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검은 자화상

하근찬 지음
쪽수
256쪽
판형
152*225
ISBN
979-11-6861-379-9 04810
가격
22,000원
발행일
2024년 10월 30일
분류
하근찬 전집 15

​책소개

★2021년 작가 탄생 90주년 기념 <하근찬 전집> 최초 출간★

★2024년 하근찬 전집 4차분 발간★


전쟁의 기억을 오랫동안 재현해온 하근찬의 최후기작

제15권 『검은 자화상』


단편적으로 알려졌던 소설가 하근찬,

그의 문학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다


한국 단편미학의 빛나는 작가 하근찬의 문학세계를 전체적으로 복원하기 위해 ‘하근찬문학전집간행위원회’에서 작가 탄생 90주년을 맞아 <하근찬 문학 전집>을 전 22권으로 간행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하근찬의 소설 세계는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있다. 하근찬의 등단작 「수난이대」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이어져온 민중의 상처를 상징적으로 치유한 수작이기는 하나, 그의 문학세계는 「수난이대」로만 수렴되는 경향이 있다. 하근찬은 「수난이대」 이후에도 2002년까지 집필 활동을 하며 단편집 6권과 장편소설 13편을 창작했고 미완의 장편소설 3편을 남겼다. 하근찬은 45년 동안 문업(文業)을 이어온 큰 작가였다. ‘하근찬문학전집간행위원회’는 하근찬의 작품 총 22권을 간행함으로써, 초기의 하근찬 문학에 국한되지 않는 전체적 복원을 기획했다.


원본과 연보에 집중한 충실한 작업,

하근찬 문업을 조망하다


하근찬 문학세계의 체계적 정리, 원본에 충실한 편집, 발굴 작품 수록, 작가연보와 작품 연보에 대한 실증적 작업을 통해 하근찬 문학의 자료적 가치를 확보하고 연구사적 가치를 높여, 문학연구에서 겪을 수 있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근찬 문학전집은 ‘중단편 전집’과 ‘장편 전집’으로 구분되어 있다. ‘중단편전집’은 단행본 발표 순서인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을 저본으로 삼았고, 단행본에 수록되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하근찬의 작품들도 발굴하여 별도로 엮어내어 전집의 자료적 가치를 높였다. ‘장편 전집’의 경우 하근찬 작가의 대표작인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산에 들에』뿐만 아니라, 미완으로 남아 있는 「직녀기」, 「산중 눈보라」, 「은장도 이야기」까지 간행하여 하근찬의 전체 문학세계를 조망한다. 


15권 『검은 자화상』

전쟁의 기억과 격동의 시대 속에서 무너진 검은 얼굴들


1991년 발표된 하근찬의 최후기 장편소설 『검은 자화상』은 194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각각 다른 시간대에 놓인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태평양전쟁, 한국전쟁을 거쳐 민주화, 산업화의 기로에 놓인 한국 사회가 되기까지 혼란스러운 상황을 ‘병칠’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검은 자화상』이 발표된 1980년대는 민주화에 대한 좌절과 희망이 사회를 뒤덮고 있던 시대였다. ‘병칠’은 사랑하는 연인을 친척인 ‘두성’에게 빼앗긴 후, 남과 북의 두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는 동안에도 연인 ‘선애’를 되찾기 위한 집념을 저버리지 않는 인물로 묘사된다.


분단으로 인한 두 이데올로기의 충돌이 작품의 전면에 부각되어 있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설의 장치일 뿐이다. 내용은 한 여자를 두고 두 혈육이 목숨을 걸고 부딪치는, 말하자면 애증의 극한상황을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첫사랑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한 남자의 집념이라 할까, 열정이라 할까, 그런 원색적인 애정을 형상화해 본 셈이다.

남녀 간의 애정이 자칫 이기적으로 흐르고, 그 질감이 희박해져가고 있는 요즘 세태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한 인간형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첫사랑을 위해서 자기의 인생을 던지다시피 한 주인공을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그 반응이 궁금하다.

-하근찬, 『검은 자화상』 ‘작가의 말’ 중에서

『검은 자화상』은 세 개의 이야기가 중첩되어 있는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가장 바깥에는 신문기자 중현과 아내 혜선이 고향을 방문하는 이야기가 놓여 있다. 그리고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로부터 시작되는 병칠과 선애의 이야기가 작품의 중심 서사로 가장 안쪽에 놓여 있다.

국민학교 6학년인 병칠은 전학 온 선애와 연인이 된다. 하지만 병칠이 일본 규슈로 일하러 간 동안 선애는 병칠의 육촌 형인 두성과 혼인을 하게 된다. 병칠이 일본에 있는 동안 선애는 ‘데이신따이(정신대)’ 징집을 피하기 위해, 그리고 어려운 집안 형편을 고려하여 부농 집안과 혼인을 한 것이다. 병칠은 선애가 혼인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분노하기보다는 두성에게 적개심을 품고 선애를 되찾겠다는 집념으로 살아간다. 한국이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병칠과 두성은 남과 북의 두 이념 휩쓸리고, 두 인물의 갈등은 절정에 달한다. 


