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

신중국미래기

량치차오 지음 | 이종민 옮김
쪽수
208쪽
판형
152*225
ISBN
978-89-6545-335-2 94820
978-89-6545-329-1(세트)
가격
18000원
발행일
2016년 02월 01일
분류
중국근현대사상총서 004

책소개

새로운 중국을 꿈꿨던 량치차오의 미완의 정치소설

시진핑 시대에 들어선 중국은 경제 발전의 가속화를 바탕으로 중화민족의 부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더불어 이를 추구하는 문명화된 법치국가를 구현하는 의법치국(依法治國)의 아젠다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 빠른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새로이 도약하고, 그동안 잃어버린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은 ‘국가의 부강과 민족의 부흥 그리고 인민의 행복’을 완성하는 과제 앞에 서 있다.
『신중국미래기』는 근대 문명국가 건설의 꿈을 입헌운동과 연결 짓기 시작한 만청시기의 대표적인 인물인 량치차오의 미완의 정치소설이다. 서언과 5회의 소설로 구성되어 미래 신중국에 대한 구상과 당시 중국 현실에 대한 고뇌가 담겨 있다.
당대 중국의 개혁방향이 량치차오가 추구한 중국몽과 역사적 연계성을 지니게 되면서 최근 량치차오에 대한 관심이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신중국미래기』는 량치차오의 중국몽을 살펴보기 좋은 텍스트가 될 것이다.


량치차오가 말하는 신중국의 미래와 G2로 성장한 오늘날의 중국

『신중국미래기』는 서기 1962년 유신(입헌국가 건립) 50주년 대축제를 거행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공자의 후손인 쿵훙다오가 신중국의 현재에서 유신운동에 투신한 지난 60년 전의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여러분, 여러분, 오늘은 모두가 나라 사랑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강연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제가 아무 이유 없이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 게 아닙니다. 60년 전에 오늘 같은 날이 있을 줄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오늘은 무슨 날인가? 또 오늘 같은 날을 감히 바랄 수 있었겠습니까? 오늘은 무슨 날인가? 우리가 오늘날 이만한 국력을 가지고 이만한 영광을 누리게 된 데에는 반드시 감사드려야 할 세 가지 일이 있습니다. 첫째, 외국의 침략과 압박이 극심해지자 인민의 애국심이 깨어난 일입니다. 둘째, 민간 애국지사들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백절불굴의 의지로 마침내 대업을 이루어낸 일입니다. 셋째, 예전의 영명하신 황제께서 시대의 흐름을 통찰하여 각종 논란을 물리치고 권력을 인민에게 돌려준 일입니다. 이 세 가지 일이 바로 제가 이야기할 60년사의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18쪽)

쿵훙다오는 소설의 제2화부터 직접 화자로 등장해 상하이 박람회 학술강연회에서 ‘중국근육십년사’라는 강연을 하는데, 량치차오는 이를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새로운 중국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는 국가비전의 면에서 볼 때 최근 G2로 성장한 오늘날 중국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하지만 소설 속 신중국 건설 과정과 실제 역사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중국이 세계대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다. 량치차오는 점진적인 정치개혁을 통해 입헌공화국으로 발전하는 길을 상상했지만 현재 중국은 신해혁명을 통해 중화민국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했다. 또한 세계대국으로 가는 과정에도 개혁개방을 통한 경제발전이 주요 동력으로 작용했다. 즉, 개혁이 아니라 혁명으로 주권국가을 건설했고, 정치발전이 아니라 경제발전을 통해 세계대국으로 부흥한 것이다.
‘인학’은 실상 ‘인’과 ‘학’의 단순한 결합이 아니다. 차라리 ‘인의 학’으로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다. 중국의 중체서용, 일본의 화혼양재나 조선의 동도서기처럼 ‘인학’이 그저 ‘인’과 ‘학’의 결합일 뿐이라면 수동성의 굴레, 곧 ‘어쩔 수 없는 현실’주의에서 담사동도 벗어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인의 학’으로 ‘인학’을 이해하는 것이 담사동이 생각한 능동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라고 힘껏 말하고자 한다. 적어도 담사동의 생각을 변증법이라고 여길 때이다. (283~284쪽)


