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이동순 시선집 『숲의 정신』 발간
생태적 상상력과 겸허의 미덕을 보여주는 이동순 시인의 첫 시선집 『숲의 정신』이 출간되었다. 노장적 사유체계를 바탕으로 늘 따뜻한 감성으로 대상을 응시하고 그 대상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면서 동기감응하고 있는 이동순의 시세계를 『숲의 정신』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숲의 정신』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동안 발간한 『발견의 기쁨』 『개밥풀』 등 열세 권의 시집에서 시인 최영철, 평론가 김경복, 황선열이 오랜 고심 끝에 100편을 엄선하여 담고 있다. 이동순 시정신의 본령을 담아내는 작업인 만큼 시 선정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한 편 한 편이 이동순 시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생태적 자연주의 사상이 응축된 이동순 시선집
신동엽창작기금, 난고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한 이동순 시인은 올해 등단 37년째를 맞이하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는 시인은 그동안 『개밥풀』 『물의 노래』 『지금 그리운 사람은』 『철조망 조국』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꿈에 오신 그대』 『봄의 설법』 『가시연꽃』 『기차는 달린다』 『아름다운 순간』 『마음의 사막』 『미스 사이공』 『발견의 기쁨』 등 13권의 시집을 발간하였다. 이 13권의 시집에는 공통적으로 생태적 자연주의 사상이 흐르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이동순 시인의 시세계가 이 한 권의 시집에 응축되어 있다.
작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감응
시인은 언덕에서 불어오는 한 점의 바람에서도 생명의 신비를 발견하고, 양말 속에 감추어진 작은 벌레 하나에서도 존재의 의미를 발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고 따뜻한 감성으로 대상을 깊게 응시한다. 그는 대상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내면을 통해서 다시 대상의 내면을 바라본다. 이러한 상호관계 속에서 그는 자신을 끝없이 낮추며 그 대상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면서 동기감응하며 깨달음의 경지에까지 다다르고 있는 것이다.
양말을 빨아 널어두고
이틀 만에 걷었는데 걷다가 보니
아, 글쎄
웬 풀벌레인지 세상에
겨울 내내 지낼 자기 집을 양말 위에다
지어놓았지 뭡니까
참 생각 없는 벌레입니다
하기야 벌레가 양말 따위를 알 리가 없겠지요
양말이 뭔지 알았다 하더라도
워낙 집짓기가 급해서 이것저것 돌볼 틈이 없었겠지요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양말을 신으려고 무심코 벌레집을 떼어내려다가
작은 집 속에서 깊이 잠든
벌레의 겨울잠이 다칠까 염려되어
나는 내년 봄까지
그 양말을 벽에 고이 걸어두기로 했습니다
-「양말」전문
작은 풀벌레는 양말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고 있다. 그 양말 속의 작은 풀벌레를 떼어내는 순간, 그 벌레는 집(생명)을 잃고 말 것이다. 그러나 화자는 그 작은 풀벌레가 생명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신어야 할 양말을 내년 봄에 신을 것이라고 미룬다. 이 순간, 그 작은 풀벌레는 생명을 얻게 된다. 이런 생태학적 상상력은 작은 생명에 대한 사랑과 감응, 더 나아가 나의 생명과 소통하고 있다는 각성으로부터 출발한다. ‘양말’이라는 흔한 소재를 끌어왔지만, 그 일상적 소재는 생명의 신비로움을 발견하는 깨달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양말 속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화자의 작은 노력에서 놀라운 생명 존중사상을 느낄 수 있다.
동양적 형이상학의 세계를 보여주다
이와 같이 이동순의 시에서 생명에 대한 인식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이러한 건강한 생명의식은 등단작부터 최근의 시에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여러 시에서 다양한 진폭으로 확대 변주되어 나타난다. 이동순의 시는 근원적으로는 노장사상과 그 맥락을 같이 하면서 동양적 형이상학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동순의 시에서 노장사상은 자연을 넘어서 우주적 상상력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생명의 발견으로 나아간다. 변하는 것은 변하는 것대로,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대로 받아들이면서 자연과 순응해가는 것이다. 그는 자연을 관조하고 즐기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의 일부로 감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의 공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감응하고, 그 자연의 질서 속에서 참된 진리에 도달하는 길, 그것이 이동순의 서정시가 지향하는 시적 세계관이다.
저자 소개
저자
이동순李東洵
195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경북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마왕의 잠」(1973), 문학평론(1989)이 각각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는 『개밥풀』 『물의 노래』 『지금 그리운 사람은』 『철조망 조국』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꿈에 오신 그대』 『봄의 설법』 『가시연꽃』 『기차는 달린다』 『아름다운 순간』 『마음의 사막』 『미스 사이공』 『발견의 기쁨』 등 13권을 발간하였다. 2003년 민족서사시 『홍범도』(전5부작 10권)를 완간하였다.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과 현장』 『우리 시의 얼굴 찾기』 『달고 맛있는 비평』 등과 편저 『백석시전집』 『권환시전집』 『조명암시전집』 『이찬시전집』 『조벽암시전집』 『박세영시전집』 및 산문집 『시가 있는 미국기행』 『실크로드에서의 600시간』 『번지 없는 주막-한국가요사의 잃어버린 번지를 찾아서』 등이 있다. 신동엽창작기금, 난고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충북대 국문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영남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dslee50@hanmail.net.
