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데린쿠유

안지숙 지음
쪽수
264쪽
판형
140*205
ISBN
978-89-6545-606-3 03810
가격
15,000원
발행일
2019년 6월 27일
분류
한국소설

책소개

마음속 깊고 어두운 지하도시를 헤쳐 나가는 어른들의 성장소설

깊은 우물처럼 지하로 들어간 공간들을 이어주는 통로.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비정규직 인생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은 소설집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을 펴낸 안지숙 작가가 첫 번째 장편소설로 다시 한 번 독자를 끌어들인다. 실감나는 대화와 빠른 전개, 경쾌한 분위기로 풀어가는 인물들의 서사는 웃음과 울음을 동시에 터트리게 하는 묘한 매력을 선사한다.
위키피디아에서 글을 수정하며 세상에 일조하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는 백수 민현수. 이런 현수에게 세라는 꺼림칙한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인터넷상에서 송찬우를 괴롭혀달라는 것인데 현수는 송찬우의 삶을 파고들면서 자신의 삶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퍼즐을 맞춰나간다. 어린 시절 형의 죽음으로 트라우마를 겪은 현수의 성장소설이면서, 마음속에 어둡고 복잡한 지하도시 데린쿠유를 품고 살아야 했던 어른들의 성장소설이다.
현수는 아버지 소유의 공동작업실에서 청소나 형광등 가는 일을 하면서 용돈을 받아 쓴다. 아버지 그늘에 편안하게 먹고사는 태평스러운 젊은이로 보이지만 속까지 무사태평한 건 아니다. 현수에게는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는 어릴 적 상처가 있지만 누구도 현수의 상처를 들여다보지 않았고 현수조차 자신의 마음속 상처를 돌보지 않았다. 현수는 폭식을 일삼으면서 무기력한 청년으로 자랐다.
그렇게 아무런 야망 없이, 무탈하게, 무해한 존재로 살아가던 현수에게 최근 수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부하기엔 너무 아까운 조건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현수는 자신의 삶에 숨겨진 수수께끼를 하나씩 풀어간다. 매사 무기력하기만 했던 현수는 수수께끼를 푸는 과정에서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의 아픈 사연에도 귀 기울이기 시작한다. 현수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소설은 현수의 이야기가 되고 동시에 세라의 이야기가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고통을 치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수는 갑자기 나타난 세라에게서 수상한 아르바이트를 제안받는다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각자 작업을 하는 공동 작업실에서 관리자를 자임하며 세월을 보내는 현수에게 의문의 여자, 세라가 나타난다. 세라는 아버지의 지인으로, 현수에게 ‘아는 고모’를 자처하며 아르바이트를 제안한다. 이번 선거에서 양명시 시장 예비후보로 나온 송찬우의 뒤를 캐서 인터넷상에 올려달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송찬우를 해작질하는 수고비로 차 한 대를 주겠다고 한다. 현수는 느닷없이 나타난 세라의 아르바이트 제안이 수상하지만 단번에 아르바이트 제안을 거절할 수 없다. 꺼림칙하지만 현수는 세라의 아르바이트 제안을 받아들인다.
소설은 현수라는 입체감 있는 캐릭터로 빠르게 사건을 전개한다. 실감나는 대화와 빠른 전개로 인해 지루할 새 없이 소설에 몰입하게 한다. 작가는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붙잡고서 소설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


꼬불꼬불한 지하도시를 들여다보다
현수와 현수를 둘러싼 어른들의 성장스토리


데린쿠유는 터키에 있는 거대한 지하도시다. 현수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은 마음속 깊은 곳에 하나의 지하도시를 숨기고 산다. 마음속 지하도시는 숨기고 싶고, 숨고 싶은 시간이 심연처럼 혹은 미로처럼 얽혀 있는 데린쿠유와도 같은 곳이다. 세라의 말처럼 “우물보다 무한정 깊고 무한정 더 큰 지하도시. 그런 곳에 틀어박히면 모종의 어떤 위협에서도 무한정 멀어질 것”이다. 소설의 인물들은 스스로 그곳에 갇혔으나 결국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마음의 상처와 숨기고 싶은 기억을 고통스럽지만 끄집어내는 것이다. 소설은 독자에게 각자 마음속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길 권하며 일단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라고 말한다.



첫 문장

현수는 계단을 내려가면서 머리를 헝클었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p.7 현수는 사소한 일에도 금방 피곤해졌다. 뚱뚱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런 경향이 있다. 같은 일을 해도 표면적이 넓어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많이 소비되기 때문일 것이다. 에너지가 딸리면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마련이다. 언젠가 위키에도 그렇게 작성해 넣었다. 현수가 작성한 위키의 글을 읽고 누군가 편견이라고 여겼다면 비웃거나 수정을 했을 것이다.


p.12 다솜은 단단해 보이는 이로 닭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앞니 두 개가 유난히 큰 다솜의 작은 얼굴은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성깔 있는 토끼를 연상시켰다. 반반치킨 하나를 너끈히 먹어치울 수 있는 현수는 땅콩과 아몬드만 얌전히 씹었다. 회비 없는 회식을 이뤄낸 ‘능력자 다솜’을 칭송하는 사람들과 달리 현수는 놀라지 않았다. 남들 몰래 수줍어하며 다솜을 눈여겨봤기 때문에 공용회비가 어떻게 절약되는지 알고 있었다.


p.129 현수의 잡념 속으로 데린쿠유가 비집고 들어왔다. 우물보다 무한정 깊고 무한정 더 큰 지하도시. 그런 곳에 틀어박히면 모종의 어떤 위협에서도 무한정 멀어질 것이다. 세상은 현수를 잊을 것이고, 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관심도 결국 끊길 것이다. 공상 속으로 달아나면서 현수는 눈앞에 걸려 흔들거리는 경고장을 지워버리고 있었다.


p.130 그것은 미로였다. 아니, 통로였다. 깊은 우물처럼 지하로 들어간 공간들을 이어주는 통로. 그 통로의 중심은 지하로 들어가는 관문 아래 수직으로 깊은 곳에 있을 거였다.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순간이동을 하고 싶었다. 터키에 있는 현실의 데린쿠유로 직접 갈 수도 있다는 생각 같은 건 현수의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저자 소개

안지숙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오랫동안 문화기획사에서 일하며 여러 책을 집필했고, 실제 생존자와 사망자의 가족 이야기를 다룬 기록 『1995년 서울, 삼풍』을 공저했다. 비정규직 인생으로 살아온 애환을 담은 소설집 『내게 없는 미홍의 밝음』을 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읽고 생각하고 쓸 예정이다. 현재 두 번째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차례

아르바이트 할래?
사라진 송찬우
왜 하필 나한테
버킷리스트
오래된 우물
납치되다
세라의 사랑법
꽃을 뿌리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지하도시 데린쿠유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