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

류스페이 사상선집

류스페이 지음 | 도중만 옮김
쪽수
370쪽
판형
152*225
ISBN
978-89-6545-483-0 94080
978-89-6545-329-1(세트)
가격
32,000원
발행일
2017년 12월 29일
분류
중국근현대사상총서 007

책소개

산지니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일곱 번째 책 『류스페이 사상선집』 출간


이 책은 세계 정치와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가운데 중국 근현대 사상가들의 삶과 그들의 사상이 현대 중국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보고자 기획한 산지니의 중국근현대사상총서 일곱 번째 책이다. 그간 산지니는 2016년에 담사동의 『인학』, 량치차오의 『구유심영록』, 『신중국미래기』, 20세기 초 중국 사상계를 흔든 논쟁 『과학과 인생관』 등 4권을 동시 출간하였고, 2017년에는 격변의 시대에 지식의 힘을 강조한 장지동의 『권학편』, 중국오사운동의 총사령관이면서 중국공산당을 창당하고 초대 당총서기를 맡아 20세기 중국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천두슈의 『천두슈 사상선집』 등을 출간한 바 있다.


격동의 시대와 치열하게 맞선 젊은 사상가의 지적 유산


류스페이는 지금부터 꼭 100년 전에 중국에서 활동했던 저명한 국학자이자 사상가이다. 『류스페이 사상선집』은 류스페이가 중국 사상계의 신성으로 떠오른 1903년부터 1908년까지 발표한 논문 가운데 학술과 혁명에 관련된 20편을 뽑아서 우리말로 옮겨 묶은 책이다. 이 무렵의 류스페이는 반청혁명에 투신하고 배만민족주의를 거쳐 세계혁명을 외치는 아나키스트로서의 면모를 발휘했다. 이 과정에서 량치차오(梁啓超)와 ‘배만혁명의 정당성’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필전을 벌이기도 하였다.


중국의 근대 격동기, 세계혁명을 외치다


청소년기까지 고향 양주에서 전통적인 교육을 받으며 과거 시험을 준비하던 류스페이는 1903년 과거에 낙방한 뒤 상해에 들어가 반청혁명에 투신하였다. 류스페이는 혁명 강령으로 네 가지 사항을 주장했다. 첫째, 국가를 폐지하고 정부를 설립하지 않는다. 둘째, 국경과 인종의 경계를 제거한다. 셋째, ‘인류의 노동균등설[人類均力說]’을 실행함으로써 인류의 공통과 즐거움을 고르게 한다. 넷째 남녀 사이에 절대적인 평등을 실행한다. 류스페이는 무정부주의 혁명을 통하여 ‘인류의 완전한 평등과 최대 행복’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아시아의 약소민족은 대동단결하고, 서구의 사회주의자·아나키스트와 연대하여 ‘세계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외쳤다.


혁명시대의 독서종자(讀書種子)


중국 혁명원로이자 대(大)국학자로 추앙받던 장빙린(章炳麟, 1869~1936)은 혁명의 급박한 상황에서 중국 학계의 앞날과 류스페이의 안위를 걱정하며 ‘한 사람을 죽여보아야 중국에 무익하나 학문[文學]은 이로부터 소멸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장은 류를 명초의 숙유 방효유에 비견되는 ‘독서종자(讀書種子)’로 평가하며 호소한 덕분에 류스페이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오늘날 문화가 쇠퇴하고 학식이 높은 선비들이 사라졌으니 한둘에 불과한 통박한 인재인 류광한(劉光漢, 류스페이)과 같은 무리들이 비록 자잘한 하자가 있더라도 깊이 논죄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 만약 당파적 편견에 얽매여서 예전의 원수를 갚고자 한다면, 한 사람을 죽여 보아야 중국에 무익하나 학문[文學]은 이로부터 소멸될 것이다. (그 결과로) 중국이 오랑캐의 후예로 전락하게 된다면 누구의 책임이겠는가?_장빙린

드라마틱한 인생과 사상 전향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라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정말 맞는 것일까? 류스페이는 1908년 말에 혁명운동에 등을 돌리고 침몰하는 청 정부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다가 신해혁명이 터지자 혁명군에 사로잡힌 그는 장빙린의 구명활동으로 겨우 살아남아 5·4운동의 폭풍이 막 지나간 1919년 말 36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이 책의 번역을 맡은 도중만 목원대 교수는 류스페이의 생애와 학문이 은하계의 ‘신성(新星, nova)’을 닮았다고 설명한다. 갑자기 강렬한 빛을 뿜기 시작하여 환히 보이다가 시간이 흐르면 다시 흐려지는 별처럼,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전성기에 이루어진 류스페이의 지적 활동은 근대 중국의 사상계에 찬란한 신성처럼 빛났기 때문이다.


국내의 류스페이 연구


우리나라에서 류스페이의 학술과 사상을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는 30년 전쯤이다. 1988년 처음으로 조광수가 류스페이의 무정부주의 평등관을 소개하였고, 그 이후 본서를 번역한 도중만 교수 외에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연구는 넓고 깊어졌으나 류스페이의 논저를 직접 번역하여 소개한 책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류스페이의 저작이 이미 동아시아의 근대 경전으로 자리매김한 상황을 감안한다면 늦은 감이 있다. 여기에는 번역의 어려움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특히 악필로 유명한 류스페이 덕분에 저본 자체가 오탈자투성이인 것을 번역자 도중만 교수는 일일이 여러 저본을 대조하여 판독하고 교주 처리하였다. 류스페이의 사상 중에서도 핵심이라 할 수 있을 만한 것들만 가려 뽑은 이 책 『류스페이 사상선집』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20세기의 문턱에서 중국의 한 청년 지식인이 먼저 통찰했던 ‘지나간 미래’의 명암은 고된 번역 작업을 통해 온전히 우리 독자에게 되살려 줄 수 있게 되었다.



