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테하차피의 달

조갑상 지음
쪽수
260쪽
판형
148*210
ISBN
978-89-92235-74-7 03810
가격
10,000원
발행일
2009년 10월 12일
분류
한국소설
*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2011 이주홍문학상 수상도서

책소개

부산의 대표적인 중견작가 조갑상의 새 소설집


부산의 대표적인 중견작가 조갑상의 새 소설집 『테하차피의 달』이 발간되었다. 장편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2003) 외에, 『다시 시작하는 끝』(1990), 『길에서 형님을 잃다』(1998)에 이어 작품집으로는 이번이 세 번째다. 1980년 동아일보 등단 이후, 10여 년마다 한 번씩 작품집을 내어오고 있는 작가가 펴낸 오랜만의 최신작이다.


『테하차피의 달』은 총 8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노년문학’ ‘회상의 문법’ ‘지역문학’이라는 세 범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아내를 두고」를 비롯,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 「어렵고도 쉬운 일」 등은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노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통문당」과 「겨울 五魚寺」는 회상의 문법을 통해 ‘이야기’가 지닌 효용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부산의 지명들을 문학 공간으로 재현한 작품들로는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 「섣달그믐날」이 대표적이다.


표제작인 「테하차피의 달」은 미국 모하비 사막의 ‘테하차피’에 위치한 태고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작가는 벼랑에 내몰린 이들의 삶을 병치해서 보여줌으로써 고립된 삶 또한 이해받을 여지가 있음을, 이를 통해 개체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인디언의 성지(聖地)로 알려진 ‘테하차피’는 이로써 ‘다시 시작하는 끝’을 상징하게 되며 조락과 갱생, 시작과 끝을 반복하는 인생의 국면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차분하고도 깊은 먹빛 지닌 ‘노년문학’


조갑상은 2,30대를 위주로 형성된 소설 경향과는 묵묵히 거리를 유지한 채, 인생의 후반부 그리고 삶의 변방으로 밀려난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해설에서 김경수 교수가 언급하고 있듯이 조갑상의 소설은 “소재의 신기성(新奇性), 긴박한 전개, 사건의 중첩과 놀라움, 혹은 반전의 결말 등”과는 거리가 멀다. 그 대신 조갑상의 작품은 차분하고도 깊은 먹빛을 지닌 노년문학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10년에 한 번꼴로 작품집을 펴내고 있는 과작의 작가임을 감안할 때, 그 에너지가 어떻게 곰삭아 왔는지 또한 짐작할 수 있다.


「아내를 두고」,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 「어렵고도 쉬운 일」 등은 ‘죽음’ 혹은 ‘가족사’를 둘러싸고, 예기치 않은 삶의 균열을 겪는 노년의 심리를 담담하고 차분한 필치로 그러낸 작품이다.


“심도 있는 노인성 소설”(김윤식)로 평가받은 「아내를 두고」는 노후에 접어든 부부가 종교에 대한 문제로 갈등을 빚는 흥미로운 주제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테두리 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리고 벗어날 것도 없이 살아가게 되어 있구나.”(35쪽)라는 주인공의 생각은, 아내의 입교(入敎)와 사고사를 맞아 여지없이 깨어진다.


나름대로 단단하게 쌓았다고 믿는 삶의 제방을 언제든 무너뜨릴 수도 있는 크고 작은 빈틈을 눈여겨보지 않고, 그간 살아오며 체득한 지혜와 습관대로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어쩌면 아내조차, 그렇게 서두르며 맞이한 믿음의 세계에 자신을 무방비로 노출시켰던 것은 아닐까. -「아내를 두고」(52쪽) 중에서


또한 이 작품은 “현길언의 「안과 밖」(2008)과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1985)와 더불어 읽으면 한층 선명해 지는 계보” 라는 평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이 계열의 작품들이 “죽음과 기독교 죄와 용서의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해석되지 않은 과거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수하물 같은 것


「통문당」과 「겨울 五魚寺」는 ‘회상’의 문법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각각 대학 때 사귀었던 여인의 부고를 듣는다. 하지만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 빈소를 찾는 대신 병원 주차장 한 구석에서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거나, 병원이 있는 도시를 빙빙 도는 것으로 조문을 대신한다.


‘부고’를 통해 되살려진 과거는 ‘조문’을 통해 매듭지어지는 대신, 회상의 방식으로 술회된다. 이때 이야기를 듣는 대상은 편한 단골손님(「통문당」)이거나, 겨울 절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내(「겨울 五魚寺」) 등 과거의 정황과는 상관없는 제3자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에 대해 「통문당」의 주인공은 “차라리 들은 이야기나 지어낸 이야기라고, 누군가 딱 한 사람에게만 말하는 게 그때 그 시간을 위한 일이 되지는 않을지.”(65쪽)라고 의미 부여하지만, 끝내 자신을 누르는 하중을 벗어날 수 없음을 느낀다. 「겨울 五魚寺」의 주인공 역시 낯선 사내에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을 뒤늦게 후회한다.


위의 두 작품은 이야기가 지닌 ‘해방/구속’의 이중성을 읽게 한다. 삶을 짓눌러온 무게를 한 번의 이야기로 모두 덜어낼 순 없겠지만, 과거와 현재의 자아를 통합하는 데 있어 ‘회상’은 중요한 양식임을 작가는 말해주고 있다.


