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

분절된 노동, 변형된 계급-울산 대공장 노동자의 생애와 노동운동

유형근 지음
쪽수
512쪽
판형
152*225
ISBN
979-11-6861-097-2 93330
가격
35,000원
발행일
2022년 10월 21일
분류
노동문제
*2023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책소개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조직적 배제

기업 내에서의 계급 간 동맹 우선시

저항의 감소, 온건화, 연대의 쇠퇴, 파업의 의례화


공장 안과 밖, 자본에 포섭된 노동

울산 대공장 노동계급 형성의 역사와 실체를 밝힌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울산 대공장 노동자들의 생활과 의식, 노동운동을 분석하다


울산은 한국의 최대 중화학 공업도시이며, 노동운동의 중심지였다. 이 책은 한국의 대표적인 산업도시 울산의 대공장 노동자의 생활과 의식, 노동운동을 노동계급 형성의 관점에서 살피고 있다. 이를 통해 저자는 민주화 이후 지난 35년의 급격한 사회 변동 속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이 지나온 행로를 이해하고 오늘날 그들의 집단적 실천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저자는 계급이 구체적인 시공간의 맥락 속에서 계급을 구성하는 여러 층위들 간 상호작용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라는 관점에 따라 울산의 대공장 노동자들의 계급상황, 집단 정체성, 집합행동의 세 가지 층위들 각각의 변화 과정을 추적한다. 또한 작업장의 노사관계와 노동운동뿐만 아니라 노동자와 노동자의 가족의 생활 영역을 분석함으로써 울산 대공장 노동자의 삶과 그들의 노동운동의 전체적인 모습을 분석한다.


노동계급 동질화에서 이질화로, 연대의 사회적 기반 침식


울산지역의 노동계급은 1987년의 대규모 노동자 집합행동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매우 동질화된 계급상황을 배경으로 집합행동이 분출하면서 기존의 억압적 노사관계는 빠르게 무너졌다. 폭발적 동원이 나타난 ‘결정적 국면’에서 구조화된 조직적 유산들은 노동자 연대를 제약하였다. 1987년 직후 노동자들의 자생적인 지역 연대가 활성화되었지만, 그것이 조직화되거나 제도화되지는 못하였고, 노동자 연대의 범위도 노동시장 분절구조를 뛰어넘지 못하였다. 이러한 제한적 연대의 전통으로 인하여 울산의 지역노동운동은 소수의 대기업 노조의 전략적 선택에 의존하였다. 이러한 조직적 유산 속에서 대기업 노조의 분파적 이익 추구 성향은 점점 커졌고 지역의 다른 노동자들과의 이해 균열은 넓어졌다.

1990년대 울산지역 노동자들의 계급상황에서는 큰 변화가 나타났다. 그 변화는 ‘동질화에서 이질화’로 요약되며, 그 효과는 ‘연대의 사회적 기반의 침식’이었다. 울산지역의 대기업 노조들은 단체교섭을 통한 임금인상 투쟁(임투)을 매개로 조합원의 전투적 동원 전략을 통해 계급형성을 이뤘다. 전투적 동원의 핵심 기제는 임금 극대화와 임금 평준화 목표가 결합된 노조 임금정책과 이에 대한 조합원의 높은 호응성이었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의 정치’는 전체 노동계급의 분절과 이질화 추세와 병행하는 것이었다. 대기업 노조운동의 성과는 노동자 연대의 강화로 연결되지 못했고 오히려 연대의 사회적 기반이 허물어지는 역설적 결과가 초래되었다. 1990년대 동안 울산지역의 산업노동자들은 전반적인 계급상황에서 동질적 계급으로 보기 힘들어질 만큼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장시간의 공장노동, 교환된 신분 상승과 생활의 안락함

계급적 연대보다 노동자 개인의 지위 상승을 위한 도구로


울산 대공장 노동자들의 계급상황에 큰 변화가 일어나면서, 그들의 생활세계도 크게 변형되었다. 임금소득의 상승, 가족임금의 성취, 소비구조의 고도화, 가정 중심성에 기반한 가족생활 양식의 확산 등과 같은 삶의 변형은 1세대 산업노동자의 생애과정에서 뚜렷한 신분 상승으로 경험되었고, 한국의 대기업 노동자 집단은 경제적 측면에서 풍요로운 노동자로서 ‘중산층화’되었다. 즉, 신분 상승과 생활의 안락함이 장시간의 공장노동과 교환되었지만, 정작 본인들은 그 노고의 대가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게 남성 노동자들의 삶이었다. 