책속으로/밑줄긋기

p.48 지금 도의적으로 그런 평등을 달성하려면, 최선은 주인과 노복의 명칭을 없애고 세상의 빈곤층에게 전부 자유노동의 제도를 시행하여 사회에서 생존을 쟁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가령 과거 천민에 속하는 자들도 일반 백성과 일체화시켜 평등의 권리를 함께 누리게 한다면, 곧 계급제도는 소멸되어 없어지고 중국의 백성은 모두 자유라는 행복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이 어찌 좋지 않겠는가!


p.215 요약해 말하자면, 지금 보황(保皇)과 입헌을 주장하는 자들은 만주의 군주 세습을 보호하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제창하는 취지는 만주의 군주 세습을 폐지하는 데 있다. 지금 종족혁명만을 주장하는 자들은 만주 정부를 전복시키고 한족 정부로 대체하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가 제창하는 취지는 만주 정부를 전복시킨 뒤에 다시는 정부를 설립하지 않는 데 있다.


p.259 내가 아시아의 약소민족에게 바라는 사항이 아직 두 가지가 더 있다. 첫째는 동시에 독립하는 것이다. 둘째는 정부를 설립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혁명한 뒤에도 변함없이 정부를 설립한다면, 비록 공화정치 체제를 채택하더라도 프랑스와 미국의 전철을 밟는 것에 불과하다. 이는 폭정으로써 폭정을 교체하는 경우나 마찬가지이다.


p.297 오늘날의 상황에서 일체의 혁명은 모두 경제 혁명으로부터 일어나고, 경제 혁명은 다시 노동자 단체로부터 발생한다. 이는 필연적인 추세이다. 그러므로 우리 동지들은 중국에 대해 우선 노동자의 혁명을 바란다.



저자 소개

저자 류스페이(劉師培, 1884~1919)


근대 중국의 사상가. 청조가 망해가던 1884년에 학문의 중심지인 양주(揚州)의 유명한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약관인 1903년부터 적극적으로 반청혁명운동에 투신하여 날카로운 필치로 배만민족주의(排滿民族主義)를 고취하였다. 1905년에 혁명 진영의 젊은 지식인들과 국학보존회를 세우고 『국수학보(國粹學報)』를 펴내면서 일약 국수파의 이론적 대변자로 사상계에 두각을 드러냈다. 1907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하였다. 동시에 무정부주의에 경도되어 사회주의강습회를 열고 『천의(天義)』와 『형보(衡報)』를 창간하여 선전 매체로 삼았다. 또 아주화친회(亞洲和親會)를 결성하여 아시아 식민지의 독립지사들과 연대하였다. 이듬 해 갑자기 혁명운동에 등을 돌리고 귀국하여 침몰하는 청 정부에 몸을 실었다. 신해혁명 뒤에는 위안스카이 국민정부의 공부자의(公府諮議)가 되었다. 1915년에 위안의 제제운동(帝制運動)을 지지하며 주안회(籌安會)를 발기하고 이사직에 취임하였다. 1917년에 북경대학의 초빙을 받아 중국문학 교수로 부임하였다. 그 무렵 북경대학 교수들이 주도하는 신문화운동에 합류하지 못하고, 도리어 그 대척점에 섰다. 5·4 운동의 폭풍이 막 지나간 1919년 말에 지병인 폐병이 도져서 세상을 떠났다. 주요 저작으로 『양서(攘書)』, 『중국 민족지』, 『중국 중고문학사 강의』 및 「황제기년론(黃帝紀年論)」, 「중국의 계급제도를 논함」, 「무정부주의의 평등관」 등이 있다. 대부분의 논저는 『류선수선생유서(劉申叔先生遺書)』와 『류선수유서보유(劉申叔遺書補遺)』에 수록되었다.


역자 도중만


대전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대만사범대학 역사연구소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북경대학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의 상임연구원을 지낸 뒤, 현재 목원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번역서로 『중국의 전족(纏足) 이야기』(공역)를 출간하였다. 논문은 주로 중국 사상 전통의 근대적 변모에 관련한 「국수와 서학」, 「학전(學戰)·번역과 계몽」, 「역사·언어와 혁명」 등을 발표하였다.



차례

01 황제기년론 7
02 과격의 장점을 논함 13
03 백화보와 중국 장래의 관계를 논함 20
04 공자교가 중국 정치와 관련이 없음을 논함 29
05 중국의 계급제도를 논함 38
06 공자전 49
07 중국 혁명가 진섭전 72
08 군비와 재산 폐지론 96
09 전호를 슬퍼하는 글 108
10 청정부가 대내외 양쪽으로 실패할 처지에 놓여 있음을 논함 146
11 인류의 노동 균등설 150
12 무정부주의의 평등관 167
13 종족 혁명과 무정부주의 혁명의 득실을 논함 201
14 아시아 현재 정세론 231
15 크로포트킨의 학술 약론 267
16 『공산당 선언』 서문 285
17 공산제는 중국에 시행하기 쉬움을 논함 289
18 중국은 노동자 협회를 조직해야 마땅하다는 것을 논함 296
19 형서 세 편 318
20 중국 문자가 세계에 이로움이 있다는 것을 논함 339

해제 - 도중만 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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