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빌헬름 텔 인 마닐라

아네테 훅 지음 | 서요성 옮김
쪽수
264쪽
판형
142*212
ISBN
978-89-6545-545-5 03850
가격
15,000원
발행일
2018년 9월 21일
분류
독일소설

책소개

문학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
독일 문학의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는 작가 ‘아네테 훅’
그녀가 전하는 언어, 문학, 역사 그리고 자유


아네테 훅(Annette Hug)은 스위스 연방문화재청이 수여하는 스위스 문학상(Literaturpreis des Schweizer Bundesamtes fur Kultur, 2017)을 수상한 독일어권 문학의 떠오르는 소설가다. 역사학을 전공하고, 필리핀 국립대학에서 여성학과 개발학을 공부하면서 글쓰는 이의 존재 의식과 언어의 힘을 배웠다. 세 번째 장편소설 『빌헬름 텔 인 마닐라』는 지금까지 작가가 품어온 세계와 의식들이 폭발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빌헬름 텔 인 마닐라』는 필리핀의 실존 인물이자 국가적 영웅으로 언급되는 호세 리살(Jose Rizal, 1861~1896)을 주인공으로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오가며 풍부한 비유와 암시, 환상적 전개 등이 인상적이 작품이다. 실제 호세 리살은 프리드리히 쉴러의 희곡 『빌헬름 텔』을 따갈로그어(마닐라의 토착어)로 번역했고, 그 작품은 필리핀 독립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스위스 독립을 이끈 전설 속의 인물 빌헬름 텔과 그를 소재로 한 희곡 『빌헬름 텔』, 그리고 작품을 번역해 고국의 독립운동에 불씨를 지핀 호세 리살. 시대와 공간을 넘나들며 ‘자유’에 대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문학이 세상을 향해 쏘는 붉은 화살과 같은 힘이 아니었을까?


이야기를 옮기다, 자유를 옮기다, 외로운 투쟁을 옮기다


의사이자 작가인 호세 리살은 안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1886년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그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안과 수술을 집도하면서도 형의 부탁으로 시작한 『빌헬름 텔』의 번역을 이어나간다. 독일어를 자신의 모국어인 따갈로그어로 하나씩 옮길 때마다 그는 작품 속에 녹아 있는 작가 쉴러의 자유에 대한 사랑에 감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독일 유학은 안과학 공부뿐만 아니라 언어의 탐험, 식민지가 된 고국의 곤경을 깊게 바라보게 되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필리핀의 국가적 영웅에 관한 전기와 여러 편의 영화들이 있지만, 그중 소수만이 호세 리살의 작품에 대해 논하고 있다. 하지만 그 또한 리살의 산문에 국한되어 있다. 작가 아네테 훅은 올바른 말을 찾기 위한 리살의 고된 번역 작업에 집중한다. 리살의 번역작업에 대한 묘사는 현실적 감각을 무디게 하여 환상의 세계로 보일 만큼 감각적이다. 또한 작가는 리살의 번역 작업을 통해 깊고 깊은 언어의 세계, 의식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작가가 이와 같은 서사를 보이는 이유는 하나다. 외국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언어 사이에 빠져 있는 주인공의 모습과 고민이 자유를 향한 외로운 투쟁이기 때문이다. 호세 리살의 번역물은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여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의 노래가 된다. 즉, 번역의 혼란은 혁명의 혼란이다. 그가 옮기는 단어 하나는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놓인 사과를 향해 쏘아 올린 화살과 같다.


빌헬름 텔과 호세 리살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올려놓고 화살로 맞힌 빌헬름 텔의 일화는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이야기다. 중세 시대 의적으로 꼽히는 빌헬름 텔의 이야기는 쉴러의 작품으로 만날 수 있는데, 평화로운 마을에 닥친 정치적 폭력, 그리고 그 속에서 텔이 했던 선택들(바움가르텐을 호수 건너편으로 옮겨주고,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에게 새로운 터전을 마련케 하며, 폭력의 지배를 일삼던 성주를 죽임.)은 330년 동안 스페인의 지배를 받아온 필리핀의 역사에 선물과 같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루손섬 칼람바 출생으로 부유한 지주의 집안에서 태어난 호세 리살. 그는 해외에서 의학을 공부하는 한편 필리핀 식민지의 개혁을 요구하는 언론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특히 그가 번역한 『빌헬름 텔』은 필리핀 혁명(1896~1902)에 불씨가 되었다. 그리고 호세 리살은 마닐라에서 일어난 폭동과 반역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공개 처형된다.
이 야심찬 소설은 본질적으로 문학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이야기한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허구 사이에 다리를 놓아 역사의 진실과 삶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문학이 자리하고 있음을 오롯이 보여준다.



