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사회

신불산

안재성 지음
쪽수
259쪽
판형
148*210
ISBN
978-89-6545-366-6 03810
가격
15,000원
발행일
2016년 8월 8일
분류
한국인물사

책소개

해방 전후 격동의 시기에 이 땅을 뒤흔든 빨치산 투쟁, 그 현장을 지켜온 영남알프스 빨치산 구연철 일대기 


이 책은 일제강점기 시절 경상남도 양산에서 태어나 열다섯 살 어린 나이로 해방을 맞은 구연철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전쟁을 맞이하면서 빨치산을 찾아 신불산에 들어가 활동했던 기록이다. 소설가 안재성이 오랜 기간 구연철 선생과 직접 인터뷰를 하여 구술사 형식으로 집필한 이 책은 일본에서 보낸 구연철의 어린 시절, 해방과 더불어 벌이게 되는 빨치산 투쟁, 1954년 체포된 후 20년 동안의 감옥 생활, 그리고 출옥 후 사회인으로 살아온 과정 등을 담고 있다.


영남지역 빨치산 투쟁의 근거지가 된 신불산


격동의 해방공간, 그리고 전쟁. 치열한 좌우 대립 속에 수많은 빨치산들이 자신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사실은 역사적으로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빨치산들은 지리산 근방에서 대규모로 활동했지만 그 외에도 전국적으로 널리 분포했다. 영남 지역에서는 신불산이 그 근거지가 되었다. 해발 1,209미터 신불산 일대는 간월산, 영축산, 재약산, 가지산, 운문산 등 고봉들이 몰려 있어 영남알프스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높은 봉우리와 크고 작은 계곡들은 빨치산 활동에 최적지가 되었다. 이곳은 1948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빨치산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전쟁 발발 이후에는 동해남부유격대 정예부대가 이북에서 내려와서 기존에 존재하던 빨치산들과 합류하여 함께 활동하게 된다.


일본에서 보낸 어린 시절


양산에서 태어난 구연철이 일본으로 건너간 것은 아홉 살 때였다. 일본 나가사키 근처에 하시마라는 섬이 있었는데, 그곳에 무기를 만드는 미쓰비시중공업이 직영 탄광을 운영하고 있었다. 구연철의 아버지는 바로 거기서 탄광노동자로 일을 하였고, 온 가족을 이주시킨 것이다. 양산 들녘의 푸르른 자연을 바라보고 자라던 구연철은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이 섬에서 학교를 다니며 7년을 지내게 된다. 그러다가 구연철이 고등과 2학년이 되던 1945년 어느 날, 컴컴하던 방 안까지 갑자기 섬광이 번쩍 하는데, 바로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투하된 것이다. 구연철은 나가사키에 나가 참혹한 현장을 직접 목격한다. 그리고 8월 말, 가족들과 함께 양산으로 귀향한다.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전쟁과 더불어 입산


귀국한 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인쇄소에서 일하던 구연철은 해방이 되었지만 여전히 친일, 친미 세력이 득세하는 사회현실에 눈을 뜨게 되고, 이후 인쇄노조 활동을 하다가 붙잡혀 49일 동안 감옥에서 호된 곤욕을 치른다. 이후 대학에 입학하였지만 심해진 예비검속을 피해 고향집으로 돌아왔다가 전쟁이 발발하자 신불산에 입산하여 빨치산 활동을 시작한다. 1950년 7월 입산한 이후 1954년 4월 하산하여 경찰에 체포당할 때까지 3년 9개월 동안의 빨치산 활동 기간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조선노동당 경남도당 동부지구당으로 입당하여 대민 조직사업으로 활동영역을 넓혀가는 일은 나름대로 보람이 있었다. 이후 유격활동까지 전개하다가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는 1953년부터는 수세에 몰리게 되고, 휴전이 성립된 후에는 대규모 토벌작전에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까지 내몰린다.


하산 후 체포당해 20년간 감옥살이를 하다


옥죄어오는 토벌대에게 총을 맞아 목숨을 잃을 위기까지 겪은 후 가까스로 살아남은 구연철은 지하당 건설을 위해 하산했다가 1954년 부산에서 체포된다. 이후 감옥에서 20년 동안 장기수로 생활하게 된다. 장기수로 생활하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미는 여전하였다. 교도소 용도과장이 식량을 빼돌리는 걸 밝혀내기도 하고, 정해진 운동시간을 지키라 시위를 하기도 하였으며, 1972년 유신헌법 제정 이후 대대적으로 벌어진 전향공작에 대항하여 말로는 못할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


출옥 후 사회생활, 그리고 오리농장


1974년, 감옥에 들어간 지 20년 만에 출옥하여 사회로 돌아오게 되었다. 부모님은 다 돌아가셨지만 일곱 형제들이 맏이인 구연철을 반겨주었다. 여동생의 소개로 결혼까지 하였지만, 출옥한 사상범들을 집중 감시하는 사회안전법은 그의 생활을 끊임없이 옥죄었다. 막노동이나 가능할 뿐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던 구연철은 80년대 후반, 해운대에서 오리농장을 하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 사이 오랜 민주화투쟁으로 세상도 많이 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 사회단체, 노동조합 모임 장소로 많이들 찾아주었다. 나이도 들고 더 이상 여력이 없어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1989년에 문을 연 이래 20년 동안 구연철의 오리농장은 부산과 경남 지역 진보운동가들의 명소가 되었다.


통일을 염원하는 평범한 노인일 뿐


지난한 세월을 보냈지만 구연철은 한 번도 자신의 삶을 후회해본 적은 없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정치민주화는 많이 이루어진 듯 보이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주의 경제모순은 더욱 심화되었다. 하지만 민족의 미래에 대한 그의 전망은 대단히 낙관적이다. 오리농장을 할 때도 많은 시간을 통일운동에 보냈지만, 그만둔 이후로는 일주일이면 서너 차례 이상 온갖 집회와 모임을 찾아다니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통일에 직접 관련된 모임뿐만 아니라 노동자집회와 파업현장, 민주화 시위현장, 민주노동 열사 추모행사, 진보정당 선거운동 등 어디든 찾아다녔다. 현장에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으면 사람들은 그가 와준 것만으로도 든든하게 생각했다.



저자 : 안재성

1960년 경기 용인 출생.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광산노동운동과 관련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다.

장편소설 『파업』, 『황금이삭』, 『경성트로이카』 등을 썼으며 이현상, 이관술, 박헌영 등에 대한 인물평전을 썼다.

노동운동 기록으로는 『청계 내 청춘』, 『한국노동운동사』 등이 있다.

이념대립으로 가려진 역사와 인물들을 복원하는 일에 열정을 다 하고 있다.



차례

서문 잊혀진 전쟁의 기억들


1. 영광의 문

2. 지옥의 문

3. 분노의 서울

4. 입산

5. 신불산

6. 입당

7. 갈산고지

8. 삶과 죽음

9. 생존

10. 사상범

11. 일송과 주송