두 선구자의 설전으로 들여다보는 신중국의 미래와 주석을 통해 이어지는 텍스트의 내면적 긴장관계


제2화 마지막 부분에서 쿵훙다오는 사람이 살 만하지 못한 세상이었던 중국을 미래의 신중국으로 재창조한 공로를 헌정당에 부여하며 이 당을 창립한 인물인 황커챵에 대해 언급한다. 제3화부터 등장하는 황커챵이란 인물은 리취삥과 함께 같은 스승에게서 전통학문을 배우고 유럽으로 유학하며 신학문을 배운 시대의 선구자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비슷한 성장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정치 사상적인 측면에서 서로 다른 입장을 나타내는 황커챵과 리취삥의 설전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황커챵은 입헌군주제를 추구한 개량파의 입장을, 리취삥은 만주족 정부를 부정하며 민주공화제를 추구한 혁명파의 입장을 대변한다. 그들 사이의 쟁점은 표면적으로 볼 때 개량파와 혁명파의 실제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이러한 입장 차이는 만주족 왕조, 중국인의 자치능력, 개혁방법, 외국의 중국 분할 등의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황 군이 말했습니다. “일을 논할 때는 항상 여러 방면에서 생각을 해야 한다. 프랑스 혁명 때 롤랑부인 당에 어찌 인자하고 의로운 사람이 없었겠느냐? 못된 난민을 막지 못하여 그러한 결말에 이르게 되었을 뿐이다. 아우는 현재 중국인의 인격 가운데 어떤 부류가 많다고 보느냐?”
리 군이 말했습니다. “형, 중국인에게 자치능력이 없다는 말에는 그렇게 동감할 수 없습니다. 중국 지방자치의 역사도 발달했다고 볼 수 있죠. 각성, 향촌, 시, 진 등 어느 곳에도 공소, 향약, 사학, 단련국(團練局) 등 각종 이름의 단체 대표가 있었으니까요. 해외의 화상들의 경우에도 많은 회관이 있는데 이것이 모두 자치제도가 아니겠습니까?” (80쪽)

이종민 교수는 해제를 통해 “두 사람의 논쟁이 지니고 있는 서사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그것이 실제 개량파/혁명파 논리의 요약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허구적 형식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두 사람의 차이를 량치차오 내면의 두 가지 경향을 반영하는 긴장관계로 이해한다면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텍스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전한다.
또한 이 책에서 눈에 띄는 점은 텍스트의 내면적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장치로 사용된 주석이다. 이 주석은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를 회고하고 있는 쿵훙다오의 서사를, 현재의 시점에 있는 또 다른 화자가 출현하여 그의 미래 예언에 대해 현재의 입장에서 짤막한 비평과 감상을 드러낸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쿵훙다오가 미래 이상세계의 입장에서 현재를 회고한 것이라면, 주석은 미래의 환상에 빠지지 않도록 쿵훙다오의 회고가 지닌 현실 비판성을 환기시키거나 현재와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작용을 한다.


미완으로 남겨둔 중국의 미래

이어지는 제4회, 제5회는 개량파의 논리와 혁명파의 논리를 추궁하는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신중국미래기』는 황커챵과 리취삥이 광둥으로 가기 전 경유한 홍콩에서 외국 선원이 중국인을 때리는 것을 보고 분노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다만 화자의 “여기서 ‘푸른 눈의 외국인이 우리 법률가를 알게 되고 백면서생이 비밀결사에 투신한다’는 이야기로 나누어진다.”는 말을 통해 미래의 암시만을 남긴다. 5회의 짧은 소설로 끝을 맺는 『신중국미래기』는 개량과 혁명 혹은 황커챵과 리취삥의 내면적 긴장관계를 통해 량치차오가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신해혁명 이후 중국에서는 민주 공화혁명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입헌의 주체에 대한 자각이 일어났다. 입헌을 통한 부강한 국가를 건설하려는 목표는 당시 개혁가들의 공통된 욕망이었고, 이는 민주 공화세력이 입헌의 주체가 되어야 민주공화국 건설이 가능하다는 정치적 각성의 표출이었다. 오늘날 중국은 『신중국미래기』의 주인공들이 꿈꿨던 독립된 자치국가의 모습을 완성하였다. 이제 남겨진 문제는 부국강병의 수단을 넘어 ‘권력분립, 권력통제, 기본권보장’이라는 법치 본래의 과제를 실현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앞으로 중국이 써내려가는 새로운 미래가 근대 문명국가 건설을 꿈꿨던 량치차오의 미완의 이야기를 완성하지 않을까.