이에 따라 노동자들의 사회적 정체성은 중산층화된 ‘생활세계’와 육체노동의 현실이 지배하는 ‘공장의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간극 속에서 규정되었다. 한편, 이 문화적 간극 속에서 남성 노동자들은 경제적 생계부양자 역할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인정받고자 한다. 즉 임금인상 위주의 노조운동이 남성 노동자들의 이러한 정체성을 집단적 방식으로 확인하고 재생산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또한, 이 문화적 간극은 ‘도구적 집단주의’의 행위 성향이 확대·재생산되는 조건으로 작용하였다. 즉, 노동자 특유의 집단주의가 계급적 연대보다는 노동자 개인의 지위 상승을 위한 도구로 활용되는 행위 성향이 대기업 노동자들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역사의 반복,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

'새로운 연대'를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2010년대에 들어와 노동의 분절은 더욱 심화되고 노동계급의 해체적 변형은 가속화되었다. 이 변화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 대기업 노동자들의 집단 정체성은 배타적인 모습으로 변화하였는데, 그것은 대기업 노조의 활동에서 연대 전략보다는 사회적 폐쇄 전략이 전면에 나서도록 하였다. 이 변형 과정의 중심에는 비정규 노동자에 대한 조직적 배제가 자리하고 있다. 

둘째,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노조의 임금정책에서도 일정한 변화가 나타났다. 2000년대에 노조의 임금 극대화 목표는 변동성과급의 비중 확대를 통해 달성되었다. 이것은 대기업 노조운동이 계급 내 연대보다는 기업 내에서의 계급 간 동맹을 우선시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셋째, 대기업 노동자의 집합행동 패턴에서는 저항 빈도의 전반적 감소, 저항 레퍼토리의 온건화, 연대적 집합행동의 쇠퇴, 파업행동의 의례화 현상이 관찰되었다. 최근 울산지역에서는 기존에 지역노동운동을 주도했던 대기업 노조의 집합행동은 쇠퇴하고 비정규직 등의 주변부 노동자들의 저항 활성화라는 새로운 양상이 출현하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아직은 조직적 자원의 결핍이라는 문제로 노동운동의 대안세력으로서 스스로를 구성해내지 못하고 있다.


계급 파편화냐 계급 재형성이냐의 갈림길


한국의 대기업 노동자들은 같은 계급 위치를 공유하는 노동자들과의 연대보다는 그들만의 배타적 이해를 좇아가는 분파적 경향이 커졌다. 즉 ‘도구적 집단주의’의 행위 성향의 지배, ‘조직의 분산성’과 ‘계급상황의 이질성’의 결합이 낳는 악순환 속에서 계급의 해체적 변형을 겪고 있는 것이다. 향후 한국의 노동자들이 계급 재형성과 계급 파편화의 경로 중 어떠한 길로 나아갈지는 현재의 해체적 변형 과정을 제어할 수 있는 ‘새로운 연대의 형식’을 창조해낼 수 있는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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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 밑줄긋기                                                

P.68

개별적 행위 지향은 민주화와 함께 일어난 노동자대투쟁을 계기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조국 근대화의 상징’으로서 탄생한 최초의 계획적 공업도시 울산은 1987년의 뜨거운 여름을 기점으로 ‘노동계급 형성의 대표적 장소’로 재탄생한 것이다. 노동자대투쟁은 울산 지역 노동계급 형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_2장 ‘현대시’ 울산의 탄생과 노동자 생활 중에서


p.138

1987년 이후 대공장 노조가 전투적 경제주의에 따라 추진한 ‘임금인상의 정치’는 그 자체로 성공적이었지만, 그 성공의 대가가 초(超)기업적 수준에서 임금연대 가능성의 약화였다는 점에서, 계급 연대의 사회적 기반은 훨씬 더 취약해진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_4장 내부노동시장의 구축과 임금인상의 정치 중에서


p.190

1990년대 중후반에 오면 이미 동일 산업의 노동자들 내부에서 ‘사회적 경계’가 뚜렷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노동계급 연대가 일차적으로 공통의 계급상황에서 연원하는 이해관계의 동질성에 기반한다고 할 때, 계급상황의 분절화는 그 자체로 계급 연대에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 계급상황의 이질화를 제어할 거의 유일한 조직적 수단은 노동조합의 정책이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울산의 경우 소수의 대공장 노조를 중심으로 지역노동운동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계급상황의 분화를 제어하거나 완화시킬 조직적 수단이 거의 없었다.

_5장 노동자 주택문제의 해결과 기업복지 중에서


p.247

일터에서 분출된 전투성과 집단주의적 문화와는 별개로, 노동자들의 삶터는 기업의 사회적 통제에 종속되거나 주택시장과 소비주의의 논리에 쉽게 동화되어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1987년 이후 울산의 산업노동자들은 ‘작업장과 지역사회의 문화적 분리’의 조건 속에서 계급형성의 과정을 밟았다고 볼 수 있다. 

