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

만들어진 점령서사

조정민 지음
쪽수
292쪽
판형
152*225
ISBN
978-89-92235-70-9 93830
가격
16,000원
발행일
2009년 8월 24일
분류
역사비평

책소개

점령 서사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아시아 태평양전쟁에서 패한 일본은 1945년 9월 2일부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되는 1952년 4월 28일 전날까지 약 7년간 연합국(실질적으로는 미국)의 점령하에 놓이게 된다. 이때, 미 점령은 일본이 처음으로 경험한 피지배 경험이었으며, 점령이 종료된 이후에도 일본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안보투쟁, 미군기지 반대운동, 베트남 전쟁, 고도 경제성장 등, 일본 전후사의 주요 국면에 있어서 미국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해 왔던 것이다.


이때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점은, 피점령에 대한 기술과 서사에 있어서 상호 모순적인 현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만화 <블론디>는 민주적인 가정의 모델로서, 당시 이를 향수하던 일본인들에게 미국이나 미국사회는 자유와 민주의 표본이며 이상이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미 점령군의 폭력에 의한 일본인 여성의 성적 영유가 억압적인 일미관계 그 자체를 은유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저마다 회상하고 기억하는 점령상은 각각 다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대립하기까지 하는 점을 볼 때, 하나의 통일된 점령상占領像을 정의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들어진 점령 서사』는 ‘사실’에 가까운, 또는 ‘진실’된 점령상을 찾기보다는, 하나의 점령상이 탄생되는 프로세스에 주목하는 가운데, 전후 일본문학이 패전 후의 연합국(실질적으로는 미국의 단독 점령)의 일본 점령을 어떻게 기억하였는가에 대해 고찰하고 있는 책이다. 다시 말해, 패전 일본이 경험한 피점령에 대한 기억과 서사를 살펴보고, 이들 담론을 등장시킨 메커니즘은 무엇인가를 명확히 하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타국에 의한 피지배 경험과 그로 인한 인식의 틀은 오늘날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중요한 문제이다. 또한,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한국 역시 미국의 직?간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이 책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중간자’를 통해 점령서사의 메커니즘을 밝힌다

- 통역과 창부, 재일조선인, 그리고 오키나와


미국에 의한 피점령을 민주적인 것으로 기억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지배적인 것으로 기억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문학은 기존의 점령 담론을 보강하고 확대?재생산하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점령이라는 집합적인 기억을 상대화하기도 하였다. 『만들어진 점령 서사』는 후자의 관점을 취하고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의 ‘중간자’라는 개념은 매우 시사적이다.


『보기 전에 뛰어라』(1958)에서 오에 겐자부로는 “나는 이 창작집에 담은 작품을 통하여 하나의 주제를 전개하고자 하였습니다. 강자로서의 외국인과 많든 적든 굴욕적인 입장에 있는 일본인, 그리고 그 사이의 중간자中間者(외국인 상대의 창부나 통역 등), 이 삼자의 상관三者の相?을 그리는 것이 모든 작품에 반복된 주제였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점령을 이항대립적인 구조로 파악하지 않고, 일미 양자의 관계를 매개하는 존재인 일본인 창부나 통역자를 상정하여 ‘삼자의 상관’으로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항대립적인 구조로 점령을 인식할 경우, ‘좋은 점령’ 또는 ‘나쁜 점령’이라는 이분법적인 점령상이 도출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점령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거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중간자’를 설정했던 것이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다면, ‘중간자’는 이항대립적인 점령관이 가지는 한계를 지적하고, 나아가 실체적인 점령관을 상대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오에 겐자부로가 상정한 ‘중간자’(언어, 신체)에 대해 적극적으로 고찰하는 한편, 일본의 점령을 상대화한다고 여겨지는 재일조선인, 오키나와에 대해서도 함께 주목하여, 점령이 서사되는 장場에 있어서 다양한 담론의 움직임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중간자’는 전후 일본과 미국 사이에 존재하며 ‘좋은 점령’상과 ‘나쁜 점령’상을 생산하지만(다시 말하면 상호 모순적인 점령기억을 서사하지만), 이들 점령상은 서사 욕구에 따라 ‘중간자’들에 의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허구’에 지나지 않다는 점을 미리 밝혀두고 싶습니다. 즉, 점령에 대한 기억은 실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점령이고 싶은가’, ‘어떠한 일미관계를 희구하는가’라는 서사 욕구에 따라 ‘중간자’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중간자’는 점령상의 구축과 해체를 반복시키는 역동적인 운동성을 가진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머리말’ 중에서

