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수상한 초대

이현숙 지음
쪽수
208쪽
판형
125*190
ISBN
979-11-6861-371-3 03810
가격
17,000원
발행일
2024년 9월 12일
분류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책소개

어긋나는 신뢰, 무너지는 가정

몰아치는 관계의 파괴에 휘말리는 사람들



더 물러설 곳 없는 위태로운 일상을 그리다, 이현숙의 첫 소설집


위태로운 일상과 관계에 휘말리는 인물들을 담은 이현숙 소설가의 첫 소설집 『수상한 초대』가 출간되었다. 책에 수록된 다채로운 작품들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우리 시대에 윤리란 무엇인지”(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물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적인 사회의 단면을 그린 「태풍의 집」, 「검은색 스키니진」과 가장 안전해야 할 가족 안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안을 그린 「비트의 세상」, 「로터스」를 비롯한 총 6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이현숙 소설가는 작품에서 자신 앞에 놓인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각자의 방식으로 맞서는 인물들을 그린다. 이들이 마침내 내리는 선택은 마냥 옳고 착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독자들은 이들이 곧 “타인의 얼굴을 한 나”(안지숙 소설가)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일상이라는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자신를 되돌아보는, 또 다른 질문의 시작이 된다.



자신을 가두는 벽을 깨고 밖으로 한 발을 내딛는 여성들


표제작 「수상한 초대」의 주인공 혜경은 변변찮은 수입으로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채 학원 강사로 살아간다. 돈 많은 남편과 결혼해 떵떵거리며 사는 동생 나경이 언제나 우선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경이 갑작스럽게 온 가족을 별장으로 초대하고, 그곳에서 혜경은 나경이 혈액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당연하다는 듯 혜경에게 조혈모세포 검사와 골수 이식을 강요하는 가족들. 그러나 그중 누구도 혜경의 의사와 기분을 배려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 가족을 위해 희생할 것인가, 자신을 지킬 것인가. 혜경은 고민에 빠진다.


나경의 말끝이 마치 내게 골수를 맡겨 놓았다가 찾아가는 것처럼 들렸다. 나경과 엄마가 수술 날을 잡았다. 나에게는 사전에 연락도, 한마디 의논도 없었다. 가족들 누구도 나경이 수술을 하고 난 뒤 내 거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방에선 알아주는 명문대 졸업자인데 돈은 많이 벌지 않았느냐? 혼자 살면서 돈 들어갈 일이 뭐가 있냐? 그동안 모은 돈 이럴 때 써야지 언제 쓸 거냐며 다들 한마디씩 거들 게 뻔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건 나뿐이었다.(162쪽)

「태풍의 집」의 ‘나’는 폭력적인 아빠를 피해 가출한 뒤, 한 다방에서 일한다. 갈 곳 없던 ‘나’에게 자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하라며 접근한 다방 사장. 그러나 이곳에서 시키는 일은 학대에 가깝다. 돈 많은 영감, 몸이 불편한 장애인 등이 부르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삶은 지긋지긋할 뿐이다. 어느 날 다방이 있는 지역으로 태풍이 올라오고, 폭우로 인해 다방에 물이 밀려들기 시작한다. 무언가 결심한 ‘나’는 짐을 싸고, 다방으로 물이 들어오지 않게 입구를 막아두었던 모래주머니를 치운다.



외면하고 싶은 가족, 벗어나고 싶은 현실


「여행의 한 방식」은 아픈 아버지를 둘러싼 자식 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다. 요양병원에서도 거부하는 괴팍한 성격의 아버지. 네 자식 중 그 누구도 아버지의 돌봄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막내아들이라는 이유로 배려받으며 자란 ‘나’가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애쓰지만 아버지는 자꾸 집을 나가 어디론가 사라져 골치가 아프다. 그런데 갑자기 큰형이 아버지를 모시고 에베레스트로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선언한다. 형은 정말 여행을 가려는 것뿐일까. ‘나’는 자꾸만 형의 말이 신경 쓰인다. 

「비트의 세상」의 주인공 ‘나’는 돈 많은 남편과 결혼해 부족함 없는 삶을 살고 있지만 생활 어딘가가 늘 공허하다. 예술을 하는 동생 ‘준’은 남편의 도움을 받아 생활을 이어가고, 남편은 그런 준이 못마땅하다. 남편에게 준의 일은 아이들이나 하는 심심풀이에 불과하다. 동생을 무시하며 돈밖에 모르는 남편과 현실 감각이라고는 없는 동생. ‘나’는 현실로부터 도피해 내가 여왕이 될 수 있는 ‘비트의 세상’으로 가고 싶다.


남편 덕분에 동생이라도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게 해 줄 수 있어 그나마 위안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 위안도 세월의 더께가 높아질수록 퇴색되어 갔다. 이제는 동생의 존재가 굽은 등에 짊어져야 하는 무겁고 불편한 짐짝처럼 느껴졌다.(116쪽)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


「검은색 스키니진」과 「로터스」의 인물들은 가장 친밀하고 신뢰해야 할 상대인 배우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검은색 스키니진」의 ‘나’는 오랜 결혼 시도 끝에 네팔의 이주여성 ‘테리’와 결혼한다. 테리는 결혼 조건으로 남동생들의 등록금과 친정 생활비, 지진으로 무너진 친정집을 다시 지어줄 것을 요구하였다. 결혼 후 ‘나’의 가게 사정이 어려워지며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고 싶어 하는 테리. ‘나’는 그런 테리가 일하는 것에 반대하는데, 언젠가부터 테리는 새벽에 몰래 집을 나가 어디론가 향한다.