엮은이
최영철
1956년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했다. 1984년 무크지 『지평』에 시를 발표하고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일광욕하는 가구』 『그림자 호수』 『호루라기』등 여러 권, 산문집으로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 등 여러 권을 냈다. 2000년에 발간된 다섯 번째 시집 『일광욕하는 가구』로 제2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는데 백석을 본격적으로 재조명한 분이 이동순 선생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인연은 각별해 보인다. 최영철 시인은 20대 습작 시절 이동순 선생의 시를 즐겨 읽으며 현실 인식을 키웠다고 한다.
김경복
부산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문학박사)하고 1991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및 계간 『문학과비평』 평론으로 등단했다. 저서로는 『풍경의 시학』, 『서정의 귀환』, 『생태시와 넋의 언어』, 『시의 운명과 혼의 형식』, 『한국 아나키즘시와 생태학적 유토피아 』, 『한국 현대시의 구조와 의식비평』 등이 있다. 현재 시전문계간지 『신생』과 『시에』 편집위원이며 경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동순 선생과의 인연은 대학 문학청년 시절 시집 『개밥풀 』 등을 보며 시심과 사회인식을 키웠다고 한다.
황선열
경남 창녕에서 출생하여 대구에서 성장했다. 영남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문학평론이 당선되면서 문학활동을 시작했다. 편저로 『권환전집』이 있고, 평론집으로 『경계의 언어』 외 여러 권이 있다. 현재 『신생』 편집위원, 『푸른글터』 편집주간, 『작가와사회』 편집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이동순 시인과는 학문과 문학적 인연으로 만났다. 이동순 시인과는 대학원 지도교수로 만나서 오랜 인연을 쌓아가고 있다. 『권환 시전집』을 공편했으며, 잊힌 가요를 발굴하면서 꾸준히 학문적 인연을 맺어가고 있다.
차례
제1부 발견의 기쁨 (2005~2009년)
노을 / 저녁의 평화 / 들판 / 저 들판은 누가 차지하는가 / 망아지 / 발견의 기쁨 / 고슴도치 / 동승童僧 / 낙타 / 황사 / 누란 / 노새 / 누란을 마시다 / 서역 / 풍장 / 쌀국수 / 미스 사이공 / 고엽제 1 / 라이따이한 1
제2부 아름다운 순간 (2001~2002년)
별의 생애 / 외로운 나무 / 숲의 정신 / 반딧불이 / 아름다운 순간 / 쥐구멍 / 굴다리 벽화 / 늙은 나무를 보다 / 아름다운 광경 / 圖們에서 / 루쉰 묘에서 / 울릉도 / 기차는 달린다 / 북간도 명동촌에서 / 개나리 처녀
제3부 봄의 설법 (1995~1999년)
양말 / 고로쇠 / 가시연꽃 / 얼음 / 발자국 / 내가 몰랐던 일 / 애장터를 지나며 / 아버님의 일기장 / 쓸쓸한 얼굴 / 별 / 풍경소리 / 봄의 설법 / 나무에 대하여 / 어머니 품 / 연분홍 편지 / 다랑쉬굴 / 이 강산 낙화유수 / 고죽리의 밤 / 허경행 씨의 이빨 내력 / 그대가 별이라면 / 별 하나 / 서리 친 아침 / 홍시 / 가을 저녁 / 새 / 꿈에 오신 그대
제4부 쇠기러기의 깃털 (1986~1992년)
갈 수 없는 길 / 외가집 / 그 바보들은 더욱 바보가 되어간다 / 생각만 해도 신나는 꿈-남과 북의 어린이들에게 / 쇠기러기의 깃털 / 저 청산이 날더러 / 녹둔도 / 눈 오는 저녁 / 철조망 인간 / 가시관 / 봄비 / 따비-農貝노래 1 / 오줌장군-農貝노래 3 / 도리깨-農貝노래 6 / 돌확-農貝노래 7 / 똥바가지-農貝노래 15 / 낫-農貝노래 18 / 호미-農貝노래 26
제5부 개밥풀 (1980~1983년)
두엄더미 / 無名草 / 베틀노래 / 두꺼비집 / 숯-드니 랑글로와 혹은 田彩麟 님께 / 필라멘트 / 염통을 보며-어느 行旅者의 죽음을 생각한다 /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1 / 그리운 장승노래 / 아우라지 술집 / 물의 노래 1-‘새도 옮겨 앉는 곳마다 깃털이 빠지는데’ / 序詩 / 내 눈을 당신에게-어느 失鄕民의 유서 / 개밥풀 / 올챙이 / 瑞興金氏 內簡-아들에게 / 相思花 / 쑥의 美學 / 그가 뿌리고 간 씨앗은 자라 / 待春賦 / 장날 / 魔王의 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