첫 문장                                                                                         

차창 밖으로 가로수들을 내다보며 안혜선은,

“나무들이 억씨기 컸네. 정말…….”

감개가 꽤나 무량한 듯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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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p.61

한 장에 두 개씩, 열여덟 살 총각의 손바닥과 열여섯 살 처녀의 손바닥이 마치 무슨 검정색 꽃송이처럼 곱게 떠올라 보였다.

병칠이는 그것 한 장을 선애에게 주며 말했다.

“한 장은 니가 갖고, 한 장은 내가 갖는 기라. 이기 무슨 뜻인지 알겠제?”

선애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이걸 가슴에 품고 일본에 갈라 캐. 돌아올 때까지 늘 가슴에 품고 있을 끼니까, 니도…….”

“…….”

말없이 살짝 고개를 떨구는 선애의 얼굴에는 약간 쑥스러우면서 도 슬픈 듯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p.121

그런 생각을 문득문득 해보며 살맛 안 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뜻밖에 형의 입에서 국방경비대 얘기가 나왔으니,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군대라는 말에 처음에는 좀 얼떨떨했으나, 잠시 후 병칠이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총이었다. 총— 그렇다. 바로 그거다. 총을 손에 쥐어야 된다 싶었다. 총을 마구 쾅쾅 쏘아댄다면 얼마나 속이 후련할까. 그리고 그것으로…… 문득 섬뜩한 생각이 머리를 때리자, 병칠이는 그만 등골이 썰렁해지며 버르르 떨렸다. 그러나 그것은 으스스하도록 기분 좋은 전율이었다. 두말없이 입대하기로 병칠이는 마음을 굳혔다.


p.163

다락 바닥에 밀착시키고 있던 머리를 번쩍 쳐들고 바깥의 기척에 귀를 곤두세웠다. 정말 너무나 의외의 일에 어리둥절하고 얼떨떨하면서도, 우선 살았구나 하는 안도감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도대체 누구길래 이 집 물건에는 손을 대지 말고 물러나오라는 것일까…… 참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동무들 어서 대문 밖으로 나가! 다른 집으로 가서 보급투쟁을 하라 말이다!”

다시 호령소리가 들렸다.

“아니 혹시…….”

두성이의 머리에 번쩍 떠오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이 은혜를 갚을 날이 반드시 온다. 멀지 않았대이. 두성아, 그때 보재이’ 하던 김학수의 말이었다. 숙직실에서 자고, 새벽에 교무실까지 같이 가서 사친회비로 거둬둔 돈까지 모조리 긁어가지고 떠나면서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p.211-212

집 안 사람들은 두성이의 얼굴만 쳐다볼 뿐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는 듯 착잡한 표정들이었다. 공산당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들어서 짐작을 하고 있는 터이라, 그들의 세상이 되었다면 마을에서 제일 부자인 자기네 집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두성이의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는 것이었다. 사연이야 어찌 되었거나 좌우간 칠 년 징역을 받고 좌익수로 복역을 하다가 탈출을 해서 돌아온 터이니까 공산당 세상이 되었다면 말하자면 자기가 활개 칠 세상이 된 셈인데,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지, 앞으로 과연 그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 지켜볼 따름이었다.


작가 소개                                                                                       

하근찬(河瑾燦, 1931~2007)

1931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전주사범학교와 동아대학교 토목과를 중퇴했다. 195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수난이대」가 당선되었다. 6.25를 전후로 전북 장수와 경북 영천에서 4년간의 교사생활, 1959년부터 서울에서 10여 년간의 잡지사 기자생활 후 전업 작가로 돌아섰다. 단편집으로 『수난이대』 『흰 종이수염』 『일본도』 『서울 개구리』 『화가 남궁 씨의 수염』과 중편집 『여제자』, 장편소설 『야호』 『달섬 이야기』 『월례소전』 『제복의 상처』 『사랑은 풍선처럼』 『산에 들에』 『작은 용』 『징깽맨이』 『검은 자화상』 『제국의 칼』 등이 있다. 한국문학상, 조연현문학상, 요산문학상, 유주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98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07년 11월 25일 타계, 충청북도 음성군 진달래공원에 안장되었다.


차례                                                                                           

발간사 


은냇골을 찾아서 

떠돌이 환쟁이 

열여섯 살의 아지랑이 

검정빛 고운 손바닥 

고향에 돌아오니 

겨울밤의 메아리 

흔들리는 산줄기 

수상한 나그네 

함박눈 쏟아지는 밤 

떨어진 날벼락 

불타는 여름 

달빛 아래에서 

구름을 따라서 

검은 자화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