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아 지음
쪽수 | 224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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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125*205 |
ISBN | 978-89-6545-728-2 |
가격 | 15,000원 |
발행일 | 2021년 5월 20일 |
분류 | 한국소설 |
책소개
당신의 삶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일상의 귀퉁이 한쪽이 깨진 채오늘을 살아내는 사람들
정제된 문장으로 모순된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서정아의 두 번째 소설집
『오후 네 시의 동물원』은 2014년 『이상한 과일』 이후 7년 만에 출간되는 서정아 소설가의 두 번째 소설집이다. 8편의 소설에는 인간 삶의 단면과 그 심층에 감추어진 복잡한 무늬들이 정교한 문장으로 표현되어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남들과 똑같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잠을 잔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 침투한 뜻 모를 불안은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일상을 조금씩 갉아먹는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아도 모른 척하며 그들은 오늘도 일상을 살아낼 뿐이다. 일상의 귀퉁이 한쪽이 깨진 채 오늘을 살아내는 인물들의 모습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어딘가 닮아 있다.그들에게 닥친 사소한 불행,
그 불행이 일상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어딘지도 모르고」는 진오가 낸 교통사고로 가난한 할머니가 사망하면서 시작된다. 예상보다 쉽게 이루어진 합의에 진오 부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그들에게 벌어진 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살아간다. 그렇게 그들의 행위, 선택, 말 등에서 비롯된 문제들은 서서히 삶에 균열을 일으킨다.
「조금 언성을 높였을 뿐」의 강은 아내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그가 풀샷으로 날린 골프공이 나무에 맞고 아내의 눈을 강타한 사고 때문이다. 불운한 사고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와 아내 진은 한쪽 눈을 실명하고 의안을 끼워야 했다. 하지만 강과 진은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로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부부의 생활은 겉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그들 스스로는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무너져가는, 어쩌면 이미 무너져버린 관계를 애써 모른 척하고, 부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신과 서로를 위무한다.한순간 사라진 아이들,
엄마는 아이의 공백을 가만히 더듬는다
「사라진 아이」 는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아들 동훈을 찾아 헤매는 싱글맘 유란의 이야기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유란은 동훈을 찾지만 집 안 어디에도 동훈은 보이지 않는다. 늦은 시간까지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유란은 직접 아들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유란은 아이의 흔적을 통해 자신이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을 발견하게 되고, 동훈에 대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어쩌면 동훈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녀가 삶에 짓눌려 허덕이고 있던 사이에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침은 느리게 온다」는 물놀이 사고로 아들을 잃은 후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유경의 일상을 담고 있다. 유경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채 쉽게 판단하고 이야기하는 타인들은 그녀를 더욱 아프게만 한다. 살아남은 아들의 친구를 원망해보고, 행복했던 아들과의 추억을 떠올려도 보고, 아이를 말리지 못한 자신을 후회해보지만, 아들을 향한 애도는 끝나지 않는다. 그녀는 마냥 놓아버리고만 싶은 생을 둘째 아이를 부둥켜안으며 붙잡을 뿐이다.가족이라는 아이러니,
그 이상한 관계를 되짚어본다
「양의 울음」의 윤은 자신이 일했던 호주의 양 공장을 떠나온 후에도 가끔 양의 시체가 등장하는 꿈을 꾸고, 양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윤은 친부모를 찾으러 한국에 온 입양인 휴고와 알츠하이머를 앓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가족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목도한다. 그로테스크한 양 공장의 묘사와 함께 혈연이라는 관계의 이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오후 네 시의 동물원」은 휴가를 맞아 가오슝으로 떠난 가족이 겪는 사건을 통해 한 가정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무더운 여름, 그들은 갖은 고생 끝에 동물원에 도착하지만 오후 네 시의 동물원은 평온하다 못해 나른해 보인다. 엄마인 도연은 이따금 서늘해지는 가족에 대한 마음을 다잡지만, 사소해 보이는 작은 일들마저 자꾸만 그녀의 마음을 흔든다. 카메라 렌즈에 금이 가고, 하마 우리에 하마가 보이지 않고, 아이가 떼를 쓰다 엉덩방아를 찧고.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 야생 원숭이까지 발치 앞으로 다가오니 그녀는 그저 울음을 터뜨리는 수밖에 없다.