_6장 대공장 노동자의 가족생활과 지역사회의 변화 중에서


P.339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가 사내하청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때는 2002년이었다. 이때 노조 집행부는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전면에 내건 선전활동을 했고, 이에 대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러나 친회사 성향의 대의원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비판이 격렬히 표출되면서 이후에는 선전활동이 줄어들었다. 또한 당시 노조 집행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노조에 포괄하기 위한 규약 변경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실제로 추진되지는 못했다. 이후 노사협조 성향의 집행부가 노조 권력을 장악하면서 연대 활동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_8장 내부의 타자, 사내하청 노동자 중에서


P.433

가장 주목되는 점은 오늘날 두 개의 구분되는 노동운동 세대가 병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1차 노동시장에 속한 제조업 대공장 중심의 ‘1987년 세대’ 노동운동과, 주로 2차 노동시장에서 출현한 비제조업·비정규직 중심의 ‘1998년 세대’의 노동운동이 그것이다. 그런데 30년의 시간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면, 집합행동의 빈도와 전투성의 측면에서 볼 때, 2000년대 중반 이후 울산에서 ‘1987년 세대’ 노동운동의 집합행동 빈도는 감소했거나 온건화·규격화된 반면에, ‘1998년 세대’ 노동운동이 집합행동의 장에서 그 중심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_9장 노동자 집합행동과 저항 레퍼토리: 30년의 궤적 중에서


P.439

현대적 공업도시로서 울산의 개발은 멀리 1930년대까지 소급할 수 있지만, 오늘날 금속산업 대공장 노동자의 구조적 계급형성은 권위주의 국가의 중화학공업화 정책과 더불어 나타난 1970년대 현

대그룹의 자본투자에서 본격화되었다. 이를 계기로 울산은 한국 최대의 중공업 도시로 성장했고, 1980년대 중반에 오면 자동차산업과 조선산업을 중심으로 수만 명의 남성 노동자들이 울산의 대공장에 가득 들어찼다. 바로 이들이 이 책의 연구대상인 대공장의 1세대 산업노동자들이다.

-10장 결론 중에서



저자 소개                                                          

유형근

부산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며 예비 사회과 교사를 가르치고 있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이화여대 연구교수, 한국산업노동학회 학술위원장, 비판사회학회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경제와 사회』와 『산업노동연구』 편집위원, 노동포럼 나무 운영위원, 부산노동권익센터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전공은 노동사회학이고 노동운동, 노사관계, 노동인권교육 분야를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와 노동운동 재활성화의 국제 비교, 소유권의 진화와 일터 민주주의의 역사 등에 관심을 두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금속산업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의 난관과 운동의 분화」, 「민주화 이후 노동자 저항의 궤적과 집합행동의 레퍼토리」, 「유로존 위기 이후 유럽의 ‘새로운 경제 거버넌스’와 노동시장 구조개혁」, 「청소년 노동인권교육의 실태와 평가」 등을 썼다. 우리말로 옮긴 책으로는 『유럽 노사관계의 신자유주의적 변형: 1970년대 이후의 궤적』이 있다. 



차례                                                              

머리말


1장 서론


1. 문제의식

2. 분석의 시각

3. 노동계급 형성의 이론

4. 분석의 전략과 주요 내용

5. 자료 소개


2장 ‘현대시’ 울산의 탄생과 노동자 생활


1. 공업도시 울산의 탄생

2. ‘현대에 의해 현대화된 현대시’

3. 1987년 이전의 현대그룹 노동자


3장 노동자대투쟁과 지역노동운동


1. 노동자대투쟁 이전의 미시동원의 네트워크

2. 울산 노동자대투쟁의 양상

3. 계급전쟁

4. 지역노동운동의 결정적 국면과 조직적 경계


4장 내부노동시장의 구축과 임금인상의 정치


1. 내부노동시장의 구축

2. 노동조합의 임금정책과 임금인상의 정치


5장 노동자 주택문제의 해결과 기업복지


1. ‘가족의 시간’과 ‘산업의 시간’

2. 노동자 주택문제의 해결

3. 기업복지의 확대와 ‘사적 복지국가’

4. 계급상황의 이질화: 연대적 집단주의의 기반 약화


6장 대공장 노동자의 가족생활과 지역사회의 변화


1. 육체노동자로서의 신분의식과 집단 정체성

2. 노동자 가족생활의 변형: 소비와 성별 분업

3. 지역사회의 공간성 변화와 계급형성


7장 풍요로운 노동자의 생활세계와 공장의 세계


1. 2000년대 이후 기업의 고도성장과 풍요로운 노동자

2. 외환위기 이후 노동조합 임금정책

3. 풍요로운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의 세계

4. 풍요로운 노동자의 생활세계


8장 내부의 타자, 사내하청 노동자


1. 연대에서 사회적 폐쇄로

2. 계급 연대의 좌초: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투쟁의 역사

3. 계급 연대는 왜 실패했는가?


9장 노동자 집합행동과 저항 레퍼토리: 30년의 궤적


1. 자료와 방법

2. 민주화 이후 울산 노동자 집합행동의 궤적

3. 노동운동의 분기와 새로운 집합행동 주체의 출현

4. 노동자 저항 레퍼토리의 분기

5. 주요 노동조합들의 집합행동의 레퍼토리 비교

6. 소결


10장 결론


1. 요약

2. 도구적 집단주의에 대하여

3. 비교와 전망: 노동계급의 재형성?


부록: 울산 지역 노동자 저항사건 코딩의 원칙과 도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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