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

마닐라 갤리온 무역

서성철 지음
쪽수
304쪽
판형
152*225
ISBN
978-89-6545-427-4 93900
가격
25,000원
발행일
2017년 6월 30일
분류
교류/관계사

책소개

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 스물일곱 번째 작품 『마닐라 갤리온 무역』 출간!
마닐라와 아카풀코에 서서 세계무역의 철장을 읽는다


중남미지역원 학술총서 스물일곱 번째 작품 『마닐라 갤리온 무역』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세계무역의 시작이자 자본주의 경제의 이정표를 세운 마닐라 갤리온 무역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16세기에서 19세기 초까지, 약 250년간에 걸쳐 진행되었던 마닐라 갤리온 무역은 중국의 비단과 아메리카의 은을 매개로 멕시코의 아카풀코와 필리핀의 마닐라 사이에 이루어진 무역이다. 스페인 왕실이 직접 주도한 이 무역은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의 끊어진 고리를 연결하면서 세계일주의 무역 루트를 완성했는데, 이런 점에서 마닐라 갤리온 무역은 요즈음 흔히 말하는 세계화나 세계무역의 통합을 이미 실천한 선구자적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3개 대륙이 만나는 문명의 교류


갤리온 무역은 단순히 상업적인 행위라기보다는 3개 대륙 또는 더 나아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일어난 문화나 문명의 교류였고, 이를 통해 당사자들은 많은 영향을 서로 주고받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마닐라 갤리온 무역을 상품 교환이라는 개별적인 차원에 국한하지 않고 당시 세계경제의 축을 이루었던 스페인으로 대변되는 유럽, 멕시코로 대변되는 아메리카 그리고 중국으로 대변되는 아시아가 하나로 만난 거대한 문명사적 흐름으로 파악하면서, 이 세 대륙의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 상호관계를 갤리온 무역이라는 주제를 통해서 총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갤리온이란?


갤리온 선은 16세기 후반에서 18세기 무렵까지 전 세계 대양을 무대로 활약했던 범선이다. 스페인어로 갈레온(Galeón), 영어로는 갤리온(Galleon)으로 불렸던 이 배는 대항해시대 전반에 걸쳐 원거리 항해가 가능했던 캐럭(Carrack)에서 발전한 형태로서, 캐럭보다 속도도 한층 빨랐으며 포격전에 유리했다. 예를 들어 스페인의 유명한 산 마르틴(San Martín) 호는 1,000톤급의 대형 배로서 승무원 600명에 50문 가량의 대포를 탑재하고 있었다. 마닐라 갤리온 무역에 사용된 배는 대부분 필리핀에서 건조되었는데, 마닐라의 스페인 총독부는 목재가 많이 나는 캄보디아나 시암(태국)에 배의 건조를 발주하기도 하였다.


마닐라 갤리온 무역과 마닐라 시스템


필리핀의 마닐라와 멕시코의 아카풀코 사이를 왕복한 이 무역선은 해류와 무역풍을 이용하기 위하여 매년 7월에 마닐라에서 출항하여 12월 또는 이듬해 2월까지 아카풀코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6월 전까지 아카풀코를 떠나 7월 말까지 마닐라에 귀환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마닐라에서 출발할 때는 중국산 도자기나 비단이 주요 상품이었고, 그 외에도 몰루카의 향료, 인도의 면화, 캄보디아의 상아 등 온갖 사치품들이 스페인인 귀족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었다. 한편 멕시코에서 고구마, 카카오 등이 아시아로 건너와 아시아 및 유럽의 음식문화를 변화시켰다.

당시 필리핀의 마닐라는 그 지리적 위치로 인하여 스페인이 도래하기 훨씬 전부터 중국, 일본 등 인접 아시아 국가들과 교역을 했는데, 이는 중국의 정크 선, 일본의 주인선(朱印船), 스페인의 갤리온 선이 무역을 통해서 하나로 만나는 마닐라 시스템을 만들어냈다.(74쪽 참조)


열강들의 태평양 시대, 조선은 어디에 있었는가?


중국과 일본은 일찌감치 이 무역의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자국의 이익을 꾀하였다. 명나라에 들어서면서 중국 내부의 정세가 안정되고, 도자기와 비단 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필리핀을 통해 아메리카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간 중국 제품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일본은 이미 1582년에 구라파소년사절단을 유럽으로 보내 접촉을 시도했으며 에도 막부 시대에는 마닐라에 지속적으로 무역선을 보내 동아시아 해역에서 활발한 무역을 전개하였다.

저자는 이와 같은 열강들의 태평양 시대를 다루며, 한편으로는 나라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꼼짝도 하지 않았던 조선이 설 자리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반문한다. 저자의 물음은 우리로 하여금 격동하는 세계무역의 거대한 흐름 속에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는지, 나아가 미래의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갤리온 선의 조난과 해적


갤리온 선은 250년 동안 마닐라와 아카풀코를 총 400회 운행했는데, 그중에 난파 사고는 59건, 조난이나 표류는 35건이었다. 가장 큰 사고의 원인은 과적이었는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갤리온 무역의 엄청난 이득을 노리고 너도나도 투자를 했으며 심지어 여성들은 보석을 팔아서까지 이 무역에 투자했다. 그리하여 아카풀코로 떠나는 마닐라 갤리온 선은 늘 허가된 양보다 더 많은 화물을 적재했으며, 1608년에 산 프란시스코 호가 침몰하면서 400명이 목숨을 잃는 등 사고가 적지 않았다.

