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영 지음
쪽수 | 27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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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140*212 |
ISBN | 979-11-6861-403-1 (03810) |
가격 | 19,800원 |
발행일 | 2024년 12월 24일 |
분류 | 명시모음집 |
책소개
우리 곁의 시, 시 곁의 인생
천천히 즐기는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일 분에 불과한 숏폼 영상은 소비와 동시에 휘발된다. 더 빨리, 더 짧게를 외치는 요즘, 시가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영미시의 매혹』은 영국과 미국 시인 중 삶의 의미와 기쁨의 흔적을 만나게 해줄 스물네 명의 시인을 소개한다. 김혜영 시인은 시에 대한 비평과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번역시와 영시를 통해 시를 읽는 즐거움을 선물한다. 천천히 스며들어 우리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는 시는 분주한 일상을 잠시 멈춰 세우는 힘이 있다. 시가 전하는 따스한 위로와 사색을 통해 우리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재발견하고, 잊고 지냈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
시와 우리의 이야기
이 책에서 소개되는 시는 특정 시대나 주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평범한 일상어로 소탈한 삶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윌리엄 워즈워스의 「나는 한 조각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았네(I Wandered Lonely As a Cloud)」부터 소수자의 차별과 폭력을 드러낸 캐시 박 홍의 「몸 번역하기(Translating Mo’um)」까지. 각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를 다채로운 감정, 경험과 연관 지어 독자에게 전한다.
나아가 김혜영 시인은 각 작품을 정치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조명하며, 영미 시인이 표현한 세계와 그 안에 내재된 메시지를 우리 삶과 연결시킨다. 캐시 박 홍의 시에서 드러나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의 고발, 에이드리언 리치의 레즈비언 정체성에 대한 선언은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저항으로 읽힌다. 시인은 이러한 작품을 통해 시가 감정 표현이나 미학적 즐거움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이다. 『영미시의 매혹』은 시가 개인의 감정적인 차원을 넘어 사회와 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어떻게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지를 보여준다.
언어의 아름다움을 느끼다
이 책은 시를 읽는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제공하기 위해 번역시와 영어 원시를 같이 실었다. 원문이 주는 리듬감과 번역시가 제공하는 언어적 공감은 독자들에게 새로운 차원의 미학적 경험을 선사하고 두 언어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한다. 김혜영 시인은 번역이 단순한 언어의 치환이 아니라, 원문 시의 정서와 리듬 그리고 문화적 맥락을 섬세하게 옮기는 작업임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영어 원문이 가진 리드미컬한 울림을 느끼면서도, 한국어 번역이 전하는 익숙한 감각을 통해 시의 의미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시인의 목소리
『영미시의 매혹』은 시대를 초월해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는 시들을 담고 있다. 각 작품은 당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면서도 인간 존재와 삶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을 던진다. 랭스턴 휴즈의 「나, 역시(I, Too)」는 흑인 공동체가 직면한 차별과 억압 속에서도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강인한 의지를 노래한다. 그의 시는 인종 간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이 여전히 존재하는 오늘날에도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실비아 플라스의 시 「튤립(Tulips)」은 개인의 고통과 억압된 내면을 직시하며 현대인의 불안을 대변한다. 이러한 시들은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고, 오늘날의 현실을 반추하고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영미시의 매혹』은 아름다운 시어를 즐기는 것을 넘어, 각 시가 지닌 사회적, 정치적 맥락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시는 때로는 시대에 저항하고, 때로는 시대를 변화시키는 목소리로 작용한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문학의 힘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김혜영
경남 고성 배둔리의 호수 같은 바닷가에서 1966년에 태어났다. 미국의 고백파 시인들을 비롯한 영미시인들의 시를 연구하면서 시 창작을 하고 있다. 1997년에 〈현대시〉로 등단하여, 시인과 평론가로서 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은 『거울은 천 개의 귀를 연다』, 『프로이트를 읽는 오전』, 『다정한 사물들』을 출간했고, 평론집은 『메두사의 거울』, 『분열된 주체와 무의식』이 있다. 문예지와 신문에 쓴 칼럼 등을 모은 산문집인 『아나키스트의 애인』, 『천사를 만나는 비밀』이 있다. 미국, 중국, 일본에 시집이 출간되었으며 일본에서는 여러 문예지에 소개되었다. A Mirror Opens One Thousand Ears(미국 iUniverse 출판사), 『镜子打开千双耳朵』(중국 옌벤대학교 출판부), 『あなにとぃぅ記号』(일본 칸칸보 출판사)으로 출간되었다. 2010년 제8회 애지문학상을 수상하고,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을 수여받았다. 1996년부터 계간 〈시와 사상〉의 편집위원을 하고 있으며,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에서 연구교수로 재직하면서 현대 영미시인들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책 속으로
52쪽 분노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분노를 자극하는 상황이 벌어질 때 유독 화를 잘 내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불안하다. 고함을 지르고 분이 풀릴 때까지 상대를 위협하는 사람을 보면
독사가 떠오른다. 눈빛은 벌겋게 타오르고 타자를 집어삼킬 태세로 덤비는 모습을 보면 피하고 싶어진다. 아마도 생존 본능이 발현되는 탓일 것이다. 분노에 쉽게 함몰되는 사람을 관찰해 보면 대개 자존심이 아주 강하고 자신의 권리나 영역이 침해당할 때 과도하게 반응한다. 성이 난 자신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고 자신의 분노가 정당하다는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한다. 분노 유발자는 마땅히 응징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체화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분노의 희생자가 된 타자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아예 안 되는 경우도 있다.
