를 두고 씹어대던 나경삼 화백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 사람이나 법을 다루는 사정 당국에게 이 책은 큰산을 두 개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쓴 게 틀림없었다. 김인철은 또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자기 스스로 큰산을 두 개로 만들고 있었다.


p.351 하지만 김인철은 작은아들에게 네 엄마가 왜 이렇게까지 과민하게 반응하고 걱정을 하는지 아느냐고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식들에게 그들의 할아버지들은 육이오전쟁 중에 ‘어쩌다 일찍 돌아가신’ 분들일 뿐이니 그 선을 넘어서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증인 출석 문제를 아들놈에게 맡겨두는 것도 괜찮다는 판단도 있었다. 제 할아버지들의 생사를 가른 전쟁을 제 애비 에미가 상처로 싸매고 있다면 손자들은 달라야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차례                                                              

1장 기찻길 옆 오막살이

2장 마을로 간 전쟁

3장 큰산을 두 개로 만들려는 사람

4장 시골집 마당에 자라는 풀 같은

5장 아이를 먼저 구해주세요


해설: 『보이지 않는 숲』의 배경_박찬승(한양대 사학과 명예교수)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