「로터스」의 여자는 남편과 구두공장을 운영한다. 화장하고 여자 옷과 액세서리를 즐겨 착용하는 남편. 고등학교 동창 ‘성민’의 아내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남편이 장례식장에 다녀온 후 어딘가 이상하게 변했다. 성민과의 통화가 부쩍 늘어나고, 평소 하지 않던 외출도 잦아진 것이다. 여자는 자신과 남편 사이에 마치 건너지 못할 강이 흐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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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으로                                                                   

p33 아버지 손에는 붉은색 장미 조화 한 다발이 들렸다. 청혼하기 위해 한 여인을 기다리는 청년처럼 아버지 두 볼은 장미색으로 상기되었다. 그동안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던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내 아버지가 아닌 것처럼 낯설었다._「여행의 한 방식」


p71 나는 쇠문을 살며시 닫았다. 천천히 양쪽 문고리에 쇠사슬을 걸고 자물쇠를 채웠다. 쇠사슬 소리에 불곰이 뒤를 돌아봤다. 나는 얼른 계단을 올라와 다방 입구에 쌓여 있는 모래주머니를 걷어냈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모여 있던 물살이 계단을 타고 지하 다방으로 순식간에 몰려 들어갔다. 계단 입구에 있는 알루미늄 셔터를 힘껏 내렸다._「태풍의 집」


p101 그녀는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녀 또한 부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따져 보면 미안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그였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써서 눈에 가장 잘 띄는 벽에 걸어 놓은 액자는 오직 자신의 외로움을 메우기 위해 신봉했던, 그를 위한 그의 슬로건이었다._「검은색 스키니진」


p119 준은 옷 잘 입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고, 꾸미고 다듬고 가꿔야 할 것은 사람의 내면이 아니냐며 되레 나를 가르치려고 들었다.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관찰하든 오직 내면에만 충실한 준이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두꺼운 화장을 벗겨 낸 본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_「비트의 세상」


p161 학원 원장에게 동생 사정을 말하며 한 달 휴가를 신청했다. 마지막 피 검사를 하고 나니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원장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거의 한 달간 임시 강사로 대체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눈살을 찌푸렸다. 수업을 끝내고 나오면서 사직서를 제출했다. 원장은 문 앞까지 따라 나오면서 언제든 필요할 때 다시 전화 주겠다며 문을 쾅 닫았다._「수상한 초대」


p195 남편이 사춘기 아이처럼 충동적으로 말을 쏟아 냈다. 그의 입에서 날개를 펴고 나오는 불새를 본 것 같았다. 내가 툭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그 새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 바람이 놀이터에 있는 정원수를 휩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_「로터스」


 추천사                                                                     

이현숙의 소설은 인간 윤리의 경계 위에 위태롭게 서사를 구축하며, 끊임없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 보편적인 질문이 지칠 만한데도 독자가 멈추지 않고 소설을 읽는 이유는, 이현숙의 소설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윤리 없는 소설은 존재할 수 없고, 재미없는 소설은 독자의 영역에서 부재할 수밖에 없다. 윤리를 다루되, 그 고루함을 넘어서는 픽션의 즐거움은 그래서 어렵고, 이를 성취해낸 소설은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우리 시대에 윤리란 무엇인지, 우직하게 서사화하는 작가의 역량이 믿음직하다. _이국환(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이토록 따뜻한 응시라니. 상냥하게 웃어도 섬뜩한 계산속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악을 쓰고 욕을 해도 연민을 자아낸다. 이현숙의 소설집 『수상한 초대』의 인물들이 똑 그렇다. 탐욕스럽고 이기적이며 뻔뻔한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면서도 작가 이현숙은 한시도 온기 어린 눈빛을 잃지 않는다. 이현숙 작가가 딱 자기 같은 소설을 썼네, 알은체하길 기다렸다는 듯 소설 속 인물들이 쓱 모습을 드러내면, 이야기판에서 날뛰는 인물을 쫓아 허겁지겁 달릴 수밖에 없다. 인물은 하나같이 타인의 얼굴을 한 나다. _안지숙(소설가)


작가가 빚어낸 인물들은 하나같이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지점에 닿아, 나아갈 방향을 잡지 못하고 안에서만 휘몰아친다. 이들은 짓밟아도 가만히 있는 건 참는 것이 아니라 갚을 기회를 노리는 것이라고 낮은 소리로 다짐한다. 마지막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어리석은 선택이 오히려 독자에게 장렬한 통쾌함을 선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의 손끝이 닿으면 덮어두었던 탁하고 삐뚤어지고 경멸스러웠던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빛을 찾아간다. _이강선(중등학교 수석교사)


작품 속의 등장인물을 통해 다양한 각도에서 인간의 본성과 갈등을 유려하게 풀어 놓았다. 적당히 감추고,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 속물적인 인간의 허영과 위선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절묘한 심리묘사와 위트, 생생한 인물들의 대사로 몰입감이 뛰어나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잘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지게 한다._이수진(수필가)


저자 소개                                                                    

이현숙

전남 완도 출생

동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2009년 『수필과 비평』 신인상

2018년 『동리목월』 신인상

현재 부산소설가협회 회원


출판물

『문학관 산책』(공저)

『그녀들의 조선』(공저)


차례                                                              

여행의 한 방식

태풍의 집

검은색 스키니진

비트의 세상

수상한 초대

로터스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