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 지음
쪽수 | 27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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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130*200 |
ISBN | 979-11-6861-397-3 03810 |
가격 | 20,000원 |
발행일 | 2024년 11월 25일 |
분류 | 한국에세이 |
책소개
★2024년 일본어판 출간★
★개정판 출간 기념 새로운 에피소드 수록★
2016년 개성공단 가동 중단 이후 8년, 북한은 2020년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켰고, 최근에는 경의선‧동해선 육로 폭파에 이어 개성공단의 송전탑을 철거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남북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은 그 흔적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다.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는 개성공단 폐쇄 직전 1년간 공단의 영양사로 일했던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개성공단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북한과 북한 사람들에 대해 궁금해하던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2024년에는 일본어판이 출간되었고, 단기간에 3쇄를 찍으며 북한에 대한 일본 사회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개성공단 재가동의 불씨가 사라져가는 지금, 그곳의 마지막 모습을 기록한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는 그 의미가 더욱 깊다. 개정판을 출간하며 개성공단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를 추가로 수록하였다.
개성공단의 영양사로 그들의 ‘점장 선생’이 되어 보낸 1년의 기록
휴전선 넘어 북한으로 출근하는 일을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언젠가 대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북한’으로 취업준비를 하게 될 날이 올까? 북한 주민들과 직장동료가 되는 소설 같은 일이 남북경제협력사업의 일환이었던 ‘개성공단’에서는 가능했다. 『나는 개성공단으로 출근합니다』에는 2016년 개성공단이 폐쇄되기 전, 저자가 1년간 개성공단 공장동에서 영양사로 일을 하며 만난 북한과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는 봉사활동을 위해 찾아간 파키스탄에서 무너진 건물들 사이로 밥을 얻으러 다니는 아이들을 만난 기억이 있다. 그 모습에서 분단된 조국과 그 땅에서 일어났던 한국전쟁을 떠올리고는 북한과 통일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기아문제로 고통 받는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해 일하기로 결심하고, 영양전문가가 되기 위한 공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스물아홉 초보 영양사는 1년 동안 매주 휴전선을 건너 개성공단으로 출근하는 삶을 살았다.
개성공단에서 보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함께 맞이하고 싶었던 봄
저자는 2015년 봄, 하루 한 대밖에 없는 관광버스를 타고 북한에서 주의해야 하는 사항들을 외우고 또 외우며 개성공단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누리미 공장동 외에 공단 내의 3,000여 명을 위한 급식 식자재 반출입과 북한 직원 관리 총괄 업무를 하며 그들의 ‘점장 선생’으로 사계절을 보냈다.
당시 나이 스물아홉 살이었던 저자는 북한 직원들에게 만만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마흔둘이라 속이며 일을 시작한다. 커피 믹스로 직원들과 마음을 주고받고, 손을 다친 북한 직원의 손가락에 조장 몰래 약을 발라주며, 겨울에는 남한과 북한의 김칫소를 서로 바꿔 먹기도 한다.
때로는 서로의 표현 방식이 달라 마음을 오해해 서운함을 느끼기도 하고, 사소한 것에도 남북의 체제 경쟁으로 신경전을 벌일 때도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기약 없는 이별 앞에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연휴가 끝나면 함께 먹으려 했던 개성의 내 사무실 책상 위의 사과와 과자들. 그리고 숙소의 옷가지와 물품들, 그리고 냉장고 속 식재료들. 아무것도 가지고 나오지 못한 채, 이제 우리는 어쩌냐며 허탈해하던 개성에 일자리를 두고 온 남한사람들과 함께 어찌할 바를 모르던 2016년 이른 봄날의 기억이다.”
북한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산다
우리가 접하는 북한의 소식은 대중매체를 통해 정제되고 가감된 이야기다. 하지만 북한에는 김정은이나 핵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에도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가족을 먼저 떠올리고, 고부 갈등을 겪고, 겨울엔 김장을 하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 있다. 세관원, 군인, 노동자들, 면세점 아가씨, 경비원, 그리고 매일 함께 살 맞대며 울고 웃었던 북한 직원들, 곧 평범하고 소소한 우리 이웃의 이야기가 있다. 이 책에는 2015년부터 2016년까지 남북 간에 미묘한 낌새가 있을 때마다 그 안에서 있었던 긴장감과 매일 일상을 통해 피어난 우정과 서로에 대한 연민 등이 녹아 있다. 남북의 정치·사회적 관계만을 말하는 대중매체에서는 듣지 못할, 선전용 문구 그 너머에 담긴 북한 사람들의 조심스럽지만 진솔한 마음도 엿볼 수 있다.
첫 문장
2016년의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설날 연휴의 마지막 날이었다.
