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선 지음
쪽수 | 24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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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148*210 |
ISBN | 978-89-6545-391-8 03810 |
가격 | 13,000원 |
발행일 | 2016년 12월 16일 |
분류 | 한국소설 |
책소개
"이제 하룻밤만 자면 그가 온다는 사실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녀의 무미건조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든 설렘과 기다림
마흔셋, 뜨거운 사랑이 찾아온다
30여 년 동안 시, 소설 등 다양한 문학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박정선 작가의 장편소설 『가을의 유머』가 출간됐다. 이번에 선보이는 소설은 사회적 금지영역에 속해 있는 기혼 남녀의 연애와 사랑을 다루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동경과 이상을 은유한 욕망을 말하려고 했다”고 전한다. 주인공 승연(나)이 남편과는 전혀 다른 남자 석환과 만나게 되면서 잊고 지냈던 설렘, 떨림 등의 감정을 회복하고, 내면 깊숙이 숨겨두었던 욕망들을 하나씩 꺼내게 된다. 작가는 승연(나)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녀가 마주하는 내면의 욕망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사회가 만든 규범과 질서의 근엄한 모습 안에 숨겨진 인간의 솔직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다.
팍팍한 삶에 묻혀 지워진 줄 알았던 '여자'라는 이름
그리고 그 이름을 꺼내준 한 남자
떨림은 정말 그런 것이었다. 떨림은 지금까지 고장 나고 비뚤어진 나의 뼈를 다시 맞추게 만들었다. 석환 씨를 알고부터 몸이든 정신이든 속속 드러나는 내 단점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다. 맨 먼저 식사습관과 빠른 걸음걸이와 빠른 말씨부터 고쳐 나갔다. 꽃장사를 하면서 격식을 생각할 겨를 없이 무조건 빠르게 먹던 습관 때문에 그와 식사를 할 때면 그가 절반도 채 먹기 전에 나는 식사를 마치고 기다렸다. 걸을 때도 그보다 늘 앞서가려고 해 주춤거려야 했고 말이 빨라 본의 아니게 말을 많이 하게 되어 늘 후회를 해야 했다.(p.72~73)
작가 박정선은 이번 소설에서 한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나이, 직업, 결혼의 유무 등 여러 사회적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간 내면에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보여주는 데 몰두한다. 사람들은 시간을 건너오며 사회로부터 많은 이름을 부여받게 된다. 누군가의 아내, 한 아이의 엄마, 어느 집안의 며느리 등. 그 수많은 이름에 익숙해질 중년의 나이가 되면 문득 진짜 나의 이름이 궁금해지지 않을까?
소설 『가을의 유머』의 주인공 승연(나)은 남편과 함께 힘든 삶의 시간을 견뎌내느라 진짜 나의 모습들을 잊고 살아온 보통의 중년 여성이다. 그 인고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남편의 꽃장사도 자리를 잡았고, 그녀 역시도 꽃꽂이 예술가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고 있다. 하지만 승연은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놓쳐버린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평온하고 잔잔한 지금의 삶이 무미건조하게 느껴지던 어느 날, 일본 출장길에 우연히 석환이란 남자를 알게 된다. 승연은 이제 다시 느끼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떨림이 온몸에 퍼진다. 그리고 치워뒀던 거울 앞에서 선다.
이 소설은 남녀 간의 관계와 사랑 이면에 자리한 욕망의 본질에 집중한다. 보통의 중년 여성에게 찾아온 사랑은 자신의 모습을 찾게 했다. 그리고 그동안 감춰뒀던 욕망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이는 『가을의 유머』가 불륜을 다룬 여느 드라마, 영화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저자는 “모든 게 욕망이다”라고 전하며 “지구가 존재하는 한 인간은 욕망이 낳은 이상과 동경을 찾아 헤맬 것”이라고 말한다. 사회적 규범 속에서 감추며 살아야 하지만,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욕망. 그 아이러니 속에 소설『가을의 유머』가 자리하고 있다.
중년 여성들의 사랑과 성에 대한 솔직하고 과감한 이야기
“생각해 보면 김 선생 네 말, 구구절절 일리가 있어. 섹스만 해도 그래. 쾌감 없는 섹스는 뭐랄까. 소득도 없이 중노동만 실컷 하고 난, 뭐 그런 기분이거든.”
