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개정판)

신동명, 최상원, 김영동 지음
쪽수
224쪽
판형
167*247
ISBN
978-89-6545-719-0 03910
가격
25,000원
발행일
2021년 5월 3일
분류
조선사

책소개

31개의 왜성을 통해
420여 년 전 역사 속 그날을 깨워본다


역사상에는 기쁨의 역사와 슬픔의 역사가 공존한다. 희비(喜悲)의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현재의 역사가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도려낸 단정의 역사, 망각의 역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되므로 희망의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왜성은 임진왜란이라는 420여 년 전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블랙박스다. 부산을 중심으로 울산에서 전남 여수까지 한반도 동남해안 일대에 분포해 있으며 이제는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일본 고유 양식 성곽의 원형이 남아 있다. 문화적, 역사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왜성은 임진왜란의 침략을 대변하는 유적으로 인식돼 홀대를 받아왔다. 이에 『역사의 블랙박스, 왜성 재발견』은 31개의 왜성 전체를 취재하여, 임진왜란을 현대적 시각에서 재해석했다.


책에서만 볼 수 있는 420여 년 전의 임진왜란, 왜성을 통해 역사가 되어버린 그날의 기억을 깨워본다.


왜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왜성, 어디까지 알고 있니?

 

조선에 침략한 직후부터 부산에 전진기지 구실을 할 성을 쌓기 시작했던 왜군은 1593년 남쪽으로 후퇴한 이후 명나라와 강화교섭을 진행하면서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해안에 집중적으로 성을 쌓았다. 1597년 강화교섭이 결렬되자, 왜군은 정유재란을 일으켰고 전라도와 충청도를 확보하기 위해 울산, 경남, 전남 등에 추가로 성을 쌓았다. _ '들어가며' 중에서 (p.13)

임진왜란 7년 동안 왜군은 울산에서 전남 순천까지 동남해안 일대에 성을 쌓았다. 현재 행정구역으로 왜성은 부산 11개, 울산 2개, 경남 17개, 전남 1개 등 모두 31개이다. 왜군이 임진왜란 때 조선에 설치한 군사시설은 훨씬 많지만, 관련 학계가 성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 31개의 성이 전부이다.


‘왜성’이라는 명칭은 왜군이 쌓은 성이라 하여 명명된 것으로, 대부분 강이나 바다 근처의 사방을 내려다볼 수 있는 독립된 구릉에 자리 잡고 있다. 왜성은 조선의 읍성과는 달리 겹겹이 둘러친 성곽을 바깥에서부터 하나씩 차례로 뚫어야 하는 구조로, 방어하기에 좋은 성이다. 실제로 임진왜란 동안 조·명 연합군에 의해 점령된 왜성은 하나도 없었다.


이런 왜성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왜성은 존재 자체가 생소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정적 인식을 주기도 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만든 성이기 때문에 우리 민족 치욕의 상징물이 인지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군이 왜 왜성을 쌓았는지 그 역사적 사실에 다가가면 그 인식은 바뀌게 된다.

 

1592년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이듬해부터 남해안에 집중적으로 성을 쌓은 것은 성에 의지해 조·명 연합군의 공격 등에 최대한 버티다가 여의치 않으면 바닷길을 통해 일본으로 안전하게 철수하려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왜성은 치욕의 상징물이 아니라, 임진왜란이라는 절체절명의 국난을 극복한 우리 조상이 자손들에게 당당히 물려준 전리품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p.14)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이자 국난을 극복한 조상들의 당당한 전리품, 왜성. 이제 왜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거두고, 새로운 역사 인식의 주춧돌을 놓을 필요가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아픈 역사에 대한 외면이 왜성을 사라지게 만들어…

왜성은 16세기 말 조선 전역에서 벌어진 임진왜란이라는 한·중·일 동북아 3국간의 7년 국제전이 남긴 특수한 산물이다. 실제로 임진왜란 첫 전투인 부산진성 전투에서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 이르기까지 모두 왜성을 통해 현장을 확인할 수 있고, 그 당시 상황을 돌이켜 볼 수 있다.


하지만 20세기 초 일제강점기를 겪은 국민들 사이엔 왜성을 ‘조선이 침략해 쌓은 부끄러운 역사의 상징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 삶의 터전 가까이에 있는 왜성을 방치하게 했고 세월이 지남에 따라 왜성이라는 존재조차 잊게 했다. 즉, 아픈 역사에 대한 외면이 사람들에게 왜성의 존재를 지우게 한 것이다.

 

박문구왜성은 용두산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용미산에 있었다고 하는데, 부산항 매립 등 개발 바람에 휘말려 현재 용미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다. (…) 추목도왜성과 박문구왜성의 위치는 여전히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개발 등에 휘말려 왜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들어선 건물 때문에 왜성 터로 추정되는 땅을 파헤쳐 조사할 수도 없다. 그렇게 왜성은 우리 곁에서 사라지고 있다. _ P.29

부산 박문구왜성 외 몇몇 왜성들은 관공서 건물과 지하철 기지창 건설 등 개발 바람에 휘말려 문화재 조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학계와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 개발과 맞물려 왜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왜성은 지정문화재에서 해제되어 우리 역사에 있어 미아가 될 뻔한 적이 있으며, ‘허물어버리자’는 극단적인 주장이 일 때도 있었다. 다행히 현재는 지방기념물로서 타 문화재와 동등하게 보호받고 있으나 아직 학계와 언론의 무관심, 일반인들의 부정적 인식은 여전하다.