책 속으로
P. 19-20 개성에 들어가기로 한 전날 밤, ‘휴전선을 넘는다니… 진짜? 북한에 가는 거야?’ 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며 이불을 뒤집어쓰고 겁이 나서 울었다. 면접까지는 멋지고 당당하게 보고, 페이스북에는 세상에 없을 평화의 일꾼처럼 써놓고 정작 나는 잔뜩 졸아 있었다. 주변엔 북한에 가본 사람도 없었고, 나 또한 중학생 시절 가족들과 함께 다녀온 금강산 관광여행이 전부였다. 이번엔 정말 혼자였다.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도, 가보고는 싶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가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무서우면 가지 말라는 부모님, 남자친구(지금의 신랑)의 만류에도, 그래도 가서 그들과 일해보고 싶었다. 흡사 독립운동하러 떠나듯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안국동 현대사옥 골목으로 갔다. 주 6일 매일 같은 시간(6시 40분)에 대기하고 있던, 하루에 1대밖에 없던 대화관광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_「개성으로 들어가던 날」
P. 110 북한 성원들은 정말 남한 사람들에게 관심 많은 듯했다. 쉬는 시간에 다 같이 있게 되면, 꼭 남한 이야기를 물어본다. 여자들 미용에 대한 것이나 간단한 의료적인 것들, 집안일은 어떻게 하는지 등등. 그중 기억에 남는 질문이, “점장 선생 남측 사람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해요? 이 공업지구에 대해 어떻게 말들 해요?”였다. 나는 사실대로 말했다. 별 관심이 없다고. 남한사람들 대부분 본인 살기도 바쁘고, 요즘 사람들에게 통일문제나 북한은 큰 관심사가 아니라고 했다. 사실 내 주변만 봐도 관련된 일을 하지 않는 이상 개성에 들어가 일하는 것을 좀 별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랬더니 북한 직원들, 특히 조장은 북한에 관심이 없다고 서운함을 넘어 역정(?)을 냈다. 어떻게 한민족인데 우리한테, 통일문제에 관심이 없냐고 했다.
_「남한은 8.15 광복절, 북한은 8.15 해방절」
P. 184-185 내가 만났던 개성의 여성들, 특히 결혼한 여성들은 노동시간이 많아 보였다. 그녀들뿐 아니라 개성공업지구에는 여성 노동자가 참 많았다. 남성 노동자들도 있긴 하지만, 여성 노동자에 비하면 그 수가 확연히 적었다. 이들 여성 노동자들은 새벽에 버스를 타고 나와 북한 사람들끼리 하는 새벽 총화를 하고, 7시쯤부터 공장 주변을 청소하고 일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에는 집에서 가져온 빨래를 했다.
어느 소규모 사업장에는 북한 여직원이 여섯 명 있었는데 그녀들이 어느 날 세숫대야를 사달라고 했단다. 직원복지 차원에서 세숫대야를 구해다 주니 크기가 작다며, 커다란 세숫대야를 달라고 했단다. 그래서 어린아이를 씻길 만한 더 큰 사이즈의 대야를 사다 주니 그제야 요거면 됐다며 좋아했다고 했다. 세숫대야가 왜 필요했을까? 공장엔 샤워 시설까지 잘 갖춰져 있는데 말이다. 알고 보니, 세숫대야는 빨래를 하기 위함이었다. 북한 성원들은 온 식구들의 빨랫감을 다 가지고 와서는 쉬는 시간을 이용해 팔이 부서져라 빨래를 했다. 비상구 계단에 빨래를 보송보송하게 말려 집에 가져가는 북한 성원들로 인해 공장동 한켠은 언제나 북한 사람들의 옷감이 잔뜩 널려 있었다.
_「북한 여성들의 노동시간」
P. 238-239 둘만 있게 되는 상황엔 이런저런 얘기들을 꽤 꺼냈다. 남한은 다들 차가 있는지(개성에서 정말 많이 들은 질문이었다), 반찬은 보통 무얼 먹는지, 시부모님은 어떠신지, 신랑은 어떤 사람인지. 북한 사람들은 질문을 많이 하는데, 얼마쯤 지나고 나니 이게 보고용 질문인지, 정말 궁금해서 하는 질문인지 감이 왔다. 주로 부모님 직업, 이름, 남편 이름, 회사, 집 주소, 출신학교 등을 처음에 물어본다. 나는 정말 궁금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매번 대답해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진짜 궁금한 것도 있겠지만 리스트업해서 보고하는 내용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은 내용 자체가 다르다.
