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남 지음
쪽수 | 22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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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140*205 |
ISBN | 979-11-6861-052-1 03810 |
가격 | 16,000원 |
발행일 | 2022년 6월 24일 |
분류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책소개
마음 깊은 고향, 추억을 곱씹는 정형남의 소설집
고향의 정취와 과거의 그리움을 보여주는 정형남 소설가의 소설집이다. 제1회 채만식문학상을 수상한 정형남 소설가의 단편 8편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는 각 등장인물이 고향을 그리워하거나 과거를 회상하고 반성하며 삶의 근원을 찾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일상을 살아가다 우연히 고향, 과거와 마주한 인물들은 그것을 회상하며 추억에 젖거나, 그 당시로 되돌아가고자 하거나, 과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뉘우친다. 각 인물의 서사 속에는 6.25 전쟁, 베트남전, 부여 낙화암 이야기 등이 담겨 있다. 과거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일반 시민, 삼천궁녀가 떨어져 죽었다는 낙화암 전설 등을 통해 당시의 안타까운 서사와 인물이 묘사되어 있다.
살아 있는 것의 아름다움으로 과거의 슬픔을 비추다
「금빛백금거미」는 거미줄을 타는 금빛백금거미의 긴 발가락을 보고, 피아노 연주를 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손가락을 떠올리는 ‘나’의 내면을 보여준다. 텔레비전으로 그녀의 피아노 연주를 처음 본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그녀와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피아노 연주를 위해 고국을 떠난다. ‘나’는 금빛백금거미의 모습과 그녀의 편지를 떠올리며 하염없이 그녀를 기다리지만, 뒤늦게 그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알게 된다. ‘나’는 생존을 위해 거미줄을 치는 거미의 발가락을 보고 그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녀를 그리워한다. 그녀의 실종 소식과 함께 거미의 존재가 사라졌음을 나타내는 마지막 장면은 ‘나’의 그리움과 슬픔을 실감하게 한다.
그리고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새벽 산책길을 나섰다가 눈사태를 만나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표백되면서 정신이 혼미하였다. (…) 순간, 나는 몽환자처럼 자리에서 솟구치듯 일어났다. 그리고 한달음에 뒷동산으로 오르는 샛길로 내달았다. 금빛백금거미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간밤의 폭풍우에 몇 가닥 거미줄의 잔해만 처절하고 애처롭게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금빛백금거미」에서
표제작 「심향(深鄕)」은 안식처를 찾기 위해 바다를 떠도는 장어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이다. 안식처를 찾기 위해 바닷속을 헤엄치던 ‘나’가 도착한 곳은 어부의 뜰채 안이었다. 양식장으로 옮겨진 ‘나’는 그곳으로부터 생존하여 안식처로 돌아가고자 한다. ‘나’의 형제들은 양식장 주인의 손에 잡혀 음식점 손님의 상에 올라가게 된다. 장어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이야기는 자신을 먹잇감으로 취급하는 인간의 잔인함을 형상화한다.
트라우마를 극복해내다
「점(點)」은 ‘나’의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머리를 다듬어주거나 양말을 기워주던 어머니의 손길은 ‘나’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끊기게 된다. 이발소에 간 ‘나’는 목울대에 닿는 면도날에 과거의 트라우마가 떠올라 뛰쳐나온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나’는 외할아버지의 환갑잔치에서 소의 목을 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어머니는 ‘나’의 트라우마를 알고 ‘나’의 눈 밑 점을 손수 없애준다. 이발소에서와는 달리 ‘나’는 어머니의 손길과 품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나는 어머니에게 모든 걸 맡기기로 하였다. 감긴 눈 속에 수면이라는 불청객이 찾아들었다. 이발소에서 느꼈던 섬쩍지근한 공포감이 들지 않은 것은 어째서일까? 어머니에 대한 믿음. 어머니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없었다면 감히 내 얼굴을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발소에서 가졌던 충격적인 기억의 연상작용. 다시 말해서 면도날이 내 목줄기에 와 닿았을 때, 소의 목을 따던 공포와 두려움이 소름살로 밀려들었던 것은 면도사 아가씨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없어서였을 것이다. -「점(點)」에서
「겨울 문신」은 과거의 잘못이 낳은 죄책감으로 인해 여성과의 만남을 꺼리는 신동의 이야기이다. 어느 겨울날, 신동은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의 숙소에 발이 묶이게 된다. 스스로 탈출구를 찾기 위해 숙소를 나선 신동은 여자를 발견한다.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여자를 덮친 신동은 뒤늦게 그 여자가 할머니임을 알고 줄달음을 친다. 신동의 과거 행동은 지금까지도 죄책감으로 남아 있었고, 여성과 만남을 가질 때마다 그 할머니의 모습이 아른거렸던 것이다. 신동은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죄책감을 털어내기 위해 할머니에게 사죄를 하기로 결심한다.