 

왜성을 통해 우리 역사의 아픈 과거를 현대적 시각으로 재해석하다


2005년 4월 부산 동래구 수안동 부산도시철도 4호선 수안역 건설현장에서 소동이 벌어졌다. 조선시대 동래읍성 주위에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곽 방어시설 ‘해자(垓字)’가 발견된 것이다. (…) 이렇듯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끝까지 저항하다 스러져간 조선 백성들의 주검이 동래읍성 해자에 아무렇게나 던져졌다. 우리 역사에서 잊혀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조선 백성들이 420여 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_ p.33~34


부산도시철도 수안역 공사현장에서 나온 81명의 유골, 성벽돌 없이 윤곽만 남아 있는 옛 동래읍성과 동래왜성, 그리고 전쟁 이후 쌓은 새 동래읍성 등은 임진왜란이라는 우리 역사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증거물이자, 동시에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을 극복하고 이어져 오는 한국사의 증거물인 것이다. 더불어 일반인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왜성은 우리네 삶 속에서 자연스레 익힐 수 있는 역사 교육의 훌륭한 교재가 되기도 하고, 나아가 국제적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도 크다.


 왜성은 16세기 한·일 관계사의 규명되지 않은 역사적 비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게다가 왜성은 일반인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다. 이에 우리 가까이에 있는 왜성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_ ‘책을 펴내며’ 중에서 (P.5)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왜성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것에 대해 저자는 “우리의 입장에서 왜성을 새롭게 조명해보고 싶었다”고 전한다. 더불어 “ 편견의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역사 인식의 시작”이라고 덧붙였다. 한반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왜성은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이다. 우리 역사의 증거물인 왜성을 통해 선조들이 처한 당시의 상황을 재조명하고 반성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지은이 소개

신동명


1989년 3월 1일 한겨레신문사에 수습공채 2기 지역기자로 입사해 28년째 부산과 울산에서 취재활동을 하고 있다. 초기에는 1990년 4월 울산 현대중공업 노동조합의 ‘골리앗 파업’을 비롯해 주로 울산지역 노동운동과 진보적인 시민사회단체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최근 들어 산과 자연, 우리 역사와 그 흔적을 찾아보는 일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고 있다. 이런 관심과 흥미의 대상과 관련한 글을 써서 책을 펴내는 게 꿈이다.

 

최상원


1993년 지역신문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뎌, 2000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기자생활을 하며 대학원에서 언론사를 공부해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함께 하고 있다. 20여 년간 이것저것 부닥치는 것을 가리지 않고 취재했으나, 기자로서 남은 기간은 평생을 투자할 한 분야에 집중하기를 원하며, 현재 그 분야를 찾고 있다. <왜성 재발견>도 집중할 분야를 찾는 과정에서 관심을 갖고 기획하게 됐다.

 

김영동


<한겨레> 지역에디터석 영남팀 부산지역 기자. 1977년생으로 부산대 사법학과를 졸업했다. 빈둥거리기를 좋아하고, 방바닥과 가장 친하다.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기자를 꿈꿨다. 운 좋게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가 눈물을 많이 흘렸다. 치열하고, 힘들고, 일거리가 끝없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항상 내일을 고민하고 걱정한다.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의 역사 지식으로 ‘왜성’ 취재를 했다가 ‘조선왕조실록’까지 공부하게 됐다.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은데, 책까지 출판하게 돼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현장을 직접 발로 뛰고 몸으로 취재한 만큼 성취감도 크다. 생애 첫 책을 만들었기에 정말 감격하고 있다. 평생 자랑하고 다닐 듯하다.

 

 

차례 

책을 펴내며

추천사
들어가며


1. 왜군, 부산에 왜성을 쌓다 - 부산 증산·자성대·박문구·추목도 왜성
2. 동래읍성의 아픔을 420년 만에 발굴하다 - 부산 동래왜성
3.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었다 - 부산 기장 죽성리·임랑포 왜성
4. 한반도 분단 위기 막았던 ‘서생포회담’ 현장 - 울산 서생포왜성
5. 왜구 막아냈던 ‘신라 의성’에 왜성이 들어서다 - 부산 구포·양산·호포 왜성
6. 낙동강 물길을 장악하다 - 낙동강변 죽도·농소·마사 왜성
7. 왜군, 진해에 수군기지를 건설하다 - 진해 웅천·안골·명도·자마 왜성
8. 가덕도를 점령해 남해안 바닷길을 확보하다 - 부산 가덕왜성과 지성
9. 조선 수군에게 한부로 싸움을 걸지 말라 - 거제 영등포·송진포·장문포·견내량 왜성
10. 조선 수군, 남해 바다를 빼앗기다 - 마산·고성·남해 왜성
11. 왜장 가토, 우물 없는 ‘철옹성’에 갇히다 - 울산왜성
12. 조·명 연합군,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다 - 사천왜성과 진주 망진왜성
13. 임진왜란 7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 - 순천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