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우리집에 왜 왔니

박명호 지음
쪽수
238쪽
판형
152*225
ISBN
978-89-92235-51-8
가격
10,000원
발행일
2008년 11월 27일
분류
한국소설

책 소개

박명호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처용아비』 출간


획일적이고 습관적인 글쓰기를 거부하며 다양한 소재와 실험적인 기법을 과감히 채택하는 작가 박명호의 소설집 『우리 집에 왜 왔니-처용아비』가 나왔다. 장편 『가롯의 창세기』를 통해 기독교 윤리 문제에 의욕적으로 접근했던 박명호는 이번 작품집에서는 무엇보다 소재의 다양성과 기법의 자유로움으로 눈길을 끈다.


『우리 집에 왜 왔니-처용아비』는 총 8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유년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토속적 서정성을 담아내고 있는 「뿔」 「굴뚝새」 「산 너머 포구」, 일본 여행에서 느낀 경험을 녹여내고 있는 「잉어깃발」 「샤갈, 시를 쓰다」, 신과 설화의 세계를 다루고 있는 「우리 집에 왜 왔니」 「봄눈」 「龜旨歌를 위한 다섯 가지 변주곡」이다.


이번 박명호의 작품들은 관조와 절제의 미학이 돋보인다. 남녀의 애정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도, 역사를 찾아 떠나는 길에서도 그는 한 발 비켜서서 문제를 보고 감정 노출을 극도로 자제함으로써 작품의 품격을 높여 주고 있다. 또한 다양한 소재와 리얼리즘 기법을 벗어나 이미지로 서사를 그리는 형식 실험에도 도전하고 있다.


박명호 소설 세계


인간의 세계는 불완전하다. 그래서 우리는 늘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결핍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완전한 세계에 대한 믿음과 동경은 그 결핍에 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완전한 세계는 지금 여기를 넘어선 초월의 세계로 상상된다. 그 세계는 현실의 시간과 공간으로부터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불완전한 인간에게, 아득하게 먼 어딘가의 무엇에 대한 그리움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종교와 철학과 예술은 인간의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그 결핍으로서의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위안의 장치들이다.


완전한 세계와 불완전한 세계. 이상과 현실. 박명호의 소설은 이 ‘사이’에서의 방황과 고뇌를 성찰의 중요한 계기로 삼는다. ‘사이’는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는 무차별의 혼돈으로 가득한 암연이다. 이 암연에서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치는 박명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시지프스의 운명을 닮았다.


박명호 소설의 주인공은 거의가 소설가고 시인이다. 「우리 집에 왜 왔니」 「龜旨歌를 위한 다섯 가지 변주곡」「봄눈」「잉어깃발」 의 주인공은 소설가이고, 「샤갈, 시를 쓰다」와 「뿔」에서는 시인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소설가나 시인이라는 것은 그만큼 세계와 조응하는 ‘나’의 감각이 예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와 세계의 만남을 다루는 문학은 내가 세계와 맺는 관계를 탐구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는 완전무결한 천상의 낙원이 아니기에 언제나 ‘나’는 세계와 심각하게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박명호 소설의 주인공들은 지금 이곳의 현실을 초월한 근원적 세계를 동경한다. 근원(arche)에 대한 탐구, 잃어버린 낙원에 대한 향수는 박명호 소설의 요체다. 강물을 거슬러 존재의 시원을 찾아 떠나는 연어들의 힘겨운 여정. 여행은 시작되었지만 길이 끝나 버린 이 시대에 박명호 소설의 인물들은 우직하게도 저 연어들처럼 힘겨운 여정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소설이 다루고 있는 것은...


그는 틈만 나면 만주로, 큐슈로 뭔가 옛스런 자취를 찾아 헤집고 다닌다. 일본 남녘의 마을에 펄럭이는 잉어깃발과 기차역 안내방송에서 가야의 신앙과 말을 짚어 내고, 부둣가 선술집 주모의 푸념에서 구지가(龜旨歌)를 듣는다. 박명호의 문학은 또, 우리 심혼(深魂)의 원형과도 같은 유년의 초상을 복원하는 어떠한 심리학적 기제를 지니고 있다. 그의 어린 주인공들은 어른이 된 독자에게 그들과 함께 저물녘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거나, 돌아오지 않는 어미를 내다보러 위험한 나무타기를 하자고 유혹한다. 그의 소설은 잊고 산 지 오래인 우리에게 그 무엇이 있었던가를 묻고 있기도 하다.