문학은 시대를 기록하고 구성한다


문학은 한 사회나 시대의 기억을 기록하고 구성한다. 그 기록은 문학 텍스트 그 자체만으로도 생성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중층적인 담론 속에서 생성된다. 『만들어진 점령서사』는 중층적인 담론, 즉 역사상이나 사회상 속에 문학 텍스트를 재배치하여 문학 텍스트가 가지는 기능과 가능성, 또 그 가치를 모색함으로써, 타 영역(역사, 사회, 문화 등)의 연구를 상대화하고 폭을 넓히는 등 학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책이다.


종래의 문학 연구가 특정 문학자의 작품(작품론)이나, 작가 그 자체(작가론)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에 비하여, 이 책은 일본의 역사, 사회, 문화 등을 아우르며 그 속에서 문학 작품의 가치와 역할을 연구하고 있기에 ‘문학 사회학’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종래의 연구가 가지고 있던 한계의 일부를 극복한 것이며, 일본의 전후 문학의 다양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 연구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학 ? 문화학의 연구 분야에도 학문적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전후작가들의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전후문학 및 현대문학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는 연구서는 그다지 많지 않은 실정이다. 일본 전후문학과 더불어 당시 시대상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는 차원에서도 이 책이 가지는 의의는 크다고 할 수 있다.


“점령이 서사되는 장에서 문학은 어떠한 작용을 하였으며 그 작용의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은 한 나라의 사회상이나 역사상이 구축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과 그 의미를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나아가 그러한 역사상과 사회상을 상대화하는 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은 우리들이 무의식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일국사national history의 형성과정에 대해 재고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 23쪽 중에서



본문 요약

서장 <점령과 문학> 


비군사화와 민주화를 축으로 하는 미국의 점령 방침은 중국혁명과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하여 그 방향이 완전히 전환된다. 미국은 일본을 아시아의 주요 군사전략 거점지로 규정하고, 일본의 재군비를 서둘렀으며, 일본공산당과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레드 퍼지를 실행한다. 이처럼 미국의 일본 점령은 민주주의를 전후 일본의 공적 가치로 구현시켰다는 측면을 가짐과 동시에, 그들 자신이 비민주적인 태도로 일본을 억압하였다는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중성은 민주주의를 가져온 ‘해방군’으로 미국을 기억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억압적이고 지배적인 ‘점령자’로 그들을 기억할 것인가라는 상반된 점령상占領像을 낳기에 이른다.


이러한 문제는 문학작품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도 반복적으로 제기되었다. 문학은 기존의 점령 담론을 보강하고 확대?재생산하기도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점령이라는 집합적인 기억을 상대화하기도 하였다. 이 책에서 중요시하고 있는 것은 후자이며, 이때 오에 겐자부로의 ‘중간자’라는 개념은 매우 시사적이다.


제1장 <미어米語의 탄생>


제1장에서는 전후 일본사회의 영?미어 유행이 환기시킨 점령 담론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 고찰하였다. 전후 일본이 탄생시킨 ‘미어’의 목적이 건강한 일미관계 구현에 있었다는 것, 또한 전후 일본사회가 보여준 ‘미어’에 대한 열광이 미 점령이라는 억압적 상황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나아가 이러한 강제성으로 인하여 이상적인 일미관계도 성취될 수 없음을 고발한 작품으로 고지마 노부오小島信夫의 작품「아메리칸?스쿨」(1954)과 「포옹가족」(1965)을 살펴보았다. 이 두 작품은 전후 일본인이 건강하고 이상적인 일미관계를 위하여 영·미어의 학습을 서두르고, 설령 그것을 충분히 학습했다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후 일본이 분절화한 허구적인 영·미어에 지나지 않으며, 또 영·미어의 획득이 반드시 이상적인 일미관계를 보장하지 않음을 시사하였다.