과거를 회상하고 역사를 기억하다
「이발사」는 과거 베트남전이 발발했던 시절, 파견 생활을 함께했던 문서전과 장 소위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다. 장 소위는 문서전이 파견 생활을 하던 부대의 파견대장이었다. 베트남전에 자원한 장 소위는 주둔지 인근 숲속에서 여자와 아이를 만나고, 이후에 폭격으로 죽은 이들의 시신을 묻어준다. 전쟁에서 부상을 입고 돌아온 장 소위에게 약혼녀가 아이를 낳다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군인으로서 죄 없는 사람들을 죽게 한 것에 대한 인과응보라고 생각한 장 소위는 이발사가 되어 사람들의 머리를 다듬어주며 참회하는 마음을 가진다.
「낙화(落花)」는 부여 낙화암에서 마주친 ‘그녀’와 낙화암 삼천궁녀의 이야기이다. ‘그녀’는 자신이 당나라로 붙잡혀 간 신라 궁녀의 후손이라고 한다. ‘나’가 그녀의 사진을 찍어주자 그녀의 모습이 마치 궁녀처럼 보이며, 그 당시의 모습이 신기루처럼 떠오른다. 백제와 신라의 싸움에서 전리품으로 잡혀 온 여인은 왕족인 화을계 장군에게 보내진다. 모든 게 낯선 곳에서 여인은 고향을 그리워한다. 장군은 여인에게 ‘석 달 동안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면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여인은 고향에 돌아가고자 하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장군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결국 장군과 사랑에 빠진다. 침입자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 궁궐은 불길에 휩싸인다. 장군을 사랑했던 여인은 결국 낙화암 아래로 뛰어내리고, 낙화암에서 마주친 ‘그녀’를 잊고 지내던 ‘나’에게 그녀의 자살 소식을 알리는 담당형사의 전화가 걸려온다.
“아파트 13층에서 뛰어 내렸어요. 그런데 자살로 보기에는 미심쩍어서요.”
“자살을 위장한 타살일 수도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자살로 처리하면 그뿐인데, 그렇게 마무리하기에는 왠지 동정이 가서요. 더구나 국제적인 성격인지라…….” (…)
“전화를 받고 황급히 집을 나선 사내는 그 길로 다시 중국으로 건너갔어요. 그와 거래를 텄던 거간꾼이 은신처가 노출되었으니 빨리 중국으로 도피하라는 연락을 한 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사촌오빠가 전해 온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어요. 그는 마약 밀매자로 붙들려 도망치다 총살을 당했다는 거에요.” -「낙화(落花)」에서
남겨진 현재를 바라보다
「갈목 빗자루」는 신선정과 차인행이 세상을 떠난 오제갈 선생의 과거 행적을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오제갈 선생은 과거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좋은 집을 가지는 것은 오제갈 선생의 평생 소원이었다. 오제갈 선생은 책을 가득 쌓아둔 단칸방에 살면서 가정사에 일체 신경 쓰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빌붙는 것은 일상이 되었다. 자린고비 삶을 살면서 오제갈 선생이 남긴 것은 아파트상가와 주택, 시골집을 구입한 등기문서였다. 가난에 한이 맺힌 채 악착같이 돈을 모으며 살았던 오제갈 선생의 삶은 마치 갈목 빗자루와 같았다.