「산 너머 포구」와 「굴뚝새」는 존재의 근원으로서의 여성(어머니)에 대한 진한 그리움의 이야기다. 소아마비라는 장애 때문에 또래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산 너머 포구」의 ‘달이’는 아이들의 놀림 때문에 학교에도 가지 못한다. 달이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가출해 버렸다. 가혹한 세계에서 모성의 결여는 달이에게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굴뚝새」의 소년에게도 어머니는 떠나 버리고 없는 존재다. 어머니는 홍한네 머슴과 바람이 나서 아비와 소년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여자의 부재는 그들에게 눈물과 슬픔만을 남겨 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위안의 대상을 발견한다.


「잉어깃발」은 근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의 서사다. ‘살아 있는 가야의 흔적’을 찾기 위해 소설가인 ‘나’는 일본으로 여행을 떠난다. ‘나’는 여행 중에 일본에 귀화한 한국인 노인을 만나서 한국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이 여행은 처음부터 ‘정체성’ 회복을 위한 여정이었기에, ‘나’는 ‘정체성의 상실’이라는 노인의 판단을 수긍하면서 ‘우리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들뜬다. ‘나’는 큐슈의 시골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잉어깃발(고이노보리)’을 살아 있는 가야의 흔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흔적(trace)’은 어디까지나 존재의 환영일 뿐 실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흔적을 더듬어 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소설가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다.


「샤갈, 시를 쓰다」는 문명으로부터 벗어나 절대적 근원의 세계로 회귀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탐구한 소설이다.


도시적 삶은 각박한 경쟁을 요구한다. 우승열패의 사회진화론이 통용되는 도시에서, 경쟁에서의 ‘낙오’는 곧 죽음이다.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남해의 아름다운 섬, 샤갈의 마을은 어른과 아이의 차별이 없고, 인간과 짐승의 차별이 없다.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이 존재의 경이로움을 간직하고 있기에 그에서는 빗방울 하나에도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유년의 황금시대에 대한 동경. 성인이 된다는 것은 완벽성에 대한 환상 버리기의 과정이다. 그래서 유년의 황금시대는 더더욱 그리운 것일지 모른다. ‘나’ 역시 샤갈의 마을이 필요했고 그래서 ‘나’는 어린 사슴의 섬 ‘가고시마’로 떠난다.


특히 리얼리즘 기법을 벗어나 이미지로 서사를 그리는 형식은 대단히 실험적이다. 소설과 시의 영역이 묘할 정도로 충격적이다. 난해한 현상학의 대표작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를 완벽하게 소설화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집에 왜 왔니」「龜旨歌를 위한 다섯 가지 변주곡」은 신화 이전의 노래, 곧 고대가요 속에 깃들어 있는 우리의 의식과 사랑을 현대적 문제로 이야기한다. 관념의 찌꺼기 때문에 이루어지지 못한 남녀의 슬픈 사랑이야기다. 남편이 아내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성취를 위해 헌신하는 이야기, 넘을 수 없는 제자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는 ‘처용설화’와 ‘구지가’의 모티브를 현대적 성윤리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아득하게 먼 관념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탐구는 불완전한 현실을 넘어서기 위한 방법으로 요구된 것이었다. 어떤 차별도 낯섦도 없는 완전한 세계에 대한 열망. 어머니의 품속처럼 아늑하고 모든 것이 조화로운 이상적 세계. 이런 세계에 대한 욕망은 반대로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지독하고 불완전한 것인지를 강렬하게 부각시킨다. 현실의 마성이 강할수록 현실 너머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열망도 커진다. 박명호의 소설에서 부조리한 현실의 모순은, 건강한 생명력으로서의 에로스를 억압하는 ‘관념’과 ‘편견’으로 드러난다.


「뿔」은 두 남자의 운명적인 대결을 ‘바둑’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드러낸 작품이다.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랐고 같은 문학판에서 시인과 평론가로 활동하는 관계지만 그들은 언제나 비교되었고, 그것은 마치 모순(矛盾)으로만 존재의 의의가 있는 창(矛)과 방패(盾)와 같았다. 하지만 서로의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완충 역할을 하는 디엠제트 역할을 해 주었던 명숙이 죽음으로써, 이제 그 싸움도 끝을 내야 할 때가 왔다. 둘의 싸움은 ‘바둑’이라는 게임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평생의 자존심을 건 싸움’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일종의 ‘의식’이기도 하다. 긴장감 넘치는 대국의 묘사는 이 소설에서 하나의 진경을 이룬다.