“쾌감을 섹스에서만 찾는 건 아니지만 프로이트에 의하면 사람의 원초적 충동은 에로슨데 에로스는 다름 아닌 삶의 충동이고 사랑과 섹스는 이런 충동의 대표적인 표현이라는 거야. 사실 가정이란 그렇잖아. 결혼해서 한 3년? 아니 1, 2년만 지나도 아내나 남편은 어느새 부모로 변해 버리고 서로 성적 로맨스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함께 가정을 꾸려 가는 동역자로 전환되어 버리는 거지. 그래서 신비감을 추구하는 성적 호기심 때문에 성적 로맨스를 텐트 밖에서 구하게 되는 거구.” (p.77)헬스장에서 만난 중년의 세 여자, 승연(나), 전업주부여자, 가정선생여자. 이들은 주로 몸과 에로티즘에 대한 수다를 나눈다. 통통한 몸매에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전업주부여자는 자신의 남편을 최고라 이야기하며 그를 위해 몸매를 만들고자 한다. 반면 가정선생여자는 깡마른 몸에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다. 모르는 것이 없는 그녀는 승연(나)과 전업주부여자에게 라스코동굴벽화의 의미부터 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전해주곤 한다. 이들의 대화는 일상적이고 가볍지만 결코 쉬이 넘어갈 수 없다. 작가는 이 대화와 승연(나)이 사랑을 하며 변해 가는 모습을 중첩시킨다. 예컨대 몸매에 관한 수다와 처진 가슴, 아랫배의 튼 자국에 고민하는 승연의 모습을 함께 보여준다. 중년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해봄 직한 고민과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더불어 주인공 승연(나)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 모두 새롭고 청아한 떨림을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양과 나는 물을 찾아 내려가는 차나무 뿌리를 따라 흙을 파 내려가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흙을 지난 다음 모래층을 지났다. 얽히고설킨 수많은 뿌리들도 지났다. 차나무 뿌리는 줄기차게 계속 자기가 원하는 물을 찾아 내려가고 있었다. 우리도 계속 뿌리를 따라 내려갔다. 자갈층을 지나고 돌 무리를 지나 제법 큰 돌이 나왔다. 뿌리는 거기서부터 몸을 다듬기 시작했다. 뿌리는 표백을 해 놓은 것처럼 희고 고왔다. 내가 거울 앞에서 석환 씨를 만나기 위해 연습했던 것처럼 뿌리도 물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점 희고 가늘어진 뿌리가 돌 틈을 뚫고 물을 향해 내려가 있었다. 드디어 물에 다다른 것이었다. 무릎을 꿇고 땅에 머리를 대고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소리가 들렸다.(p.77)
『가을의 유머』 마지막 대목에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승연(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결말에 다다르자 그녀는 다시 본연의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는 자신 안에 있는 내재된 욕망을 억누르며 예전처럼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보여지지는 않는다. 작가는 차나무 뿌리가 최상의 물을 찾아 땅속 깊숙이 뿌리내리는 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는데, 이 은유를 통해 인간의 욕망 역시 끊임없이 이어질 것을 예고한다.
소설은 삶을 그리고, 그 속에는 사람이 있다. 삶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사람의 내재된 욕망 역시 그 무엇으로도 누를 수 없다. 『가을의 유머』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소설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음을, 승연(나)의 내면적 갈등과 욕망을 계속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이.
책속에서 & 밑줄긋기
시간을 죽여야 했다. 하필이면 제아무리 완고한 사람도 물렁해지고 만다는 가을에 석환 씨를 기다린다는 건 공기도 빛도 없이 숨 막히는 수심이었다. _P.10
돌이켜 보면 내가 거울을 보면서 행복해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거울은 나에게 무서운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거울을 마주 보는 이 위대한 버릇이야말로 석환 씨로부터 생긴 것이다. _P.28~29
통증 대신 오히려 라일락 향기가 꽃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내 몸과 영혼 어딘가에 단단히 얼어붙은 것이 비로소 용해되는 신묘한 카타르시스,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버린 듯한 순간이었다. _P.134~135
그런데 운명이란 것과 그런 기회가 찾아와 준다면 인간으로서 행복한 일이라고 했던 말이 지금 나에게 내일까지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는 듯하다. _P.158
인간은 이상과 현실 사이, 그 비좁은 행간에서 몸부림치는 존재라는 것, 현실은 곧 정형이란 틀이며 인간은 끊임없이 그 현실을 탈출하려고 몸부림치지만 현실은 늘 자기의 틀 안에 붙잡아 놓기를 고집하는 것이라고 했다._P.208
차나무 뿌리가 물을 빨아 올리는 소리를 들으며 동굴벽화를 떠올렸다. 인간이 신성과 동물의 중간인 이상, 동물적인 본성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바로 나였다._P.224
지은이 소개
박정선
소설가, 시인, 문학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졸업, 문학석사.
1986년 <문학정신> 신인상(시조)으로 문단에 나와 시조와 시를 쓰고 있으며 성파시조문학상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소설로 영남일보 신춘문예 당선, 심훈문학상, 영남일보문학상, 해양문학 대상(서울), 한국해양문학 대상(부산), 아라홍련 대상, 천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장편 소설 『백 년 동안의 침묵』(2012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선정), 『수남이』(2006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창작지원 선정), 『동해아리랑』(한국해양문학 대상 당선), 소설집 『청춘예찬 시대는 끝났다』(2015년 우수출판콘텐츠 도서 선정), 『내일 또 봐요, 『와인파티, 『변명』, 『표류』 등을 출간했다. 시집으로는 『바람 부는 날엔 그냥 집으로 갈 수 없다 , 『뿌리』(부산역사)가 있으며 <월간 시민시대>에 2년 동안 연재한 장편서사시 『독도는 말한다』 등 8권을 출간했다. 에세이집 『고독은 열정을 창출한다』, 평론집 『사유와 미학』 외, 역사서 다수가 있으며 명진초등학교(부산) 교가를 지었다.
차례
시간 죽이기
마지막 날
세 여자
G선상의 아리아
파도소리
다시 마지막 날
길을 잃다
가을의 끝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