제2장 <전후 일본과 미국의 젠더적 관계>


패전 직후인 1945년 8월 18일, 일본의 치안 당국 및 내각은 점령군 전용 성적 위안시설 및 음식 시설, 오락 시설 등을 설치하도록 각 지방에 통지하였다. 이는 패전 일본이 미 점령군을 참을 수 없는 ‘성욕’을 가진 신체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로써 여성성을 가진 전후 일본과 남성성을 가진 미국이라는 지배적인 젠더구조가 생성되었다. 이러한 폭력적인 일미관계는 패전 직후에 등장한 일본인 창부, 소위 ‘팡팡’과 ‘온리’ 등에 의해 더욱 실정성?定性을 확보하게 되고, 그들의 생태를 고발한 서적을 통하여 더욱 직접적이고 과장되게 표출되기도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체 혹은 정조가 때로는 억압적인 일미관계를, 때로는 건강한 일미관계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고, 자신들을 둘러싼 담론이 전후 일본의 서사욕구에 의해 성격을 달리하는 허구라는 사실을 고발하고 있었다. ‘좋은 점령’ 또는 ‘나쁜 점령’이라는 이분법적 점령상의 생산을 경계하고, 나아가 실체적으로 서사되는 점령 담론의 허구성을 표출시키기 위하여 그들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3장 <‘재일조선인’이라는 중간자>


재일조선인은 일본의 패전으로 인하여 해방 민족이 되었지만, 그들의 귀속 문제는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다. 전후 일본은 재일조선인을 ‘외국인’, ‘불법악질적인 제3국인으로 간주하고, 일본으로부터 재일조선인을 분절시키고 부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러한 과정을 이행함에 있어서 북한계 재일조선인의 이미지를 ‘악의 원흉’으로 조형한 것은 패전일본의 정체성 형성을 용이하게 하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의 원형을 아시아, 특히 중국이나 ‘조선’에서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1950년대의 전후 일본이 ‘건강한 내셔널리즘’을 구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민문학國民文學’의 원형을 모색하는 가운데, 일본 문학협회가 그 전형을 재일조선인 문학자 김달수金達壽의 『현해탄』에서 찾고 있었던 것은 주목할 만하다.


종장 <교차의 장場, 오키나와>


오키나와가 경험한 전쟁과 패전, 그리고 ‘전후’는 일본 본토와 비교했을 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질적이다. 미군에 의한 일본 점령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담론은 오키나와가 경험한 전쟁의 상흔과 패전 후의 무수한 희생을 무시한 위에 성립된 것이며, 미군에 의한 일본 점령을 억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서사하는 것은 일본 본토가 오키나와에 가한 폭력성을 문제시하지 않거나 혹은 그것을 망각한 위에 성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오키나와는 일본이 기억하고자 하는 미 점령상을 다각적인 방면에서 상대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점령기억이 중간자에 의해 끊임없이 형성되고 해체되는 운동 속에서 생산되는 것을 생각할 때, 오키나와 역시 전후 일본과 미국의 ‘중간자’적 성격을 가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 : 조정민 趙正民

부경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규슈대학교 비교사회문화연구과에서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전공은 일본 근현대문학이며 「전후 일본문학에 있어서 ‘중간자’의 위상」이라는 테마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부경대학교 동북아시아문화연구소 전임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례

머리말 - 점령 서사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서장 점령과 문학


전후 일본과 미국

해방군인가 점령자인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중간자’ 개념이 시사하는 것


제1장 ‘미어米語’의 탄생


‘귀축미영’에서 ‘헬로’로

『일미회화수첩』과 영어 열풍

전시하의 영·미어

영·미어의 두 가지 기능

이상적 일미관계를 위하여

영·미어에 의해 구축된 공동체 ― 고지마 노부오, 「아메리칸 스쿨」의 경우

통역자가 개재하는 장을 생각한다 ―고지마 노부오의 『포옹가족』을 중심으로


제2장 전후 일본과 미국의 젠더적 관계


전후 일미관계의 젠더적 구조와 오리엔탈리즘

‘흑인’의 위상

‘한국전쟁’이라는 사건

해체되는 일미관계 ―‘팡팡’과 ‘온리’

이데올로기로서의 ‘정조’

「갈채」·「검은 강 무거운 노」·「유리구두」


제3장 ‘재일조선인’이라는 중간자


‘황국신민’에서 ‘조선인’으로

방법으로서의 ‘반공’

문학 텍스트로의 연쇄 ―마쓰모토 세이초의 『북의 시인』에 관한 담론을 중심으로

전후 일본의 재일조선인 분절

다케우치 요시미의 아시아주의

포섭되는 재일조선인―김달수의 『현해탄』이 시사하는 것

재일조선인 담론과 일미관계

일본과 미국, 그리고 ‘조선’의 상관관계


종장 교차의 장場, 오키나와


또 다른 일본, 오키나와

전후 오키나와와 영·미어

두 개의 미국

‘조선’에 대한 시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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