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

김두리 구술 | 최규화 기록
쪽수
240쪽
판형
145*210
ISBN
978-89-6545-738-1 03810
가격
16,000원
발행일
2021년 9월 8일
분류
여성 에세이

책소개

우리는 인구가 아니라 인간이다

인간은 숫자가 아니라 생애로 기억돼야 한다


포항 사투리로 자신의 생애를 풀어내는 29년생 김두리 할머니의 이야기. 다년간 기자 생활을 해온 손자가 할머니의 삶을 기록하였다. 현대사를 지나온 할머니의 생애가 한 줄 사건 혹은 숫자로 뭉뚱그려진 인물들의 삶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위안부와 강제징병, 해방 후 좌우대립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목격자이자 당사자로서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손자에게 들려주는 할머니 자신의 삶 속에는 혹독한 시절을 건너온 아픔,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가족사는 물론 앞으로 삶을 살아갈 손자를 염려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녹아 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독자들이 여실히 느낄 수 있도록 고군분투하는 기록자의 마음도 함께 녹아 있다.


내가 열다섯 살 묵던 해,
요새 그거 위안부 영장이 오는 거야.


그때는 ‘위안부’라꼬도 안 하고 방직회사 일 시킨다고, 자기네는 첩때 말하기를 그렇게 했어. 결국 가보면은……. 나는 첩때는 그것도 몰랐어. 오새같이 이래 세상일에 밝지를 않고, 그때는 전화가 있나 머가 있노? 텔레비전이 있나, 천지 어디 소문 들을 데가 없잖아. 결혼시켰는 사람은 임자가 있으니까 앤 델꼬 가고, 결혼 안 하고 있는 처자들은 다 델꼬 갔는 거야. (p.30)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김두리 할머니의 생애는 가난에서 시작된다. 입을 것도 먹을 것도 없는 시대에 일본군은 집안의 청년들을 빼앗아 가는 것도 모자라, 미혼의 여성들마저 전쟁 속으로 끌고 가려 한다. 자식을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은 부모들은 중신애비를 보내 신랑감을 물색한다. 사위가 얼마나 가난하건 얼마나 나이가 많건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자식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할 뿐이다. 그녀의 어머니 또한 김두리 할머니의 신랑감을 구해오지만 그녀는 이렇게 말하며 그들을 쫓아낸다. “가소. 두말할 거 없이 나는 열 살이나 더 문 사람하고는 결혼 안 하니까 가소. 당사자가 마다하면 가는 거지.” 그렇게 김두리 할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파혼을 결행한다.


“어무이요, 이래 서이 사시더.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


느그 큰아버지 얼굴이가 아롱거려서 못 죽겠더라고. 그래서 거 못둑에 앉아서 실컨 울었다. 울고, 그래가지고 다시 마음 돌래묵고, 악착같이 살아서 살아 오면 만내야지, 그래 생각하고 허브고 뜯고 왔다.
오니까 느그 큰아버지캉 느그 증조모캉 둘이 꺼머이 해서 앉았더라. “보지도 몬하고 연락도 몬하고 그래 오나” 느그 증조할매캉 나캉 붙들고 우니까 느그 큰아버지도 따라 울고…….
“어무이요, 이래 서이 사시더.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 (p.148)

여자는 글공부를 시키지 않는 때였지만, 김두리 할머니는 글공부를 했다. 누가 시킨 것은 아니었다. 남동생이 배워 익히는 것을 옆에서 듣고 띄엄띄엄 읽으며 스스로 공부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시대는 김두리 할머니에게 결혼 혹은 전쟁을 요구했고,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결혼 이후의 삶은 여전히 궁박했다. 전쟁으로 군대에 끌려간 남편,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죽은 딸, 여전히 텅 비어 있는 장독대.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른 채 김두리 할머니는 한 줄기 빛처럼 날아든 남편의 소식에 포항으로 향한다. 피란 가는 사람들을 헤치고 미군이 드글대는 위험한 거리를 지나 그녀가 만나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눈앞에 놓인 강물에 뛰어드는 것밖에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이지만 그녀는 다시 한 번 마음을 가다듬는다. 살다 보면, 사다 보면 끝이 있을 거라고.


