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경 지음
쪽수 | 152쪽 |
---|---|
판형 | 127*188 |
ISBN | 979-11-6861-000-2 03810 |
가격 | 12,000원 |
발행일 | 2021년 12월 31일 |
분류 | 산지니시인선 016 |
책소개
지금-여기의 일상을 조명하는 일관된 시선
김해경 시인의 신작 시집 『내가 살아온 안녕들』이 산지니시인선으로 출간된다. 계간 『시의 나라』에서 등단하여 세 권의 시집을 출간한 김해경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지금-여기의 일상을 해부하며 삶의 풍경을 드러낸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시인은 감각을 열어 풍경을 새롭게 바라본다. 시인이 바라보는 일상은 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며, 밝은 표면 아래에 미세한 실금이 자리하는 위태로운 세계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 세계를 외면하지 않는다. 곧은 시선으로 아래의 일상을 전시하고 조명하는 시인의 세계는 그들의 일상 자체와 위를 바라보는 화자들의 눈빛을 주목한다. 『내가 살아온 안녕들』의 시편들을 읽어나가다 보면 인물들이 살아온 내력과 함께 현재 내가 살아내고 있는 지금-여기의 일상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아래에 자리한 미세한 실금
김해경의 시는 일상을 응시한다. 일상은 나날의 삶을 말한다. 느끼지 않고 스쳐 지나가면 달라질 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타자와 사물을 민활하게 받아들이는 이에게 시시각각의 풍경은 늘 새롭기 마련이다. 풀밭을 보더라도 서서 볼 때와 앉거나 누워서 볼 때가 다르다. 확연히 다가오는 다양한 풀잎 사이로 여치가 송아지만큼 커질 수 있다. 감각을 열고서 지각할 때 삶은 생동한다. 구체적인 것(the concrete)의 어원은 함께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풍경의 세목에 충실할 때 경험은 풍부해질 수밖에 없다. 단지 사물로 다가오는 대상이 아니라 삶의 풍경은 매우 복잡다단하다. 김해경 시인의 눈길은 자연 사물을 향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기를 포함한 타자의 일상적 삶을 향한다. _구모룡(문학평론가)
각 시편들에는 우리가 매일 목도하고 스쳐 지나가는 현장이 담겨 있다. “아침마다 커피 찌꺼기를 먹은 행운목”에 “쥐약 같은 직사광선”을 먹이고, “고객님을 위한 단기카드대출”(「행운목 기르기」) 안내 문자를 본다. 리어카에 실려 가는 토마토를 바라보며 “너무 익어 터져버린 토마토의 결 사이로 파리가 들끓는 계절이 오고 지루한 세계가 가는 것을”(「토마토와 고양이」) 지켜본다. 어느 종점횟집의 수족관 속에서는 “산소의 기포는 더욱 약해지고/죽어가는 생선의 아가미가 가엾어”(「종점횟집」)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시인이 응시하는 세계는 놀랍거나 새로운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시인의 눈으로 줌인된 세계는 우리에게 조금 낯설고 흥미롭다. 그 세계는 보통의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미세한 균열에 초점화 되어 있다. 균열의 모서리를 더듬어 찬찬히 살펴보는 시인의 눈에는 극진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스며 있다.
파리가 들끓는 계절이 오고 지루한 세계가 간다
김해경의 시에서 일상은 위로부터 진행되지 않고 아래로부터 시작한다. 꿈, 환상, 다른 곳에 대한 동경이 없는 바가 아니지만, 이 또한 지금-여기의 비참을 말하는 방법의 목록일 뿐이다. 아래로부터의 일상은 시인의 일관된 시선이자 오랜 시적 덕목이다. _구모룡(문학평론가)
매일 같은 일상이지만 사람이 자리한 위치에 따라 반복되는 일상도 그 풍경을 달리한다. 시인이 주목하는 일상은 “마른 라면을 부숴 먹으며/손톱 밑의 때를 쪽쪽 빨고”(「메리 크리스마스」) “파리가 들끓는 계절이 오고 지루한 세계가 가는 것을 지켜”보는 지금-여기다. 시인은 아래의 일상을 전시하며 그들의 삶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렇기에 가끔 위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다. “지하철 1호선, 발목이 우그러진 아기 엄마”에게 “더러운 문명을 버리고” “티티카카 호수로 가자”(「티티카카 호수로 가자」)며 절대로 갈 수 없는 유토피아 같은 세계로 떠나자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고 나아가는 길은 “더운 여름 깊디깊은 지하에서 계단을 오른다는 것”만큼 힘든 일이고, “사막의 모래파도를 헤쳐나가는 것보다”(「높이의 원근법」) 힘든 일이다. 시인은 막연하게 희망적인 미래로 그들을 데려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원하는 세계와 아래에서 벗어나려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의 갈망을 전시하며 지금-여기를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 소개
김해경
부산 출생
2004년 『시의 나라』 등단
시집 『아버지의 호두』, 『메리네 연탄가게』, 『먼나무가 있는 곡각지 정류장』
kyung-6287@hanmail.net
책 속으로
리어카에 토마토가 실려 가네 물러터지기 직전의 소쿠리 앞에 삐뚤하게 쓰인 –한 소쿠리 오천 원, 탱탱하고 쭈글하고 국물이 삐질 온갖 잡다함이 다 섞여 있어 주먹으로 콱콱 으깨고 싶은 욕망이 오르네 욕망의 열기가 한창일 때 이야기이네.
―「토마토와 고양이」 부분
지금은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일거수일투족이 낱낱이 까발려지는,
그런 날들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유리병 속의 작은 물고기처럼 헤엄치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온 안녕들」 부분
내일은 해피뉴이어, 사람이여 우리 내일까지만 살아 있자
살아서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자, 이 넓은 광장에
―「박스 하우스」 부분
차례
시인의 말 하나
제1부
토마토와 고양이 | 바람개비 보호구역 | 바람이 불어오면 좋겠다 | 내가 살아온 안녕들 | 메리 크리스마스 | 티티카카 호수로 가자 | 뼈를 누인다 | 박스 하우스 | 울타리에 대한 의심 | 18번 출구 | 재개발 | 높이의 원근법
제2부
연애 역사 | 치킨샐러드를 먹어요 | 사건들 | 종점횟집 | 일기오보 | 베란다 확장 공사 | 門. 닫습니다 | 한밤의 뉴스 | 멈춘 계절 | 뽕브라 | 불통사회 | 힐튼, 보다 | 휘파람이 나지 않아 | 당근마켓 | 패디큐어와 쇼핑백과 1004번 버스 | 맹종죽 | 신발장 | 거미염소 | 코로나 유감
제3부
아기 고양이가 콩알처럼 뒹구는 한낮 | 남은 팔목이 가렵네 | 독백 | 엄마 몰래 동생과 아지노모도를 설탕처럼 퍼먹다 구역질과 함께 죄와 벌을 생각해본 어떤 날 | 정물 | 행운목 기르기 | 벽에 걸린 시간들 | 귀가 | 목덜미 | 붉은 지붕 위로 날아가는 새처럼 | 오독이 지나간다 | 울트라 마스크 | 종려나무 귀 후비개 | 기억을 붙들어 매다 | 풍경이 있었구나 | 전호나물 | 행복한 식탁 | 밀밭 가는 길
제4부
총알 배송 | 기상관측소 가는 길 | 수양붉은능금꽃 | 바람의 역할 | 커튼콜 | 황야의 틀니 | ㅇㅇㅅㅋㄹ | 시뮬레이션 | 커밍아웃 | 호러 무비 | 한파특보
해설: 아래로부터의 일상-구모룡(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