 

저자소개

저자: 량치차오

자는 주어루(卓如), 호는 런공(任公), 별호로는 아이스커(愛時客), 인빙(飮氷), 인빙스주인(飮氷室主人) 등이 있다. 1873년 광둥(廣東) 신후이(新會)에서 태어나, 6세 때 사서오경을 떼고 12살에 수재, 17세에 거인(擧人)이 되었다. 1890년 광저우(廣州) 만목초당(萬木草堂)에서 캉유웨이로부터 경세치용(經世致用)과 변법(變法) 이론을 공부했다. 1895년 베이징 회시(會試)에 캉유웨이와 함께 참가해 “공거상서(公車上書)”를 올렸으며, 이를 계기로 변법유신운동에 뛰어들었다. 변법운동 기간 중에 『시무보(時務報)』를 발간하고 「변법통의(變法通義)」를 발표하였으며 『서정총서(西政叢書)』를 편집했다. 무술변법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캉유웨이와 보황회(保皇會)를 조직해 입헌군주제를 주장하고 혁명파에 반대하는 한편, 『청의보(淸議報)』, 『신민총보(新民叢報)』, 『신소설(新小說)』등의 잡지를 펴내는 등 활발한 계몽활동을 하였다. 신해혁명(辛亥革命) 후에는 위엔스카이(袁世凱) 국민정부에서 사법총장을, 돤치루이(段祺瑞) 정부에서 재정총장을 역임하는 등 정치활동을 하였다. 1920년, 1년간 유럽 시찰을 마치고 돌아와 『구유심영록(歐遊心影錄)』,『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 『선진정치사상사(先秦政治思想史)』 등을 저술하고 칭화대학과 난카이대학(南開大學)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등 학술활동에 매진하다 1929년 1월 베이징에서 신장병으로 사망했다.
주요 저작으로 『신민설(新民設)』, 『중국 학술 사상의 변천을 논함(論中國學術思想變遷之大勢)』, 『중국문화사(中國文化史)』, 『중국역사연구법(中國歷史硏究法)』 등이 있으며, 대부분의 저작은 『인빙스합집(飮氷室合集)』에 실려 있다.


역자: 이종민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한밭대학교 중국어과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는 경성대학교 중국학과 교수, 글로벌차이나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5년 베이징대 중문과에서 고급진수 과정을 수료하였고, 2001년에는 베이징수도사범대학 교환교수, 2009년에는 홍콩 링난대학 방문학자를 역임하였다. 2003년 중국전문잡지 『중국의 창』을 창간하여 편집인으로 활동했으며, 중국현대문학학회와 현대중국학회 이사를 맡고 있다. 주된 연구 관심은 중국 근현대 사회사상과 문화 분야이며 아울러 복지사회주의의 관점에서 21세기 중국의 길과 그 전망에 대해 비평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로 『흩어진 모래』,『글로벌 차이나』, 『근대 중국의 문학적 사유 읽기』, 등이 있고, 번역서로 『진화와 윤리』, 『중국소설의 근대적 전환』, 『천연론』(공역) 등이 있으며, 시집으로 『눈사람의 품』을 출간하였다.


 

차례

서언


제1회 설자
제2회 쿵췌민(孔覺民)이 근대사를 강연하고 황이보(黃毅伯)가 헌정당을 조직하다.
제3회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세계를 두루 유학하며, 두 명사가 시국에 관해 설전을 벌이다
제4회 뤼순에서 피아노 치는 명사와 만나고, 북방 변경에서 미인이 시를 쓰고 멀리 유학을 가다
제5회 분상(奔喪) 가는 배 기다리며 괴이한 현상을 목도하고, 사회의 병폐 개선할 적합한 방법을 논의하다


해제- 량치차오의 중국몽과『신중국미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