목소리를 내는 순간,
역사는 다시 이곳으로 불려온다


교과서를 통해서만 역사를 보면 그 속에서 희생당한 이들의 면면을 확인할 수 없다. 그들이 어떤 생을 살았고 어떤 감정을 겪었을지 단편적으로 유추할 뿐이다. 그 시절의 풍경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을 떠올리고, 어떻게 함께 살았는지를 기록하는 일은 사람을 사람으로 기억하기 위한 작업이다. 시대를 거쳐 온 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순간, 역사는 현재가 되어 다시 이곳으로 불려온다.
이 책을 통해 손쉽게 생략되었던 사람들의 생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기를 바란다. 참혹한 시절을 견뎌낸 사람들이 ‘인구’가 아닌 개개인의 ‘인간’으로 기록되기를,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인간’의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첫 문장

내가 기사년 생인데. 기사생 뱀띠다.



책 속으로

p.30 “자석을 낳아가지고 사지로 보낼 수가 있나. 머시마는 남자라서 군대로 간다 하지만, 여자로 우예 목숨이 죽을지 살지 모르는 데로 보내노.”
그래 엄마가, 어디라도 결혼시켜야 된다 하대. 그래서 어디 머시마 있다 하면 다 중신애비를 보냈는 거야. 엄마가 그때는 살림도 안 보고, 신랑만 있으면 빨리 시집보낸다 했어. 죽는 거카마 낫다꼬, 거 보내는 거카마 낫다꼬.


p.56 즈그 수량대로 공츨 안 대고 묵고살 끼라꼬 숨가놨다가, 다들래서 나오면 또 뛰드려 맞는다. 디배서 나왔는 거는 자기네 공출 수량 모잘래면 그걸 가주간다니까. 그래서 더 물 게 없었다. 농사지은 거 그양 묵고살라꼬 했으면은 그렇게 고상은 안 했지. 그래 배로 곯고, 물 게 없어서 산에 가서 꿀밤 따 묵고…….


p.86 그래 니도 야야, 정치는 하지 마라. 정치에는 발 들여놓지 마라. 정치 따문에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나, 야야. 니는 모른다. 느그 앤 났을 때라서 니는 모른다. 정치는 나는 딱 싫데이. 내 니인데 벌써버텀 그랬제? 정치에는 절대로 발 들여놓지 마라. 정치는 이래졌다 저래졌다 하니까 언제 어예 될지 모르는 거야.


p.103 날 데리고 피란 간다고 거 왔는데, 동생이 붙들래 가뿐 거야. 내 때문에 붙들래 갔는 거야. 그래 가뿌고 없어가지고, 엄마캉 나캉 “우야노…….” 내들 울고 앉아 있으니까, 피란 와 있는 사람들이 달래주고 해사터라. 그래도 할 수 없지 뭐, 난리판에 어짤 수 없잖아.


p.114 여덟 달, 아홉 달 만에 손수로 썼는 편지가 한 장 왔는데, 내 말은 한마디도 없더라꼬. 엄마 안부만 해가지고, 아들은 잘 있나, 그래 편지가 왔더라. 편지를 받고 보니까 더 괘씸하고, 눈물이 나는 거야. 그래서 내가 편지를 썼는데, 내 앞으로 한 장 쓰고, 엄마 앞으로 한 장 써서 보냈더라.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 하면서 편지를 썼데.


p.228 아득하이, 어떤 때는 느그 큰아버지 사진을 보고 생각하면 아득하이 그렇다. 느그 큰아버지 사진 쳐다보고, 느그 작은고모 사진 쳐다보고, 내가 한숨을 쉬다가 우다가……. 죽은 자석 생각코 내 울고 있으면 살아 있는 자석들인데 안 좋다 하는데 싶어서, 아이고 내가 이칸다고 살아 오나, 그기 나슬 끼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내가 그라고 세월로 냄기고 있다.