씁쓸한 현실과 쓸쓸한 ‘나’의 세계
「카빙」은 이상보다 현실의 편익을 따르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조리 교사 오윤의 이야기이다. 스스로가 말라 죽어가는 나무처럼 비틀어져 있다고 느끼지만, 오윤은 회의나 자책보다는 합리화와 외면이 더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에게 아무런 도움도 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대로 돌아서고 만다. 현실에 순응하며 내일을 위해 날카롭게 칼을 벼리는 오윤.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겹의 세계」의 안젤라는 오랜 친구들과 함께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서로를 아끼고 기쁨과 슬픔을 나누지만, 그들의 삶에는 함께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의 빚에 허덕이는 안젤라, 낙태수술을 감행하는 루시아와 미카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가족과 지인들에게 외면 받는 요한. 안젤라는 오랜 우정이나 이성적인 이해만으로 겹쳐질 수 없는 개인의 세계에 쓸쓸함을 느낀다.서정아 소설가는 인물이 겪는 모순적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인물들은 현재의 상황과 감정에 혼란을 느끼면서도 성실하게 내일을 준비한다. 오늘을 살아내고 다음 날의 출근을 준비하는 현대인처럼 말이다. 혼란한 감정을 가다듬을 새도 없이 매일을 살아가는 인물들에게 우리는 그저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키워드
#단편소설 #일상 #균열 #서정아 #이상한 과일 #오후 네 시의 동물원 #한국문학 #소설
첫 문장
새 유리 어항으로 옮겨진 물고기들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헤엄쳤다.
책 속으로
p.26 어차피 죽은 고기야.
진오는 집게로 장어의 머리를 뒤집으며 말했다. 불판에서 치익, 하고 물기 닿는 소리가 났다.
우리가 아니어도 누군가에게 구워 먹힐 고기라고.
진오는 상추쌈을 쌌다. 양념이 묻은 장어 토막을 두 개나 넣고 각종 야채도 한 젓가락씩 듬뿍 얹어 엄청나게 커다래진 쌈을 한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한참 입을 우물거리더니 입에 있던 것을 꿀꺽 소리 내어 삼키고는 말했다.
그러니 무서워할 것 없어.
p.60 그들은 침묵 속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서로 조금 언성을 높였을 뿐, 그들은 서로를 여전히 사랑한다고 믿었고 그들이 누리고 있는 평온하고 안락한 삶은 앞으로도 전혀 나빠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문득 고요한 공기를 가르고 자동차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뭔가가 둔탁하게 부딪치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p.112-113 유란은 동훈의 종합장을 책가방에 넣으려다가 표지를 들추었다. 혹시 무슨 메모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는데, 한 장씩 페이지를 넘겨보아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낙서들과 틀린 표시가 가득한 수학 문제들뿐이었다. 온통 빨간 빗금이 그인 문제풀이 페이지들을 넘기면서 그녀는 아이가 혼자 견뎌야 했을 오답의 시간들에 눈이 붉어졌다. 동훈이 남긴 메모 같은 건 없었는데도 어쩐지 아이가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알 것만 같았다.
p.140 그들은 오랜 시간 함께했지만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었고, 교집합의 영역을 벗어나는 부분들이 분명 각자에게 존재했다. 그건 오랜 우정이나 이성적인 이해만으로는 겹쳐질 수 없는 개인의 세계였다.
p.193-194 “…선생님은 못 도와주실 거예요.”
경서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원망과 절망스런 확신이 묻어 있었다. 오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경서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았다. 경서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힘없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오윤은 바람에 삐거덕거리는 문을 바라보다 결국 돌아섰다. 경서의 뒷모습을 보니 어쩐지 선화가 자신을 떠난 이유에 대해서도 모두 다 알 것만 같았다.
저자 소개
서정아
200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풍뎅이가 지나간 자리」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으며, 소설집으로 『이상한 과일』이 있다.
clawjsanf@hanmail.net
목차
어딘지도 모르고
조금 언성을 높였을 뿐
오후 네 시의 동물원
사라진 아이
한 겹의 세계
양의 울음
카빙
아침은 느리게 온다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