이 동갑내기 성원은 정말 궁금해서 많은 걸 물어봤었다. 여기 나와 일 하는데 남편은 뭐라고 안 하냐며, 혼자 이렇게 지내려면 심심하겠다며 동무가 보고 싶지 않냐고 했다. 한번은 매듭이 꼬인 비닐봉지를 가위로 자르려고 하니 지나가다 와서는 “점장 선생~ 잠깐만요 매듭은 풀어야 좋대요~” 하며 손공을 들여 비닐봉지의 매듭을 풀어냈다. 남한에 온 지금도 가끔씩 매듭은 끊지 말고 풀어야 좋다던 그 말이 생각이 난다. 그녀에게 만약 내가 남한에 아주 내려가게 되더라도 더 좋은 점장이 와서 성원들에게 잘 해줄 것이라고 말하면 “물건은 새것이 좋고 사람은 옛사람이 좋대요.” 하며 곁을 맴돌았다.
_「아직도 보고 싶은 북한 성원 리순희」
저자 소개
김민주
우리 곁에 언젠가는, 그러나 반드시 다가올 통일을 묵묵하게 준비하는 사람.
90년대 수많은 아사자를 낳은 북한의 식량난은 그녀에게 체제와 이념을 넘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통일부 사회문화교류과와 유엔세계식량계획(UNWFP) 민간협력 분야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난의 행군” 시절 성장기를 보낸 북한 주민들의 영양결핍에 대한 논문을 썼다. 개성공단 영양사 구인공고를 본 그녀는 석사를 졸업한 그달 휴전선을 넘어 개성 땅으로 향한다.
개성공단의 누리미 공장동 외에 공단 내 버스사업소 등 북한노동자 3,000여 명을 위한 급식 식자재 반출입 및 북한 직원 관리 총괄 업무 등을 하며 그들의 ‘점장 선생’으로 사계절을 함께 보냈다. 개성공단의 급작스러운 폐쇄 이후에도, 그녀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에서 정착지원 업무를 하며 다양한 지역에서 온 각계각층의 북한이탈주민을 만나 북한에 대한 시야를 넓혔다.
그녀는 남한과 북한이 함께 ‘우리’라고 부를 날을 소망하며 현재도 평화・통일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unikorea_kimminju@naver.com
목차
개정판 프롤로그: 그냥 그곳에서 태어났을 뿐
시작하며
1장 개성에서 느낀 봄
개성으로 들어가던 날
북한 가요, 심장에 남는 사람
그분들 얼굴이 그려진 휘장? 태극기가 그려진 배지?
맥심커피는 한국을 싣고, 세관은 검은 봉지를 들고
개성으로의 물품 반입과 반출 그리고 삼겹살 상납
꽃다발과 참사관 아저씨, 그리고 김정철과 에릭 크립튼
급식소의 남은 반찬들과 음식물 쓰레기는 왜?
김밥 한 줄로 느낀 남북의 경제적 차이
3,000명분의 식재료와 김치, 그리고 북한 냉면? 아니, 개성공단식 냉면!
2장 개성에서 겪은 여름
임금전쟁과 가자미 사건
북한 노동자는 안 되고, 평양 사람은 되고
남한은 8.15 광복절, 북한은 8.15 해방절
회식날은 상 위의 음식을 싸 가는 게 합법?!
북한 성원 향이의 임신과 그녀들의 총화
효숙 성원의 귀한 포도 두 송이, 한 송이는 시댁에 한 송이는 친정에
1톤 탑차를 타고 휴전선 넘어 결혼하러 다녀올게요!
목함지뢰 사건이 개성공단 일하는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3장 개성에서 보낸 가을
개성 사람들과 함께 썼던 남한 샴푸 린스
늦게 끝나는 식당들과 그녀들의 퇴근 시간
2015년에도 기억되는 통일의 꽃(?) 임수경
고맙다는 말이 그렇게 어렵나요?
까만 시골 총각 같은 북한 군인 뽀얀 도시 총각 같은 남한 군인
신앙서적 『생명의 삶』, 그 안의 한 문장 때문에 낸 벌금 150달러
북한 여성들의 노동시간
USB와 벌금 200달러로 남북한 마음 대동단결
4장 개성에서 만난 겨울
미래와 과거가 공존하는 곳
북한 땅에서 먹은 자본의 맛 BHC 치킨!
처음으로 함께 섞여 먹은 라면
조장 선생 귤 좀 가져가지 말아요, 제발 필요하면 말을 하세요
성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간식 떡, 과일 그리고 빵
1층의 면세점 북한 아가씨들
건물 경비 아저씨와 나
북한 김칫소와 남한 김칫소 바꿔 먹기
아직도 보고 싶은 북한 성원 리순희
12월 11일 회담날, 랭천사이다
북한 엘리트 여성 수희
1월 6일 핵실험, 그리고 현관문 앞 북한 배달부들
개성에서의 마지막 날
개성으로 들어가기까지
맺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