「바람의 눈빛」은 사람들과의 갈등, 적대감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나’의 이야기이다. ‘나’는 유흥을 즐기지 않았고, 사람들과의 경쟁으로 지쳐 있었다. 사회에서 탈출한 ‘나’가 도착한 곳은 절이었다. 그런데 절에서도 보이지 않는 적이 ‘나’를 옥죄었다. ‘나’는 절에서 생활하며 과거의 고통 속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한 해를 절에서 보내고 나는 그 보이지 않는 적이 한 차례 바람의 눈빛이었음을 깨닫는다. ‘나’가 도망치고자 했던 사람들과의 갈등과 적대감, 그로 인한 상념 또한 바람처럼 지나갈 것이다.
말벌들이 떠난 텅 빈 성채는 다시금 외로움으로 가득 찼다. 불어 치는 찬바람만큼이나 외로움이 콧날을 후볐다. 그와 함께 잠시 무심하게 일별하였던 적의의 눈빛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동안의 낯익음이라 할까, 적의보다는 살가운 눈빛으로 다가왔다. (…) 살갑게 얼음장 속으로 애잔하게 휘돌아 흐르는 계곡물 소리인가 싶었는데, 처음으로 실체를 드러낸 그 음향은 보이지 않는 바람의 눈빛이었다. -「바람의 눈빛」에서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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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새벽녘, 가만스레 안개비가 내렸다.
책 속으로
P. 60 드디어 자유를 얻었도다! 나는 가슴에 차오르는 환희를 마음껏 누렸다. 바닷물과 합류하는 지점에 이르러 비릿한 갯벌내음을 맡았다. 가까이에서 파도소리가 들리고, 물큰 깊고 깊은 바다의 향수가 눈시울을 적셨다. 내가 태어난 곳,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어떠한 난관에 부딪칠지라도 기어이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새 생명을…….
-「심향(深鄕)」 중에서-
P. 99 “늦었지만 나의 과실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만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아무리 힘겹고 무거운 중량으로 다가올지라도. 네 말대로 지금이라도 할머니에게 용서를 빌고 싶어. 너에게 내 마음을 털어놓고 나니까 조금은 가슴에 맺힌 죄의식이 풀려나면서 용기가 나.”
신동은 상기된 얼굴로 차량의 소음으로 가득찬 거리를 바라보았다.
“맞선을 보고 나서 그 길로 나와 함께 할머니를 찾아가자.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앞으로 나아가는 길밖에 없어. 구름장을 헤치듯 말이야.”
-「겨울 문신」 중에서-
P. 218 달빛 아래에서 어미 소의 목이 잠긴 비탄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이 땅 위에서 생명을 품안은 어머니의 한스러운 마디진 삶이 문득 가슴을 쳤다. 일제강점기와 육이오 전쟁을 몸소 겪어온 우리네 어머니들의 고단하고 핍박하였던 인고의 삶…….
시절이 아득하게 느껴지는데도 어머니의 한 서린 한숨소리가 해조음으로 들려온다. 차가운 겨울밤 문풍지 울음소리로 가슴을 파고드는 어머니의 한 맺힌 삶의 여정은 세계의 폭력성에 속수무책 당해야 했던 가슴앓이였다. 어머니의 지난한 삶의 여정은 나의 문학이자 토양이자 시원(始原)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저자 소개
정형남
『현대문학』 추천, 『월간문학』 신인상, 『세계의문학』으로 작품활동. 『남도(5부작)』로 제1회 채만식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창작집 『수평인간』 『장군과 소리꾼』 『진경산수』 『노루똥』, 중편집 『반쪽 거울과 족집게』 『백 갈래 강물이 바다를 이룬다』, 장편소설 『숨겨진 햇살』 『높은 곳 낮은 사람들』 『만남, 그 열정의 빛깔』 『여인의 새벽(5권)』 『토굴』 『해인을 찾아서』 『천년의 찻씨 한 알』 『삼겹살』(2012년 우수교양도서) 『감꽃 떨어질 때』(2014년 세종도서) 『꽃이 피니 열매 맺혔어라』 『피에 젖은 노을』, 『맥박』을 세상에 내놓았다.
목차
금빛백금거미
심향(深鄕)
점(點)
겨울문신
이발사
갈목빗자루
낙화(落花)
바람의 눈빛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