갤리온 무역에서 또 하나의 위험요소는 바로 해적이었다. 1587년 영국 해적 토마스 카벤디쉬(Thomas Cavendish)에 의해서 최초로 산타 아나 호가 나포된 이후 3척의 배가 더 영국 해적의 표적이 되었다. 당시 열강의 지위를 놓고 스페인과 주도권을 다투던 영국 왕실은 전략적으로 해적이 지휘하는 원정대를 조직하였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 해적질을 통해서 많은 부를 거머쥐기도 하였다.


갤리온 무역의 종말


1815년 4월 23일, 페르난도 7세는 갤리온 무역의 폐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그리고 같은 해 마젤란 호가 아카풀코를 떠나 마닐라로 귀환하면서 약 250년간 지속된 갤리온 무역은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변화이다. 주 교역품이었던 은의 가치가 하락하고, 희망봉을 돌아 마닐라와 세비야 사이를 직접 운행하는 항로가 개척되면서 스페인의 독점무역 시스템은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산업혁명 단계에 진입한 영국의 경제력이 급격히 상승하고 멕시코가 독립하는 등 여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지형의 변화로 인해 스페인 왕실은 더 이상 갤리온 무역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가 없게 되었다.


갤리온 무역의 자취를 따라 열리는 태평양의 실크로드


태평양을 횡단하여 이루어진 마닐라 갤리온 무역은 유럽과 아메리카, 나아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까지 연결하며 전 세계적인 무역 루트를 완성한다. 태평양에 그려진 이 거대한 실크로드는 당시 이미 세계화의 시작이었으며 세계무역의 통합을 이끈 선구자적인 흐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세계무역의 격전지였던 마닐라와 더 나아가 전 세계를 향해 이어진 태평양 실크로드에 얽힌 역사를 풀어내고 있다. 이 책은 갤리온 무역에 대해 다각적이고 총체적인 시선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상업적 교류는 물론 다양한 문물 및 인적 교류까지 이루어졌던 태평양 실크로드. 그 역사를 재구성한 『마닐라 갤리온 무역』은 과거의 거대했던 세계무역사의 격동 속에 들어가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책속으로 & 밑줄긋기

p.31 1568년에는 두 갤리온 선이 아카풀코를 떠나 필리핀에 도착하면서 비단과 은을 가득 실은 갤리온 선들이 태평양을 횡단하며 갤리온 무역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한 장이 열리게 되었다.


p.51 중국배들이 가지고 온 아시아 산물로서는 중국으로부터 직물 및 비단(양말 및 손수건), 침대 시트 및 테이블보, 중동의 산물로서는 페르시아 양탄자, 인도의 산물로서는 면 조각, 일본의 산물로서는 부채, 옷장, 함 및 궤, 옻칠한 보석상자, 빗, 방울, 병풍, 문방구, 도자기 등이 있었고 몰루카, 자바 및 실론의 향신료(정향, 후추, 계피)가 있었다.


p.119 이렇게 중국에서 은은 중요한 가치를 지녔고, 스페인 제국은 은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은을 매개로 한 스페인과 중국의 무역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중국과 스페인 간 은 가치의 엄청난 차이는 스페인과 중국의 무역을 확대시킨 주요인이었다.


p.193 이렇게 아시아와 아메리카 간에 인적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아시아의 전통이나 관습도 자연스럽게 아메리카에 전해졌다. 투계(鬪鷄)는 마닐라에서 아카풀코로 들어오면서 곧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해졌다.


p.238 페루의 포토시 광산에서 생산된 은과 멕시코에서 생산된 상품의 무역을 통해서 페루 부왕령과 멕시코 부왕령은 상업적인 면에서 서로 자극을 받았다. 1570년부터 두 부왕령은 동양과의 무역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아시아 제품이 필리핀으로 들어왔고 거기서 마닐라 갤리온 선을 타고 다시 아카풀코로 이동되었다.


p.274 결론적으로 원자재를 공급하는 중심지로서의 아메리카 대륙과 이제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쇠퇴하고 있었던 동양이 접촉할 필요성도 점점 더 적어지고, 멕시코를 통한 교역도 더 이상 불필요해진 상황에서 갤리온 무역이 사라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저자 소개

서성철


한국외국어대학교 스페인어과를 졸업하고 멕시코 국립대학교에서 석박사(문학)를 취득하였다. 이후,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을 거쳐 주아르헨티나, 스페인 한국대사관에서 문화 담당 외교관으로 근무하였다. 『라틴아메리카의 문학과 사회』(공저), 『여러 겹의 시간을 만나다』(공저)를 저술하였고,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신대륙과 케케묵은 텍스트들』, 『초콜릿: 신들의 열매』, 고은의 시선집 『불타는 샘』(Fuente en Llamas), 『순간의 꽃』(Flores de unmomento) 등을 번역하였다. 그동안 중남미 문학, 역사 및 문화, 그리고 한인이민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썼으며, 현재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 HK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머리말


1. 태평양 횡단과 무역 루트의 발견
2. 갤리온 무역
3. 갤리온 무역을 담당한 사람들
4. 갤리온 선
5. 필리핀 정복과 식민
6. 중국과 갤리온 무역
7. 중국과 멕시코의 무역
8. 스페인의 중국 침공 계획과 좌절
9. 은의 수요와 공급 : 중국과 아메리카
10. 포토시 은광과 이와미 은광
11. 일본과 스페인의 교류
12. 일본의 해외진출과 무역
13. 갤리온 무역과 문화의 교류
14. 항해와 사고
15. 갤리온 선과 영국 해적
16. 페루의 갤리온 무역
17. 무역의 규제
18. 갤리온 무역의 쇠퇴와 종말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