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붉은 폐허

김일석 지음
쪽수
180쪽
판형
127*188
ISBN
978-89-6545-442-7 03810
가격
12000원
발행일
2017년 9월 25일
분류
한국 시

책소개

삶의 현장에서 시를 길어 올리는 김일석 시인의 일곱 번째 시집


언제나 삶의 현장에서 시를 길어 올리는 김일석 시인이 “민중의 소박한 양심을 직격하는 더러운 손들에 대한 조롱, 오랜 고난 중에 하나하나 힘겹게 발견한, 이름 없는 이들의 실낱같은 희망, 단 한 순간도 포기할 수 없었던 내 숨 막히는 사랑의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일곱 번째 시집 『붉은 폐허』를 내놓았다. 시인은 『붉은 폐허』가 현 시기 민중의 상실과 절망, 도전이 버티고 선 자리를 노래하지만, 노랑 바탕의 표지 디자인은 진도 앞바다의 물결이며 반역을 표현한 이미지라고 말한다. 3부로 나눠 90여 편의 시를 싣고 있는 시집 제1부에는 세월호 연작 12편이 실려 있다.


김일석의 시를 두 단어로 말하자면 그건 ‘사랑’과 ‘투쟁’이라고 할 수 있다. 30여 년의 투병, 아내가 쓰러진 지 6년, 핍진한 생애, 김일석 시인에게 시는 그 우울의 행간을 위로하는 유일한 휴식이고 투쟁이었다. 그는 온갖 수술과 시술,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자잘한 체념과 소망이 범벅인 나날을 보냈지만, 악착같이 살아남아야 했다. 적막한 병원 휴게실에서 복도에서 밤새 눈곱만한 폰 자판을 두들기며 시를 썼다. 시는 그에게 유일한 존재증명이었으며 삶의 이유이기도 했다.


냉소의 중심에 초연함을 담아낸 시


직관적 통찰에서 온 김일석 시인의 시는 그 자체로 삶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리얼리즘은 질펀한 핏빛이라고 한다. “나는 우아하고 고상한 걸 기질적으로 싫어하며 생존을 문학이라는 이미지 장치에 숨기는 행위를 혐오한다. 나의 시에서 질펀한 핏빛 서정을 들어내면 아무것도 없다.”라고 말하는 시인은 언제나 체제에 맞서 싸우던 현장, 그 힘없는 자들의 편에 서 있다. 그런 그가 체제에 대해 냉소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이번 시집에는 그 냉소의 중심에 ‘초연함’이 담겨 있다고, 해설을 쓴 강재일 교수는 말한다. 시인은 그러면서 노래한다. 조각조각 나버린 삶의 파편들을 붉디붉은 시어(詩語)로 승화시키면서.


늙은 살가죽 비듬처럼
널브러진 어물전 비늘처럼
꽃잎 뒹군다

단 며칠의 환희를
생애의 상징으로 남기려는
숙명을 향한 심오한 서원

스스로 생명줄 놓아
눈부신 소멸에 가닿으려는
저 확고한 분신

-「꽃잎의 분신」전문

시인은 어느 봄, 흩날리는 꽃잎을 보고 분신(焚身)이라고 한다. 단 며칠의 환희를 위해 태어났다고 하지만 그 또한 하늘이 내린 숙명, 견딜 만큼 견딘 후에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스로 생명줄 놓’는 것. 그리고는 ‘눈부신 소멸’에 닿는 것이라고 수긍한다. 그의 초연함을 비판의 날이 무뎌진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분명한 깃대 하나는 꼭 붙들고 살겠다는 의지


‘가진 자의 꽃놀이 패, 그 끊임없는 수모에 수족을 다 바치면서도 적의 심장부 착점에 온몸으로 칼을 꽂아야 하는 이유’를 머리론 알지만 정작 본인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의 압력에 ‘울다가 울다가’ ‘실어의 닻’을 올리며 바다로 흘러가는데, ‘알아서 길 건지 일어나 달릴 건지’ 자문자답만을 하며 지쳐버린 일상의 자잘한 것들은 놓더라도 삶의 분명한 깃대 하나는 꼭 붙들고 살겠다는 의지를 시인은 보이고 있다. 그리고 시야말로 시인의 유일한 무기임을 고백한다.