책속으로/밑줄긋기

p.26 “우리에게 쉴러의 작품을 번역해다오.”
리살은 빠차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는 『마리아 슈투아르 트』를 훗날로 기약해놓고 『빌헬름 텔』에 나오는 등장인물을 낱말 하나씩 하나씩 번역하기 시작한다. 그는 ‘총독’, ‘귀족’, ‘막일꾼’, ‘전답감시인’을 번역할 때 애를 먹는다.


p.51 한 인종이 나태함이나 연약함에 푹 빠지더라도,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은 항상 언어 자체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p.94 이제 리살은 서둘러 집으로, 『빌헬름 텔』에게로 간다. 그가 집에 도착해서야 잊었던 낱말들이 다시 떠오른다. 그는 우림 위에 솟은 얼음 산맥을 잘 안다. 그가 쉴러의 작품을 즐길 수 있던 것은 여러 상념 때문이다. 상념들이 그새 어휘를 생각나게 해준다.


p.111 폭도들이 주요 사안이 된 것은 수많은 세월이 흐른 뒤였다. 리 살은 자신의 작은 방에서 문장을 문장으로, 역사를 역사로 번역 하고, 저녁엔 거실에서 뤼틀리 풀밭의 사건에 대해서 번역한다.


p.137 “사과가 떨어졌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은 이 말도 안 되는 명령으로부터 구조된 아이를 보고 환호했지만, 기예르모는 이성을 잃었다. (…) 그는 광장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처럼 텔의 체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만일 젊은 사람들이 기예르모가 졌다는 사실을 보거나 듣는다면, 그들은 용기를 잃는다. 슈타우파허는 봉기가 계획에 따라 성공하지 않는다면, 모든 재산과 가족을 잃을 것이다.


p.176 “저는 그 불쌍한 사람들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그들이 전시된 곳은 동물원 정원이었어요. 그 가엾은 사람들은 허리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고 폐렴에 걸려 있었어요. 이런 겨울에는 스페인 사람들도 여러 벌 옷을 걸쳐 입지만 폐렴을 앓아요.”


p.209~210 쉴러의 작품에서 단순 명료한 표현은 없다. 범인이 화살이고, 화살은 텔이 쏜 것이라고 가리키는 것은 게슬러의 짐작뿐이다. 그 화살이 의도적으로 발사되었는지 아닌지에 대한 질문은 따갈로그어로 던져진다.



저자/역자 소개

지은이


아네테 훅


아네테 훅(Annette Hug)은 1970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다. 취리히 대학에서 역사학을, 마닐라의 필리핀 국립대학에서 여성학과 개발학을 전공했다. 귀국한 뒤로 대학강사와 노동조합 비서로 활동하면서 수필집, 단편소설, 세 편의 장편소설을 써냈다. 그는 세 번째 장편소설인 『Wilhelm Tell in Manila(빌헬름 텔 인 마닐라)』를 통해 필리핀 사람들의 언어인 따갈로그어를 사랑하게 되었고, 나아가 글로벌 세계에서 모국의 모습을 상상했다. 본 소설은 저자에게 자유 문필가로서의 존재의식을 심어주었고, 2017년 스위스 연방문화부 문학상(Literaturpreis des Schweizer Bundesamtes fur Kultur)을 수상했다. 저자는 같은 해 상하이에서 두 달간 체류하는 동안 동아시아에 더욱 관심을 가지면서 다른 공간에서 세상을 사고하는 방법을 깊이 배웠다.



옮긴이


서요성


서요성은 한양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독일 빌레펠트대학교 언어문예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독일어권 문학 및 문화를 비롯하여 매체, 인지, 정신의 상관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역서로 『베르톨트 브레히트: 도축장의 성 요한나』(2011), 저서로 『가상현실 시대의 뇌와 정신』(2015), 논문으로 「인식과 문화의 맥락에서 미디어의 고찰. 마샬 맥루언의 감각, 말, 글 개념에 대한 비판적 독해」(2017) 등이 있다. 현재 대구대학교 인문교양대학 독어독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례

빌헬름 텔 인 마닐라
감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