80쪽
그는 북쪽에서 온 강한 남자였지요,
빛이 담긴, 위험한 회색 눈을 가졌지요.
“예라는 대답을 다음 기회로 미루시죠
나는 당신에게 아니오라고 말하지는 않겠소.”
그는 희고 튼튼한 팔로 나를 안았고,
그는 나를 그의 말에 태워 데려갔어요.
바위를 지나, 늪을 지나, 좁은 협곡을 지났지만,
그는 내게 한 번도 예 혹은 아니오를 묻지 않았죠.
_「북쪽에서 온 사랑(Love from the North)」
102쪽 가정이나 사회에서 남성 가장이 주인공이며 주인이라는 의식이 아직도 사적인 영역에서 강하게 작동한다. 근절되지 않는 십 대 소녀들의 성매매라든지 외도 산업을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엄연히 존재한다. 남성성에 대한 그릇된 자부심과 그것을 강화시키는 집단 분위기도 크게 개선되지 않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남성의 성욕은 신이 내려준 선물이자 본능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젠더 폭력은 은밀하게 여러 상황에서 작동된다.
테드 휴즈(Ted Hughes)가 쓴 「홰에 앉은 매(Hawk Roosting)」라는 시에서 그러한 젠더 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원초적 본능과 권력 욕구를 탐색할 수 있다.
152쪽
나는 미국의 모든 강을 따라, 거대한 호숫가를 따라, 대초원 너머로
빽빽한 나무들처럼 우정을 심으리라
나는 서로의 목을 팔로 껴안고 헤어지지 않는 도시들을 세우리라.
동지의 사랑으로,
동지의 남성적인 사랑으로
아, 민주주의여, 나의 여인이여! 너를 섬기기 위하여, 이것들을 바친다.
너를 위해, 나는 이 노래를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하네.
_「너를 위하여, 아! 민주주의여(For You, O Democracy)」
218쪽 레즈비언 시인이었던 엘리자베스 비숍과의 오랜 우정도 미국 문학사에서 유명하다. 박사학위 주제로 로월을 선택하고 그의 시를 번역하면서 힘겹게 논문을 썼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번역한 초벌 원고가 가만히 잠자고 있는데 기회가 되면 책으로 엮어야겠다. 그가 살아 있다면 미국으로 건너가 만나고 싶다. 먼 이국에서 그의 시를 치열하게 연구한 시인이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주고 싶다. 어쩌면 사랑일 것이다. 뜨거운 연인처럼 사랑하는 것들이여!
차례
머리말
1부
신사의 품격: 로버트 브라우닝
「밤의 밀회(Meeting at Night)」
「나의 전처 공작부인(My Last Duchess)」
수선화 화분을 사다: 윌리엄 워즈워스
「나는 한 조각 구름처럼 외로이 떠돌았네(I Wandered Lonely As a Cloud)」
레즈비언의 사랑시: 에이드리언 리치
「스물한 편의 사랑시(Twenty—One Love Poems)」
우리 함께 떠나요, 푸른 공항으로: 스티븐 스펜더
「비행장 근처의 풍경(The Landscape Near an Aerodrome)」
시를 읽는 가을 아침에: 앤 섹스턴
「천사와 사귀기(Consorting with Angels)
눈 내리는 어두운 숲의 매혹: 로버트 프로스트
「눈 내리는 밤 숲가에 서서(Stopping by Woods on a Snowy Evening)」
백조를 사랑한 시인의 첫사랑: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쿨 호수의 야생 백조(The Wild Swans at Coole)」
유쾌한 결혼식: 크리스티나 로제티
「북쪽에서 온 사랑(Love from the North)」
2부
우울증을 앓는 튤립과 자살: 실비아 플라스
「튤립(Tulips)」
젠더 폭력: 테드 휴즈
「홰에 앉은 매(Hawk Roosting)」
여름날의 태양과 소네트: 윌리엄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당신을 여름날에 비유할까요(Sonnet 18—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
달빛 아래 술잔을 건네다: 조지 고든 바이런
「자, 방황은 이제 그만(So, We’ll Go No More a Roving)」
식탁을 차리는 예수와 그릇들: 존 키츠
「그리스 항아리에 부치는 시(Ode on a Grecian Urn)」
K팝의 전설과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
「니그로(Negro)」
「나, 역시(I, Too)」
민주주의와 풀잎의 노래: 월트 휘트먼
「너를 위하여, 아! 민주주의여(For You, O Democracy)」
이미지 정치의 한계와 모성적 정치: 앤 카슨
「영웅(Hero)」
3부
기러기처럼 날아가는 여행: 메리 올리버
「기러기(Wild Geese)」
『딕테』와 죽음의 서사: 차학경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하와이 한인들의 탄원서(Petition from the Koreans of Hawaii to President Roosevelt)」
소수자의 감정: 캐시 박 홍
「몸 번역하기(Translating Mo’um)」
늙은 바다와 아버지의 초상: 로버트 로월
「로월 중령(Commander Lowell)」
패터슨 시내를 산책하다: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
「옹호(Apology)」
유령의 울음소리: 오드리 로드
「후유증(Sequelae)」
잡초의 권리: 루이즈 글릭
「개기장풀(Witchgrass)」
상실의 시학: 엘리자베스 비숍
「한 가지 기술(One Art)」
「샴푸(The Shamp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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