순정한 그대의 성은
불타고 있었고
내가 타지 않고는 그곳에
닿을 수 없었다

불붙은 나뭇등걸이 되어
그대를 향해 뿌리 뻗었으나
내 사랑 가닿는 곳마다 훨훨 타올라
노상 폐허가 되었다

생애 마지막 영토이리라
그대에게 바치는
내 사랑이 소진한 눈물의 자취
그 붉은 폐허는

-「붉은 폐허」 전문

‘붉은 폐허’는 시집의 제목이다. 여태 아픈 아내와 살며 만났던 고난의 결과는 언제나 폐허였거늘 이제는 그곳이 결국 마지막 영토일 거라고 한다. 싸우고 또 싸우고 견디고 또 견뎠을 시인의 영토가 ‘그대에게 바치는’, ‘내 사랑이 소진한 눈물의 자취’인 붉은 폐허는 어떤 세속적 표현보다 핏빛 선명한 그의 생애를 집약한 언어이다. 시집 마지막에 배치한 「시인 김 씨」는 자조에 가까운 분노이며 체제에 대한 절망이자 각성이다. ‘기막히게 정연한 인생의 순서!’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 무수한 길을 돌고 돌아 이제야 도달한 곳이다. 그의 삶이 지속되는 한 삶 속의 치열함 또한 지속될 것이다.



저자 소개

김일석


시인 김일석은 80년대 초 사상공단 노동자 자녀를 위한 탁아소에서 시작하여 들꽃어린이집을 거쳐 산동네 빈민지역에서 들꽃공부방을 운영하며 평생 비정규직 교육노동자로 살았다. ‘시를 통한 심리치유 과정’, ‘발달심리와 교수법’,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아이돌보미 양성과정, 발달장애아동, 청소년 가족관계 상담을 하고 있다. 군부의 서슬 퍼렇던 80년대 출판운동의 첨병이었던 여러 기관지, 무크지를 통해 시 쓰기를 시작했으며, 현재 진보진영의 여러 네트워크에 글을 기고하며 월간지에 교육 칼럼과 시를 연재하고 있다. 『상념의 바다』,『지독한 연민, 혹은 사랑』,『5억 년을 걸어야 닿는 별』,『살아보니 알겠어』,『오늘도 빌딩 숲 속에서 난 바다를 꿈꾼다』,『조까라마이싱』등의 시집을 냈으며 그 외 저서로 『어머니, 나 혼자 할 수 있게 도와 주세요』,『몬테소리 교육의 이론과 실천』,『새 세상을 향한 교육』,『유아의 비밀』등이 있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꽃잎의 분신 / 손톱 / 횟집에서 / 나는 개돼지야 / 그릇 / 도망갈 구멍 / 김치 1. / 김치 2. / 늦가을 풍경 / 붓꽃 앞에서 / 불금의 밤 / 혓바늘 / 마담 이 여사 / 불량 / 바라보기 / 세월호 연작 1. 비명 / 세월호 연작 2. 검은 리본 / 세월호 연작 3. 눈물의 부활절에 / 세월호 연작 4. 손에 / 세월호 연작 5. 피의 전쟁 / 세월호 연작 6. 안데스 지하의 신께 / 세월호 연작 7. 오늘 아침 / 세월호 연작 8. 꽃의 허구 / 세월호 연작 9. 그런 봄이면 좋겠어 / 세월호 연작 10. 선무 방송 / 세월호 연작 11. 아이들이 본다 / 세월호 연작 12. 복수하는 날 / 홍대 앞에서 / 꽃의 시


제2부


우물 / 엄마 냄새 / 노르웨이 숲 / 빗방울 / 봄밤 / 간여 /웃지 마라 / 착점 / 나비 / 나의 바다로 / 묻는다 / 역류 / 어느 겨울의 오체투지 / 지진(地震) / 전관수역을 치자 / 식물의 삶 /
상처 / 나무의 묵언 / 그리운 섬/ 음모 / 고해(苦海) / 몸의 언어 / 붉은 폐허/ 적의 소굴/ 교환/
작물 / 질긴 살점 / 고등어 1 / 고등어 2 / 뿌리의 침묵 / 외경(畏敬) / 편지 / 아시나요 /
반성론 / 길의 경계에서 / 기억의 편린 / 붉은 대게 이야기
순자 누나 / 목욕탕에서 / 오징어 / 시인의 덕목 / 자지 / 강박성 장애 / 순종 /


제3부


기쁨의 시 / 밥상 / 냉장고를 닦으며 / 부정교합 / 밤바다에서 / 빚 / 하늘 / 환절기 / 정직/
내가 제국의 왕이 되면 / 별 / 아들아 / 병원에서 / 강원도 옥수수 / 신호등 / 독상(獨床) / 시집을 읽을 때 / 버립니다 / 겨울엔 일어나세요 / 순명 / 기도 / 시인 김 씨 / 서태지 / 각성 /


해설 | 그리운 이름 하나 - 강재일(전 건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