“삶의 매 순간에서 그 자체의 행위와 사건의 의미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삶은 반추를 통해서만 의미를 지니게 되고, 그런 회상행위를 통해서만 현재 존재하고 있는 자아의 현재로 편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해석되지 않은 과거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일종의 수하물 같은 것으로, 현재 삶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김경수, 해설 「막연하면서도 구체적인 일상」 중에서


소설로 그리는 부산의 문화지리지


『소설로 읽는 부산』(1998), 『한국소설에 나타난 부산의 의미』(2000), 『이야기를 걷다』(2006) 등 부산에 관한 책들 또한 꾸준히 펴내온 조갑상은 문학작품 속에서 부산이라는 공간을 재조명하는 한편, 자신의 작품 속에서도 꾸준히 부산의 색(色)을 내며 ‘부산의 문화지리지’를 부지런히 그려나가고 있다.


이번에 수록된 작품 중,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는 초량철도관사를 중심으로 일제 때의 부산 지명들을 애틋하고도 매력적인 문학 공간으로 재현하고 있으며, 「섣달그믐날」은 삼랑진역과 자갈치를 배경으로 최하위층으로 내몰린 가장과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 「어렵고도 쉬운 일」 등의 작품에서도 지역 사투리를 고스란히 살려 쓰는 등, 투박하면서도 깊은 맛이 배어나는 문장을 구사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구모룡은 『감성과 윤리』에서 “문학지도는 문학 속의 장소의 기억을 보존하고 나아가 그것을 복원하며 오늘의 문학생산의 활력으로 유인하는 매개가 될 수 있다”라고 언급하였다. 달리 말해, 지역문학은 지역지리를 구성함으로써 지역의 의미뿐 아니라 문학생산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야기’로 지역의 문화지도를 그려나가고 있는 조갑상 또한 지역문학의 의의를 누구보다도 잘 살려내고 있는 작가다.



작품 소개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

일제강점기 때 일어난 조선인 ‘오모니’에 대한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고 있으며, 죽은 혼령의 이야기라는 게 뒤늦게 밝혀지는 특이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초량철도관사를 중심으로 일제 때의 부산 지명들을 애틋하고도 매력적인 문학 공간으로 재현하고 있으며 초량의 남선창고가 헐리는 데 대한 상실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아내를 두고」

노후에 접어든 부부가 종교에 대한 문제로 갈등을 빚게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않고 살아 가리라던 주인공의 생각은 아내의 입교(入敎)와 사고사를 맞아 여지없이 깨어진다. 안전하리라고만 생각했던 노년의 삶이 예기치 않은 사건들로 인해 균열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통문당」

비 오는 봄날, 고가구점 주인이 자기가 어떻게 해서 이 일을 하게 되었는지를 단골손님에게 에둘러 이야기한다. 젊은 시절에 겪은 과거의 하중을 내려놓고자 하는 주인공의 고뇌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인생의 우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겨울 五魚寺」

포항 오어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 대학시절, 가슴이 없는 여자를 버린 한 남자가 죽은 여자를 문상하는 대신, 절길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과거 젊은 날이 오늘에까지 작용한다는 점에서 「통문당」과도 통하는 이야기다.


「섣달그믐날」

섣달그믐날을 배경으로 최하위층으로 내몰린 가장과 가족을 그린 이야기. 사내는 시골의 빈집에라도 들어가, 삶을 영위하려 하지만 아들과 노모는 도시의 삶을 고집한다. 더 이상 물러날 곳 없는 사내의 이야기가 삼랑진역과 자갈치를 배경으로 을씨년스럽게 펼쳐진다.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

아버지 기제사를 둘러싼 삼 남매의 갈등을 차분하게 그려낸 이야기. 보도연맹에 가입한 탓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에 대해 성오와 준오, 성자는 각각 다른 생각이다. 불편한 과거가 대물림되지 않기를 바라는 장남과 역사의 진실을 대면하기를 바라는 차남의 입장이 대비되어 그려진다.


「테하차피의 달」

미국 모하비 사막의 ‘테하차피’에 위치한 태고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 1박 2일 동안의 묵언수행과 법회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아 그곳에 모인 네 사람의 시점을 교차, 종합하면서 이민의 문제와 삶의 다양한 국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렵고도 쉬운 일」

여든에 접어든 부친이 대학병원에 입원하고서 가족들이 보여주는 여러 모습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아버지가 회복되기를 바라면서도 죽음을 준비하는 자녀들의 이중성을 떠들썩하고도 밝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 소개

조갑상


1949년에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동아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혼자웃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집 『다시 시작하는 끝』, 『길에서 형님을 잃다』와 장편 『누구나 평행선 너머의 사랑을 꿈꾼다』를 내고 산문집으로는 『이야기를 걷다』가 있다. 요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현재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차례

누군들 잊히지 못하는 곳이 없으랴

아내를 두고

통문당

겨울 五魚寺

어느 불편한 제사에 대한 대화록

섣달 그믐날

테하차피의 달

어렵고도 쉬운 일


해설_ 김경수 막연하면서도 구체적인 일상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