「봄눈」 은 장편 「가롯의 창세기」(이룸, 2004)의 모태가 된 작품이다. 이 소설은 현실 기독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로써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종교는 ‘죽음’의 극복을 위해 고안된 것이지만, 현실의 기독교는 오히려 우리의 ‘삶’을 죽음의 공포로 위협한다. 그러니까 죽음에 대한 공포 없이는 현실의 기독교도 유지될 수 없다. 하가료 목사는 기독교의 이런 공포정치를 극복하는 것을 일생의 사명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는 인류에게 덮씌워진 원죄의 올가미를 부정하고 인간을 한낱 꼭두각시로 전락시키는 ‘예정조화설’을 비판한다. 바울로는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신의 섭리를 심각하게 왜곡시킨 장본인으로 지목된다. 죽음을 앞둔 늙은 하가료 목사는 왜곡된 신의 섭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사명을 ‘나’에게 넘겨준다.


박명호는 이 소설집에서 종교, 사랑, 운명, 죽음과 같은 인간의 영원한 숙제라고 할 수 있는 근원적인 주제들을 탐구했다. 일상과 내면에 대한 감각적 욕망에 들뜬 오늘날의 젊은 세대에게는 근원에 대한 진지한 사유가 부족한 것처럼 보인다. 깃털처럼 가벼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근원’에 대한 진지한 사유일 것이다. 만약, 근원에 대한 진지한 사유라는 이 제안을 ‘본질주의’라고 쉽게 단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박명호의 소설을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본문 중에서

구팔이 칠십이, 구구는 팔십일, 꼬꾸댁 꼬꾸댁 팔십한 마리, 히히히···.

그때마다 괜스레 웃음이 뒤따라 나왔다. 아니 곧이어 눈물이 찔끔거렸다. 달이는 닭장에서 닭 모이를 주면서 구구단을 외는 아이들을 부러워했다. - 「산 너머 포구」


방금 전 내가 앉았던 기차 좌석에 앉은 아가씨가 내 쪽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벳푸- 벳푸- 역 안내방송은 노래하듯 춤추듯 아가씨의 창 쪽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인연을 생각했다. - 「잉어깃발」


중국의 어느 부족에선 아직도 결혼하기 전 신께 몸을 바치는 의식이 있답니다. 신이 없고 그래서 신화가 없는 이 시대에 결혼과 상관없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바친」다는 것은 고귀한 일이 아닐까요. 세상에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선생님과 결혼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저는 제 처녀를 선생님께 바치고 결혼하고 싶었습니다. - 「우리 집에 왜 왔니」


목사나 소설가나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자네는 내 목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훌륭한 소설을 쓸 것이야. 목사는 신의 사자(使者)이며 진정한 소설가는 신의 대역자(代役者)지. 대역자란 신의 섭리를 바르게 찾아내는 것이며, 사자란 그 뜻을 바르게 전달하는 것이네. 하여, 소설가에게는 영감이 필요하고, 목사에게는 신앙이 필요하다. 불행히도 인간에게는 두 가지 능력이 모두 주어지지 않아. - 「봄눈


그녀의 가슴은 이미 시(詩)들로 출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시를 건네주던 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었지만(굳이 분간한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그녀는 가슴에 한 아름 꽃을 안고서 나 혼자만 있는 작업실로 찾아왔다. 그녀는 꽃과 함께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었고, 내 몸은 수영선수처럼 배영으로 떠올라 순한 짐승의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가 입맞춤했다. - 「샤갈, 시를 쓰다」


그의 목소리에도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갑수가 돌통을 끌어당겼다. 여객선을 따라온 노을은 우리가 수도승처럼 마주하고 있는 바둑판 위에도 비춰 들었다. 부둣가 또 다른 곳에서는 밤일 떠나는 어부들의 출어 준비가 부산했다. 노을빛은 바둑판 위에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얼굴에도 내 얼굴에도 아니, 방과 창 가득히 출렁거리고 있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 한낮이 다하면 노을이 들고 이윽고 어둠이 밀려들 듯이 어차피 우리의 싸움도 더 이상은 지체할 수 없었다. - 「뿔」


니 뿌뜰리만 죽는대이!

아비는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고는 이윽고 나무에 같이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 댔다. 땅 위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날려 버릴 것 같은 기세였다. 굴뚝새 부자가 올라 있는 미루나무도 그 심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스무 해 수령에도 불구하고 휘청휘청 굽어지기 시작했다. - 「굴뚝새」


주모는 오늘 저녁 또 내게 밀린 밥값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그것이 주모의 구지가라는 것을. - 「龜旨歌를 위한 다섯 가지 변주곡」



저자 소개

박명호


경북 청송 출생.

199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2005년 부산작가상 수상.

장편소설 『또야, 안뇨옹』, 『가롯의 창세기』 등이 있다.



차례

작가의 말


산 너머 포구

잉어깃발

우리 집에 왜 왔니-처용아비

봄눈

샤걀, 시를 쓰다-꽃을 위한 서시에 대하여

꿀뚝새

龜旨歌를 위한 다섯 가지 변주곡


작품 해설-전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