저자 소개

구술 김두리


1929년 경북 영일군(현재는 포항시)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오남매를 키웠다. 열다섯 살 되던 해 봄, ‘위안부’ 징집을 피하려고 어머니가 결혼 시키려 했으나 한 차례 파혼했다. 그해 가을 열일곱 살의 최상회와 결혼했다. 남편의 일본군 징병을 피해 산골에 숨어 살다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좌우 대립은 끔찍한 고통의 시간을 남겼다. 남편은 좌익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모진 고문과 옥살이를 겪어야 했고, 시동생은 경찰의 손에 학살당했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전쟁이 터지고 군대에 간 남편은 일곱 달 넘게 소식 한 장 없었다. 그사이 첫 딸이 죽었다는 말은 편지에도 쓰지 못했다. 마을에는 남편의 부대가 전멸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가난과 외로움 속에 살아갈 희망을 잃고 두 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한 번은 죽을 팔자가 못 돼서, 한 번은 아들 얼굴 때문에 죽지 못했다.
“사다 보면 끝이 있겠지요.”
삶을 끝내는 것조차 뜻대로 하지 못해서, 언젠가 자연스레 주어질 ‘끝’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가난하고 고된 시절을 살아냈다. 네 명의 딸과 세 명의 아들을 낳았다. 그 가운데 둘을 가슴에 묻었다. 현재 93세로, 경북 포항시에 산다. 자식들을 걱정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여전히 그의 가장 큰 일이다.


기록 최규화


김두리 여사의 손자. 월간 작은책, 오마이뉴스, 북디비, 베이비뉴스를 거치며 12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기자로 일하는 동안 국제앰네스티 언론상, 양성평등미디어상, 인터넷선거보도상, 정치하는엄마들 올해의보도하마상 등을 받았다. 『0~7세 공부 고민 해결해드립니다』, 『달빛 노동 찾기』, 『숨은 노동 찾기』, 『난지도 파소도블레』 등의 책을 함께 썼다.
지금은 할머니의 이야기가 열어준 인연의 길을 따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일한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에 전하는 일이다.
위성처럼 떠다니는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이야기를 모으는 것이 꿈이다.



차례

머리말


1. 어린 시절
오남매를 혼자 키운 엄마
어린 이야기꾼
“머시마로 났으면 좋았을걸”
열다섯, 파혼 소동
처녀들은 일본으로 데려간다고


2. 궁박한 시집살이
시부모님의 내력
머슴살이 삼형제
빼앗긴 말, 빼앗긴 이름
“보릿고개 때는 걸음도 못 걸었지”
없는 살림에 공출까지
어깨너머로 배운 길쌈


3. 해방은 됐지만
징병을 피하려 산골로
좌우로 갈라진 세상
“형이라 동생이라 말도 못하고”
학살…… 침묵해야 했던 죽음


기록자의 글 1


4. 전쟁의 시작
세 살 딸을 잃고
마당으로 피란 온 사람들
인민군에 끌려간 동생
“삼대독자 내 동생 내놔라!”

5. 신랑이 겪은 전쟁
일곱 달 만에 온 편지
신랑 찾으러 무작정 포항으로
“안 죽고 살아 있네”

‘구사이생’ 목숨을 건지고


6. 죽어도 죽을 수 없는 삶
가난에 울고 외로움에 울고
죽으려고 꿩약을 먹다
“며느리부터 머여 죽도록 만들랑교”
계상양반을 혼내주다
물에 비친 아들 얼굴 때문에
둘째 아들을 낳다


기록자의 글 2


7. 자식들을 키우면서
자식들을 낳고 맛본 짧은 행복
그 시절의 ‘독박육아’
‘모전자전’ 시어머니와 남편
재주 좋은 남편
“가스나 요것만 안 낳았으면”


8. 딸을 시집보내고
“덕은 딸 덕을 더 보면서”
밀주 단속반을 속인 명연기
결혼할 땐 다 해주고 싶었는데
열두 시간 만에 깨어나다
자식들 결혼 이야기


9. 그립다, 고맙다
남편의 세상 마지막 날
“다음 생엔 부잣집 둘째 아들로”
밭을 사둔 이유
가슴에 묻은 첫째 아들
고생 많은 큰며느리


기록자의 글 3


김두리 생애연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